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주변 운동 열풍
기차는 도착시간인 새벽 4시 50분보다 10분이나 빨리 종착역인 하노이 역에 멈춰 섰다. 도착시간 30분 전부터 일어나 양치질을 하고 전날 호텔에서 주어온 1회용 빗으로 머리까지 단정히 빗고서 침대에 앉아 15분 정도를 멍하니 앉아 있던 순간 기차가 갑자기 덜컹하며 멈춰 서 드디어 하노이 역임을 알렸다. 나는 여전히 쿨쿨 잠에 빠져 있는 3명의 캐빈 메이트를 남겨두고 우리 칸에서 1등으로 하노이 역에 내렸다. 그리고 하노이 역 앞의 택시와 오토바이 기사들을 간단히 물리치고 나와 일단 기차역 앞 간이 카페에 앉아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당장 마시지도 않을 밀크티를 하나 뽑아 들고 바닥에 놓고는 현지인들이 쪼르르 앉아 있는 파란색 목욕탕 의자에 앉기 위해 몸을 숙이자니 하노이 역 앞에 아직도 밝게 빛나고 있는 그믐달과 금성이 너무 가까이 붙어있어 내가 아직도 꿈속을 헤매고 있는 건지 무언가 아주 초현실적인 장면이라고 느껴졌다. 이런저런 공상에 빠지기 전에 우선 오늘의 일정을 정해야겠다 싶었다.
베트남 사람들의 하루는 새벽 5시 정도에 시작된다고 했다. 혹은 그보다도 더 일찍. 사실 내가 오늘 새벽 이렇게 무리하며 하노이에 일찍 도착한 이유는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주변의 운동하는 하노이안들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하노이에 더 늦게 도착하는 기차표를 살 수도 있었지만 늘 늦잠을 자곤 하는 나 같은 게으름뱅이가 호안끼엠에서 펼쳐진다는 하노이안만의 운동 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는 이런 때 말고는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날이 조금씩 밝아지는 기운이 나자 나는 밀크티 값을 지불하고 혼자 겁도 없이 아직은 어둡고 스산한 길을 터벅터벅 홀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20분 정도를 걸으니 다행히 저 멀리 호안끼엠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걷는 내 주변에 운동복을 걸친 사람들이 하나둘씩 마치 좀비처럼 호안끼엠 호수 쪽으로 걷기나 뛰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들과 발을 맞춰 걷다가 마침내 호안끼엠 호수에 도달했다.
하노이는 유니크한 운동문화를 가진 도시로 유명하다. 하노이 사람들은 아주 이른 새벽이나 해가 진 후의 저녁나절에 공원이나 호수 주변에서 운동을 한다.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지는 저녁까지의 베트남 특유의 덥고 습한 날씨를 피해 운동을 하는 것인데 이건 베트남의 해변가도 마찬가지이다. 해변가 하면 불타는 태양 아래서 하는 선텐과 수영이 떠오르지만 베트남의 한 낮 해변가는 늘 텅 비어 있기 마련이다. 새벽같이 해변가로 이동하여 수영을 하고 오전 9시 전에 바다를 뜨거나 해의 열기가 어느 정도 누구러지는 4시 정도에 다시 수영을 하러 나와 이미 어두워진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은 무언가 낯설기만 했다. 하노이의 호안끼엠 호수 주변의 운동시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호수 주변을 걷고 뛰고 달리고 새벽부터 신명 나게 춤까지 추고 있어 한가로운 여행자의 삶에 무언가 일상의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너무 나태해지지 않았냐고, 나도 그들처럼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냐고, 만약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들처럼 나도 다시 열심히 살아 보겠노라고.
역시 가장 흔히 보이는 운동 모습은 조깅으로 혼자 달리거나 혹은 그룹으로 달리고 외국인들도 조깅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애완견들을 데리고 나온 하노이 시민들의 모습도 많이 보이는 편이라 운동에 지칠 때 즈음에 지치지도 않고 주인과 함께 뛰고 있는 강아지들을 보면 나도 이제 더 빨리 걸으며 운동에 참가해야지 하는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은 스트레칭 등 간단한 운동을 즐겨하며 신기한 점은 다들 시선을 호수 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풍경 아래 하는 스트레칭은 그들에게 건강과 함께 맑은 정신 또한 가져다주지 않을까 싶다.
벤치나 울타리, 나무 등을 이용하여 창조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모습들은 특히 외국인들에게 재밌는 구경거리가 되어 준다. 벤치에 거꾸로 매달리는 묘기를 보여주고
하노이 주말 차 없는 거리를 위해 차를 막는 울타리를 이용해 몸을 힘차게 들어 올리기도 한다. 아마 주변에 운동기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종종 일어나는 해프닝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룹으로 모여서 하는 운동은 이곳 호안끼엠에서 참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들이 그룹으로 모여 태극권을 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데 부채를 폈다 접었다 하며 운동을 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또한 할머니들은 태극권 이외에도 요가나 스트레칭 등 비교적 움직임이 적은 운동을 즐겨하는데 본격적인 스트레칭을 시작하기 전에 서로의 등을 안마해주며 준비를 하는 모습에 정담이 흐른다. 사진을 찍어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바로 보내주었더니 친구 왈 " 너도 재빨리 맨뒤에 서서 두드려."라고 하는 답변에 혼자 깔깔 웃어대기도 했다.
베트남 사람들의 운동 모습이 더 눈에 띄는 이유는 화려한 무늬의 대충 걸친 운동복 때문이기도 한데 나이가 많은 할머니들이나 중년층의 여자들의 운동복은 사실 운동복이라고 할 수 없는 그냥 집에서 주로 입는 베트남 특유의 아줌마 복이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던 월남치마의 무늬와 화려한 색이 느껴지는 티셔츠와 바지 정도의 복장으로 이런 할머니들이나 중년 여성들의 허술한 운동복 차림에 반해 젊은 여성들의 운동복은 아주 모던하며 팔에 핸드폰까지 끼고 달려 속도나 거리 등을 측정할 수 있게 하는 등 아주 완벽하게 운동복을 챙겨 입는다.
노년층과는 달리 중년층들은 이른 아침부터 활기차게 커플 모던댄스를 즐긴다. 사실 이들의 이런 모습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것인데 이런 여유로운 일상들이 참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루 이틀 배운 솜씨가 아닌 아주 프로페셔널하게 춤을 추고 있는 중년 커플들의 모습이 참 근사했다. 게다가 사진을 찍히는 것에 대한 부담감보다 사진을 찍어 줘서 고맙다는 듯 카메라에 눈 맞춤을 해주며 웃는 그들의 모습이 무척 정겹고 순박하기 까지 하다.
역시 아줌마들의 운동에서 빠질 수 없는 에어로빅. 원래 음악보다 몇 배속 빨리 돌리는 어떻게 들으면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음악에 팔을 들어 올리고 배를 넣다 뺐다 하는 동작이 너무나도 익숙하게 보여 놀라웠다.
에어로빅 그룹에 끼지 못한 사람들은 길 건너 멀찍이 서서 에어로빅의 동작을 따라 한다. 그들이 왜 에어로빅 그룹에 끼지 못했는지 혹은 끼지 않았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이렇게 멀리 동작을 훔쳐서 따라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물론 나 홀로 운동족들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혼자 강을 바라보며 몸을 움직여 대고 명상을 하기까지 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언가 경건한 느낌을 받게 해준다.
호수를 배경으로 요가를 즐기는 그룹의 모습은 정말 근사하게 느껴졌다.
운동기구를 이용한 운동, 예를 들어 덤벨이나 역기 같은 것은 남자들이 주로 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들 사이에 끼어 철봉에 매달려 몸을 유연하게 흔들어 대는 베트남 여자를 보았는데 그 모습이 참 멋지게 생각되기도 했다.
강 주변에는 시에서 마련한 운동기구들도 있어서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근육질의 남녀들이 모이고 특히 남자들은 상위를 벗어던지고 운동에 매진한다. 아마 더운 날씨이기 때문에 윗도리를 벗고 운동하는 모습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베트남 전통 운동 중 하나인 Da Cau (우리나라의 제기 차기와 유사한 운동이나 그룹으로 하는 것이 특징임)를 하는 모습은 정말 많이 보인다. 아침보다는 저녁나절에 많이 보이는 모습인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도를 점령하고 그룹으로 모여서 하기 때문에 산책을 즐기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무척 방해가 되는 운동이기도 하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사색에 젖어 산책을 하고 있으면 이 Da Cau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길을 막고 있기 때문에 그 운동 그룹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느라 오래간만에 젖은 감상이 팍 깨지곤 한다.
그리고 정말로 특이한 점은 운동하는 호수 주변에 펼쳐지는 작은 시장이다. 하노이안들은 출근 전 새벽같이 부지런히 나와 운동을 한 후에 장을 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고기나 해산물, 과일에 생필품에, 게다가 꽃까지 파는 작은 시장은 운동복을 입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 시장은 아침 일찍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아침식사를 포함한 음식 준비를 하기 위해 장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어느 정도 운동을 마친 사람들은 이제 시장으로 가서 사간 반찬거리로 아침을 지어먹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른 아침에 시작되었던 운동은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저녁이 되면 다시 개시된다. 저녁때가 되면 하노이안들이 다시 운동을 시작해 저녁나절이면 호수 주변을 어슬렁 거리 곤 했던 나를 외롭지 않게 해줘서 고맙기까지 했다.
젊은 남녀나 나이가 많은 남자들은 아주 이른 아침에 운동하는 것을 즐기고 나이가 많은 여자들은 주로 늦은 저녁에 운동을 한다. 아마 젊은 사람들이나 나이가 많은 남자들은 퇴근 후에 일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이가 많은 여자들은 가족들에게 저녁을 차려준 후 그나마 한가하고 서늘한 시간 대인 늦은 저녁때 나와 운동을 하는 것 같다.
가장 많이 보이는 운동은 그룹 댄스와 에어로빅이다. 주로 중년의 여자들이 모여서 춤을 추는데 그 모습은 운동이라기 보다 하나의 공연처럼 느껴질 정도로 주변에 구경꾼이 많다.
그룹댄스를 하는 사람들은 운동복을 차려입기보다는 여성스러운 원피스 등을 차려입고 나와서 춤을 춘다. 이들의 춤은 이곳 호안끼엠 호수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어서 서양 여행자들은 이들의 춤을 구경하다가 제 흥에 못 이겨 이들 사이에 끼어 함께 춤을 추곤 한다. 그런데 별로 움직이지도 않고 쉬엄쉬엄해 보이는 이 춤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운지 서양 여행자들에게 이들의 춤을 따라가기는 버거워 보인다.
저녁에도 역시나 빠질 수 없는 커플 댄스.
평일 혹은 주말 차 없는 거리의 호안끼엠 호수 주변에서 많이 보이는 모습으로 엘레강스한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커플 댄스를 추는 모습들이 사뭇 진지하다. 아마 프랑스 식민지의 잔재가 남아있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프랑스식 건물을 배경으로 이런 고전 커플 댄스를 추는 이 하노이안들이 참 멋지게 느껴지게 하는 장면이 하나인 듯하다.
나는 비록 이들 사이에 끼어서 운동을 하거나 그러지는 못했지만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이 하노이의 호안끼엠 호수 주변을 거닐면서 하노이 사람들의 활기찬 기운을 받곤 한다. 특히 마음이 심란하거나 왠지 의욕이 떨어지곤 하는 날,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이 곳 하노이의 호안끼엠 호수 주변이 삶을 다시 의욕에 차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아 나는 오늘도 이곳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