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ungry Traveller Apr 22. 2021

비대면 마라톤 대회 (10km)에 도전할 줄은.

내 달리기의 5할은 K팝 아이돌

역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노력을 해야 실력이 느는 것일까. 간혹 주변인들이 영어 공부를 어떻게 해야 되는가 물어올 때 나는 내 경험에 비추어 ‘영어시험’을 목표로 잡고 공부하면 좋지 않을까 조심스레 말해주곤 했다. 그냥 해외여행에 가서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영어만 배우면 된다고 해도 나는 영어시험을 목표로 공부하기를 추천한다. 아무래도 구체적인 목표를 잡으면 최소한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해외여행에서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영어라는 애매모호한 목표로는 영어 실력이 늘기가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영어 공부와 걸맞은 얘긴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비대면 마라톤 대회 10km에 도전장을 내면서부터 더 진지하게 달리기에 임하게 되었다.  우선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는 한강 주변으로 이사를 와 살게 되면서 주말 아침마다 한강 주변을 산책하면서 봤던 '달리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자유로워 보였다. 그리고 걷는 것보다 속도도 빨라 최소한 망상에 빠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 뭔가 그들은 '시원'해 보였고 나도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강 잠수교에서 달리기

처음에는 주말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매일 잠수교를 통과하면서 3km 남짓을 그것도 중간에 2번가량 숨을 고르기 위해 쉬면서 달리던 거에서 이제는 하루 6km를 쉬지 않고 달리고 있고 비대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좀 더 진지하게 달리고부터는 매일매일 개인 신기록을 수립하면서 달릴 수 있었다.


내가 비대면 마라톤 대회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거의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달리기가 좋아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을 구입하게 되었고 하루키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그의 생애 최초로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마라톤? 설마, 코로나 시국에 마라톤 대회는 다 없어졌겠지 하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마라톤을 검색하던 중 비대면 마라톤 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검색 결과 여러 가지 비대면 혹은 대면 마라톤이 개최 중에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기부 마라톤이란 것에 흥미가 생겨 주로 기부도 하면서 메달을 딸 수 있는 마라톤에 대해 진지하게 알아보았다. 기념품을 거하게 주면서 참가비를 모두 기부한다는 마라톤 대회들도 있었는데 취지는 무척 좋으나 그 기념품들이 나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 많아 그냥 아주 심플하면서도 동시에 기부를 할 수 있고 완주 메달을 주는 비대면 마라톤 대회를 선택했다. 내가 선택한 "난치병 어린이 돕기"2021년 제8회 국제사랑 마라톤 대회의 기간은 4월 17일부터 25일까지로 참가비 15,000원에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코스에서 5km, 10km, 하프, 풀코스를 선택하여 달린 후 달리기 앱으로 기록 인증을 하면 기록증과 메달 그리고 무언지 모를 소정의 선물을 보내준다고 했다. 과연 내가 10km를 달릴 수 있을까 여러 차례 고민 끝에 드디어 4월 5일에 입금을 하고 비대면 마라톤 대회의 참가를  신청했다.

새벽의 한강변에서

내가 마라톤 대회 참가를 결정한 즈음에 내가 달려본 최대 거리는 7km였다. 주로 매일 5-6km를 즐겁게 달리고 있던 어느 날 일요일이었던가, 달리고 있던 나를 힘차게 추월하며 달리던 서양 여자애를 추적하다 그 여자애가 달리는 구간을 따라가게 되었고 그렇게 하다가 어쩌다가 달려 본 7km이었다. 5km를 목표로 달리고 있어서 반환점인 2.5km를 넘어서면서부터는 덜컥 겁이 났던 것도 같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그 서양 여자애가 인도했던, 나에게는 단 한 번도 가보지 않던 그 길로 달려가다가 아담한 나무다리를 건너 바라본 한강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그렇게 달리다가 3.5km에 도달하던 차에 아무래도 다시 돌아오는 길이 부담스러워 되돌아왔고 그렇게 내 생애 최초의 7km가 되어준 경험이었다. 그렇게 7km를 달려보고 나는 10km 비대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용기를 얻게 되었고 그 날 바로 입금을 하여 이젠 빼도 박도 못하고 마라톤 대회에 출전할 수밖에 없었다.


비대면 마라톤 대회 시작 2주간의 기간 동안 나는 내가 신청한 10km를 완주하기 위해 소소하게 연습 계획을 짰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늘 보던 '맛있는 녀석들' 대신 이봉주 선수의 다큐라던가 육상 신기록, 한국의 꿈나무 육상선수들의 대회를 유튭으로 시청하면서 달리기에 대해 조금씩 더 배워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이봉주 선수가 코치의 트레이닝을 받는 장면에서 코치가 무릎을 높이 들지 말고 어깨에 힘을 빼고 팔은 L자로 흔들되 에너지 소모를 막기 위해 어깨는 되도록 흔들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마음속에 새겼다.


2주 동안 매일 6km의 달리기는 유지하면서 3일 꼴로 한 번씩 8km를 달려 총 4번의 8km를 달렸다. 원래 달리던 길에서 10km를 달리자니 그늘이 너무 없고 길이 지루한 감이 있어서 과감히 코스를 반대길로 변경하여 그 코스가 익숙함을 주도록 2주간 같은 코스로만 달렸다. 처음에 달렸던 8km는 너무 힘들었다. 그 길은 나에게 7km를 달릴 수 있게 해 주었던 서양 여자애가 인도했던 길이었는데 길이 직선으로 쭉 나가지 않고 중간에 오르막이 있는 다리를 건너야 했고 나중에 그 길이 공사를 시작하면서 다시 직선으로 오르막 없이 계속 달릴 수 있는 길로 변경했다. 처음으로 8km를 달렸던 날엔 몸이 쑤셔되고 어디에도 집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져

중요한 일이나 공부할 것이 있는 날에는 6km만 달려야 했다. 그리고 두 번째 8km부터는 몸이 어느 정도 적응을 했는지 첫 번째만큼 힘들지 않아서 다시 세 번째, 네 번째 8km까지 달릴 수 있었다. 명확한 목표가 있어서인지 혹은 참가비 입금을 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상하게 그때는 매일매일 개인 신기록을 세웠다. 입금 전까지만 해도 총 6km 평균 속도가 6분 30초대에서 하루하루 신기록을 세우더니 6분 초반대로 변경되었다. 그건 네 번의 8km에도 마찬가지였다. 매일매일 더 속도가 빨라지면서 6km를 뛰던 8km를 뛰던 일정한 속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라톤 대회 전까지 10km는 감히 달려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8km도 네 번을 달렸는데 설마 10km를 못 달리겠어의 정신으로, 대회 전까지는 사실 그만큼 고생을 하고 싶지가 않았던 것 같다.


처음 생각으로는 4월 17일부터 25일까지 9일간의 기간 동안 10km를 두 번 정도 달린 후에 더 나은 기록을 제출해 보는 것이 어떨까 했다. 대회가 시작되는 4월 17일(토)에 내가 마라톤 대회에 참석한 이유는 날씨 탓이 컸다. 다음 주부터는 20도~30도를 넘나드는 날씨가 시작될 예정이었고 그리고 나는 애플 워치에 깔은 나이키 러닝 앱을 켜고 달리는데 나이키 러닝 앱은 주말에 10km를 달리면 앱상으로 상을 주기 때문에 꼭 주말에 달려야지 싶었다. 애플 워치에는 러닝이라는 타이틀의 플래이 리스트를 따로 만들어서 달리기에 좋은 음악들을 신중히 선별하여 넣었다. 사실 내 달리기의 5할은 K팝 아이돌이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싶다. 데이 식스, BTS, 슈퍼 M, 하이라이트, 세븐틴, NCT 그리고 브래이브 걸스 까지 내 러닝 플래이 리스트의 80퍼센트가 K 팝 아이돌들의 노래이고 그들의 음악은 나의 달리기에 큰 힘이 되어 주곤 했다.  


그리고 4 17, 아침 9시경 집을 나서 한강변에 도착하여 스트레칭을 마음을 다잡는 호흡을 하면서 나이키 러닝 앱을 킴과 동시에 러닝 플래이 리스트의 볼륨을 최대로 높였다. 슈퍼 M One 플래이 되는 동안 슬슬  걸음 걷다가 러닝 앱이 시작될  자연스럽게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10km 1시간 내에 완주하고 싶었지만 현재의 나의 기록들로 봐서는 1시간 1~2분대로 완주가 가능하지 싶어 1km마다 나의 속도를 알려주는 나이키 러닝 앱의 기록을 읽고는 무척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마지막 2km에서 속도를 내어주면 혹시 1시간  10km 완주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달렸다.


드디어 익숙한 3km 구간이 지났다. 신기하게도 다리가 아프지도 숨이 차지도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만약 중간에 힘들면 오늘은 포기하고 내일 달리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달렸다. 다 같이 마라톤 대회에 나란히 출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기는 언제든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4km에 들어서 드디어 예쁜 봄꽃길을 지나 난생처음 가본 1km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펼쳐지는 낯선 풍경들이 나를 계속 같은 속도로 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그곳에는 축구장, 농구장, 야구장 그리고 족구장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활기차게 운동을 하는 모습이 보였고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함께 운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 지치지 않고 더 열심히 달리게 된 것 같다. 5km 구간을 반환점으로 되돌아오면서 다시 같은 길로 돌아 달릴 때까지도 내가 과연 오늘 10km를 마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달리다가 6km, 7km, 8km가 되고 그때부터는 이제 2km만 남았다는 생각에 좀 더 속도를 내 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9km 지점을 지나 좀 더 달려 나가니 시작점이었던 장소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면서 눈이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심정이 되었다. '드디어 10Km 완주를 하는구나'와 '빨리 달리기를 멈추고 싶다'라는 두 가지 심정이 겹쳐서 눈물이 날 듯했지만 고작 이것 갖고 눈물을 흘린다면 앞으로 더 힘든 나날들을 어떻게 견뎌내겠냐며 약한 마음을 접고 나오려던 눈물을 멈췄다. 드디어 나이키 러닝 앱에서 10km 구간을 지났다고 말할 때 달리기를 서서히 멈추고 러닝 앱의 ending 버튼을 눌렀다.


기록은 10Km에 1시간 39초에 Km당 평균속도는 6분 4초


생애 첫 10km 마라톤 기록

맨 마지막 10km 구간에는 평균 5.58초로 달렸다고 나왔다. 그 구간이 가장 힘이 들었는데 가장 빠르게 달려서 그랬던 모양이었다. 달리기를 멈추고 간단한 스트레칭 후 걸으려는데 걸어지지가 않아 휘청휘청 몸을 움직여 근처 벤치에 앉아 잠시 마사지를 하며 휴식을 취했다. 정말 10km를 완주했구나. 완주를.

10km 완주 등과 메달 그리고 미스터리 했던 소정의 선물

현재까지 달리기는 내 인생에 있어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우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달리는 아침형 인간으로 탄생시켜 주었고 아침에 달리는 탓인지 하루가 활기차 졌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내 에너지가 아침부터 너무 high라 버겁다고들 했다.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냐고 물으면 아침에 달리기를 해서 라고 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달리기는 나의 오랜 여행 패턴을 바꿨다.

제주도에서 올레길을 따라 달려 봤다.

아니 사실 나에게 여행 패턴이란 것이 있었나 생각해 보니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달리기는 나에게 새로운 여행 패턴을 만들어 주었다. 이제는 여행지를 고를 때 어디 달릴만한 곳이 있나부터 보고 여행지를 고르게 되었으니 말이다. 올 가을 즈음에는 하프 마라톤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코로나가 진정되고 해외여행이 가능한 시대가 다시 오면 국제마라톤 대회도 참가해 보고 싶다. 물론 맨 꼴찌로 겨우 달리고 있을 테지만 그래도 마냥 좋겠지 싶다.

제주도 서귀포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