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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ngry Traveller Oct 15. 2018

뜨악했다가 반해버린 쿠알람푸르  오픈 화장실 호텔

back to the 1970s

인도네시아 발리, 예술가들이 모인다는 우붓에서 갑자기 쿠알라룸푸르로 도망치고 싶어 졌다.

이왕 한국으로 들어가는 비행기 티켓도 사지 않았겠다, 원래는 필리핀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갈까 하다 일단 쿠알 람푸르에 가서 며칠 쉬고 호찌민을 거쳐 한국으로 가는 편이 뭔가 더 나아 보였다. 사실 인도네시아에서의 2주가 그리 짧지만은 않게 느껴졌던 것 같다. 더 솔직하게, 나는 좀 더 도시로 가고 싶었다. 어쩔 수 없이 도시 사람인가 싶었다. 비행기 티켓도 쿠알라룸푸르로 향하기로 마음먹고 떠나는 당일에 급히 샀다. 이제 호텔을 예약해야 하는데 그건 발리 공항에서 하기로 하고 우붓에서의 마지막 세 시간을 늘 그랬듯 정처 없이 그냥 말그대로 싸돌아 다녔다.

“발리는 heaven이 아니었어?”라고 되물은 외국인 친구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아마 나만 제외한 모두에게는. 쿠알라룸푸르행 말레이시아 에어가 출발하기 1시간 전, 나는 공항 카페에 앉아 급히 호텔 사이트를 뒤졌다. 조건은 화장실이 있고 기왕이면 발코니도 딸린 3-4만 원짜리 호텔. 참 리뷰가 최소한 10점 만점에 8점 이상이면 더 좋겠다 싶었다.  아 그리고 웬만하면 예전에 묵었던 차이나타운에 적을 두고 싶었다. (이렇게 적다 보니 나도 참 까다로운 여행자다 싶다) 생각해 보니 말레이시아에서 나가는 항공권도 사지 않았고 호텔 부킹까지 없다면 출입국이 불안해졌다. 어서어서. 그나마 깨끗하고 리뷰도 8.4 그리고 발코니 룸에 차이나 타운에 있는 Tian Jing 호텔을 급히 예약하고 난 게이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 서둘러 심카드를 사고 환전을 하고 Grab을 잡으려다 실패하고 그리고 다시 잡고 하다 보니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가 이미 넘어 있었다. 뒤늦게 체크아웃을 하던 홍콩 커플을 기다리고 겨우 체크인을 하니 이미 시간은 밤 12시 반. 호텔 직원은 서둘러 나를 방으로 안내해주고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고 나는 살짝 열려있던 발코니 문을 서둘러 닫고 (이런, 발코니 밖으로 도마뱀 녀석이 황급히 도망치는 걸 목격. 다행히 발코니 밖에서 밖으로) 방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먼저 윙윙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돌아가던 천장의 팬을 보고 내 눈은 황급히 에어컨을 찾기 시작했더. 다행히 발코니 문 위에 붙어 있는 에어컨.

발코니 문이 열려 있던 걸 기억해 내고 나는 황급히 침대 모기장을 내렸다. 리뷰에서 본 대로 뭔가 고전적인 느낌의 방. 그런데 화장실은 어디에? 호텔을 예약할 때 발코니 쪽에 화장실이 있었던 기억이 났고...

화장실은 그야말로 발코니에 있었고 발코니는 외부로 연결되는 대신 호텔 내부에 있는 데다 과연 환기는 어디로 되는 건지 알 수조차 없었다. 이런 (또)

이 전화기는 과연 작동을 하는 것일까. 와이파이 비번도 물어볼 겸 0번을 눌러 리셉션에 전화를 걸었다. 와이파이 연결은 안 될 거라는 답변. 나는 리셉션으로 후다닥 내려갔다. 사실 심신의 안정이 다급해서. “와이파이가 있긴 한데 그쪽 방은 연결이 안돼”. 란 말에 난 3G를 사용할 수 있기에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다만 발코니 문에 잠금장치가 없다는 거에 더 신경이 쓰였다. 혹시 누가 기어 올라오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 붙들어 매. 여기 security guy도 있어”. “누구? 이 타투 맨” 사실 security guy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게임에만 몰뚜 하고 있었고 나는 그의 팔의 타투를 가리켰다. 그러자 갑자기 그 타쿠 맨이 순박하게 웃었다. 말 그대로 다 좋은 사람들 같았다.

호텔 밖에 잠시 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차이나 타운. 분위기 있어.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 1970년을 음미했다. 방안에 놓여있는 세면대와 모기장,

하지만 틈새가 많은 발코니 문에 오픈 화장실에 뜨악하고

모기장 침대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간신히 이만 닦고 침대 모기 장안으로 피신하여 핸드폰을 손에 쥐고 새벽 4시경 겨우 잠에 들었다.

그래도 모기장을 친 침대는 뭔가 아늑했다.  시간이 1970년대로 흘러 간 느낌. 그 시대에 한 번 살아보고 싶었는데.

그리고 드디어 아침. 눈을 떠보니 이미 시간은 11시 반.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여긴 어디...... 참 체크아웃 시간은? 나는 황급히 1층으로 달려 내려갔다.

호텔 1층 카페

사람들은 평화롭게 아침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체크아웃 시간을 물어보니 11시란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지금까지 내 눈이 그렇게나 커지는 줄도 모르고 살아왔을 만큼 내 눈이 아주 크게 떠졌는지,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은 이미 11시 반. “it’s ok” 다행히 친절한 리셉션 guy가 괜찮다고 해줘서 나는 다시 방으로 튀어 올라가 씻을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이 느낌. 아 오픈 화장실이여.

그래도 발을 치자 가려지긴 했다. 문제는 이 발코니가 호텔 안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통풍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

게다가 1층 카페의 사람들의 활기찬 말소리가 들려오기까지 해서 아무래도 여기서 화장실 사용은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샤워는 해야 할 듯하여 물을 틀어보니 뜨신 물이 잘 흘러나왔고 날씨도 따뜻하여 기분 좋게 샤워를 마쳤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화장실 사용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냥 하루 더 여기서 예약할 걸 하고 후회가 되고 말았다. 샤워를 마치니 이 호텔이 마냥 좋아지는 것이 아닌가... 이건 마법이다.

급히 체크아웃을 하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오후 시내를 돌다가 예약해 뒀던 아파트에 체크인을 했는데... 훨씬 편한 시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오픈 화장실 호텔이 다시 그리워졌다. 여행자들이 한가로이 거닐고 1층 카페에서 여행자들의 웅성거리던 소리까지. 다시 쿠알 람푸르에 간다면 그 오픈 화장실이 있는 Tien Jing 호텔에 머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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