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반지의 추억을 소환시켜준 상하이의 거리의 꽃 악세사리
상하이의 매력을 꼽아보자면 길을 터벅터벅 걷다가 화려한 빌딩 숲 사이에서 우연하게 만나는 옛 길인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길을 정처 없이 걷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만나게 되는 우연 같은 옛 정취.
옛 담벼락에 취해 걷던 날, 어딘가에서 꽃향기가 풍기기 시작했다. 눈을 슬며시 감고 잠시 꽃향기를 감상해 보다 다시 눈을 떠 보니 저만치에서 길거리 꽃집이 보였다. 사실 나는 꽃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이날은 조금 쓸쓸했던지 꽃이 그냥 반가웠다. 쓸쓸한 빌딩 숲을 지나 정겨운 옛길이 나오더니 갑자기 보이는 길가의 꽃집과 그리고 그 꽃향기가.
길거리 꽃집의 주인인 할머니는 꽃으로 팔찌와 귀걸이를 만들어 팔고 있었는데 마침 중국 아가씨가 꽃 귀걸이를 하나 주문했는지 할머니가 실을 꿴 바늘을 들고 꽃과 귀에 꽂을 수 있는 쇠고리를 함께 꿰매고 있었다. 중국 아가씨가 꽃 귀걸이를 만드는 할머니 앞에 서서 연신 스마트 폰으로 친구와 채팅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귀걸이를 만드는데 열중하고 있었고 이 모습은 그야말로 신구의 오묘한 결합이랄까. 그 모습이 너무나 신기하고도 낯설어 나도 그 주위에 쭈그리고 앉아 버렸다. 가격이 문득 궁금해져서 가만히 듣고 있었더니 하나에 1원, 즉 한국돈으로 170원가량으로 팔고 있었다.
그냥 옛날에, 그 옛날에 친구들과 잔디밭에 앉아 꽃반지와 꽃목걸이를 서툴게 만들던 그때가 떠올랐다. 그 어릴 때의 푸르른 잔디밭에서의 장면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내 기억 속에 아직도 남아 있었다니. 친구 서넛과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 팻말은 무시한 채,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죄책감과 어른들의 잔소리가 무서워 불안해하면서 잔디밭에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만들어댔던 꽃반지와 꽃목걸이.
그때를 회상하며 괜히 사지도 않을 꽃으로 만든 팔찌와 귀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내 팔목에 혹은 내 귀에 이게 어울릴까 상상도 해 보았다.
내 옆에 쭈그리고 앉은 중국 청년은 누구에게 선물이라도 하고 싶었던지 이것저것 들어보며 할머니한테 가격을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그러는 새에 우리 옆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쳐 갔다. 거북이를 매달고 가는 자전거 아저씨도 흥미로운 눈초리로 우릴 훑어 보고 지나치고. 드디어 할머니는 꽃 귀걸이 한쌍을 완성해 기다리던 아가씨에 건네주었다. 열심히 스마트폰만 해되던 중국 아가씨는 무심하게 꽃 귀걸이를 받고는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멀어졌다. 하나 사볼까 하고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그냥 길을 걸었다.
할머니가 하나 사고 가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왠지 꽃으로 만든 액세서리는 그냥 내 어릴 적 추억에 묻어 두고 싶었다. 그 수채화 같은 한 폭의 장면을 그냥 그대로 내 기억 속에 넣어두고 싶은 이기심에 나는 상하이 꽃집 할머니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며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고 다시 빌딩 숲 사이로 몸을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