다낭을 무작정 걷다
오토바이 천국인 베트남에서 어딘가로 이동할라치면 시내버스가 잘 되어있지 않고 걷기도 쉽지않아 택시를 자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최근에 다낭의 해변을 오가는 시내버스 노선이 새로 생기긴 했지만 아무래도 더운 날씨에 언제 올지도 모를 시내버스를 멀뚱멀뚱 기다리는 일은 그리 달갑지 않다. 게다가 버스 노선이 내가 가는 목적지와 연결이 되어 있지도 않아 버스를 기다려서 타고 또 갈아타고 아무래도 무리 같았다. 장작 17시간의 기차를 타고 오전 11시45분경 다낭 역에 도착하서 나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일단 택시를 타고 바다 근처 호텔에 도착했다. 택시비는 거의 10만동. 한화로 따지면 5000원 정도로 싼 값이지만 사실 이 10만동으로 베트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기 때문에 적은 돈이라고 해도 이 돈을 택시비로 쓰기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일단 샤워를 하고서는 고픈 배를 달래며 다시 택시를 타고 롯데마트로 향했다. 오랜만에 한식이 땡겨서 예전에 자주 가곤 했던 3500원짜리 돌솥비빔밥이 생각나 롯데마트까지 갔는데 이번에 든 택시비도 역시 거의 5000원. 3500원짜리 돌솥밥을 먹기 위해 그 보다 더 비싼 택시비를 지불해야 하니 이건 꼭 사기라도 당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돌아올때는 아무래도 소화도 시킬 겸 호텔 근처의 해변까지 걸어 보기로 했다. 구글맵에서는 롯데마트에서 해변 근처에 있는 내 호텔까지 도보로 약 1시간40분. 뜨거운 태양 아래 그늘도 제대로 없는 길이었지만 나는 과감하게 택시운전자들을 뿌리친 후 홀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말그대로 터벅터벅 게다가 천천히. 왜냐하면 이 길을 걸어보는 것이 처음이라 조금 어색했다. 이곳으로 오는 길의 택시 안에서 혹시 걸어다니는 사람이 있는지, 길은 걸을만 한지 살펴보기는 했으나 걷는 사람이 보이지도 않을 뿐더라 뜨거운 태양 빛이 질려보이기도 했고 쌩쌩 달리는 트럭과 오토바이 때문에 약간 겁이 나기도 했다. 사실 하노이나 호치민에 비하면 다낭의 찻길은 그런대로 양호한 편이라 이 정도의 오토바이 부대는 거뜬히 무시해 버릴 수도 있을 듯 했다. 예전에 여행지에서 만난 무모한 누군가로 배운 "어떻게든 되겠지"의 정신으로 얼굴을 쏘아대는 햇볕을 손바닥으로 살짝 가리며 나는 한 발 두발 호텔 쪽으로 발을 디뎠다.
첫번째 관문이라고 생각되던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뜨거운 태양아래 그늘 한 점 없는 약간 오르막인 이 다리의 중간 쯤에서 갑자기 포기할까 생각이 들어 택시를 찾아 두리번 거렸지만 주변에 오가는 것은 짐을 잔뜩 실은 트럭과 오토바이 뿐.
역시 되돌아 갈까 해서 잠시 뒤로 돌아 섰는데 너무나도 예쁘게 펼쳐져 있는 구름이 나에게 길이 있다면 걸을 수 있을거라며 응원이라도 해 주는 듯 하였다. 그래 한 번 믿어 볼까? 나는 다시 앞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시원함을 선사해 주려는 듯 강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서울의 강과 이름이 똑같은 한강이. 멀찍하니 보이는 다낭의 명물인 용다리와 한다리를 바라보며 걷다보니 내 쪽으로 걸어오는 베트남 사람을 발견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나도 모르게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 애는 뜨거운 햇볕을 가리느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그냥 마음 속으로만 "씬짜오 (안녕)"라고 되뇌였다.
여행 중 걸을때에 가장 좋은 점은 늘 택시나 버스로 지나쳐 버리기만 했던 곳을 눈 앞에 바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아주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라서 굳이 찾아가지지 않는 그런 곳을 지나칠 때면 걷는 것에 큰 기쁨을 느끼곤 한다. CHUA BA DA라는 절은 큰 불상으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여행자들이 굳이 교통비를 들여가며 찾지는 않는 그런 곳이다. 나도 택시나 오토바이를 탄 채로 지나쳐서 보곤했던 곳이었는데 이렇게 눈 앞에서 이 절과 불상을 볼 줄이야.
가까이서 지나쳐 갔더니 보이는 불상 등의 작은 문! 저 문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골똘히 생각해 봤지만...과연 누가 지나다니는 문일지 도통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택시로 지나쳤을땐 몰랐던 사실을 걸으니 이렇게 알게 된다.
절을 지나쳐 또 걷고 찻길을 건너고 걷고 하다가 드디어 만나게 된
그렇게 그리던 바다를 눈 앞에 만났지만 난 멀찍이 서서 바다를 바라보기만 했다. 운동화에 양말까지 신었기에 신발을 벗을까 말까 무척이나 망설여 졌다.
카톡에서 친구가 남긴 "그냥 신발 벗어" 라는 메세지를 보고 나는 바로 신발과 양말을 벗고는 바닷를 향해서 걸어 들어갔다.
드디어 뜨거운 발바닥을 시원한 바다물에 담갔다. 그동안의 피로를 바다가 마사지 해주며 풀어주는 느낌. 부드러운 모래가 발바닥을 감싸주니 나는 한 동안 서서...... 그렇게...... 감상에 젖은 것도 같다.
바다를 즐길 줄 아는 그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던 그 날.
내가 머무는 호텔은 이 해변의 거의 끝에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기에 사실 앞으로 1시간은 더 걸어야 했다. 그런데 바다에서 나와 호텔까지는 어떻게 가지? 맨발로 걸어 가야 하는지 아님 어떻게 가야하는지 심히 고민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왕 바다에 발을 담궜으니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바다를 걸으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걷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것들을.
걷다가 그렇게 그날의 하루가 저물어 갔다 (바다에서 나와 모래로 가득한 발을 털고 신발도 바닥에 치며 모래를 탈탈 털어낸 후 그냥 양말과 신발을 신고 호텔로 향했다. 집에 와서 신발과 양말을 벗어보니 모래가 보이지 않았다. 모래는 어디로 간 걸까).
그리고 다음날.
나는 다시 호텔을 빠져 나와 바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걸었다. 이번에는 아침겸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렇게 또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한시간을 걸었다. 다행히 드문드문 서 있는 코코넛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해변가 끝쪽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샌드위치와 진저티를 시켰다.
그리고 또 호텔까지 되돌아 오기 위해 한시간을 바다를 보며 또 걸었다.
오후가 되어 카페를 찾아 또 걷기로 했다. 이번에는 해변 근처의 나의 호텔에서 다낭 시내로 향했다. 다낭시내로 가기 위해서는 '한다리'를 건너야 한다. 호텔에서 다낭 여행자 숙소가 모여 있는 거리까지 걸으려면 근 40분 가량이 걸린다. 택시비로 치자면 2500원에서 3000원 가량이지만 나는 택시비로 카페에서 차를 한 잔 마시기로 해서 또 걸었다.
중간에 찻길이 넓고 차가 많이 오가는 찻길을 걸어야 하는 난관이 있지만 하노이에서 찻길을 건너는 연습을 수없이 한터라 이정도 쯤이야 하며 자신있게 찻길을 건넜다. 베트남에서 걸을땐 너무 오가는 차나 오토바이를 배려해서는 찻길을 건널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아주 무시할 수는 없고 신경을 쓰면서도 한편으로는 알아서 날 피해 가겠지 하는 심정으로 조금은 과감해 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드디어 한다리를 건너 나와서는 내가 걸어온 반대편 강을 바라 보았다. 그런데 아직 까페까지 가려면 10여분을 더 걸어야 했다. 가는 길에 또 우연히 다낭의 오래된 핑크성당을 만날 수 있었다.
성당 뒷문을 지나치다가 어딘가 낯이 익어서 들어가 봤더니 역시 예전에 내가 방문해 보았던 그 성당이 서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성당을 한바퀴 돌고 성당 뒷쪽에서 파는 묵주 반지까지 하나 기념품으로 구입을 했다. 그리고 또 길을 나섰다.
그리고 도착한카페. 주문한 진저티와 케이크의 값은 총 55000동. 다행히 택시비와 거의 비슷한 금액으로 차와 케이크를 맛볼 수 있었다. 그 카페에서 2시간 시간을 보낸 후 시내를 또 걸었다.
그 날 저녁에는 다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우리는 다낭의 명물인 용다리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그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고 다낭 한강 근처를 걸었다. 예전에 우리는 함께 일하던 사이였다. 다낭에서 남쪽으로 차로 3시간 정도 더 내려가야 있는 도시 꽝나이에서 우리는 한 집에 살며 근 1년을 지지고 볶고 했던 사이다. 그때 우리는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함께 저녁을 지어 먹고 집근처 강가를 한시간 정도 함께 산책하곤 했었다. 다낭의 강가를 걸으며 우리는 또 예전에 우리가 함께 일했던 도시에서 걸었던 강가를 회상했다.
강을 걷다가 그 친구가 잠시 쉬었다 가자며 사탕수수 쥬스를 사줬다. 걸은 후의 음료 한 잔이란......
그리고 마지막 날, 나는 작은 배낭을 매고 다시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을 향해 걷기로 했다. 한다리를 건너며 오토바이와 나란히 다리를 건너 다시 시내로 나와 수많은 찻길을 건너고 또 건너서
다리가 아플때면 중간에 길가 벤치에 걸터앉아 다리를 두드렸다. 그리고 느낀 것이 걸어보니 역시 걸을만 하구나.
드디어 내가 탈 기차를 만나 나는 다음 여정지에서의 산책을 떠올리며 기차에 올랐다. 이번에는 어디를 걸을까 꿈 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