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안, 침묵의 티 하우스 ( Reaching out Tea House)
유난히도 힘든 나날이었다. 심포지엄 시작 이틀 전에 베트남으로 날아가 심포지엄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그리고 드디어 기다렸던 마무리를 짓는 날이 찾아왔다.
우리는 등불과 관광객으로 시끌시끌한 호이안에서 침묵을 간절히 찾고 있었다. 어수선하고 게다가 비까지 내려 정신없는 호이안의 강가를 피해 쉴 수 있는 어디 조용한 카페 없을까...... 내가 혼잣말처럼 한 말에 “내가 네가 원하는 장소를 하나 알지, 나를 따라오렴” 하며 자신 있게 발을 내딛는, 이번 행사를 위해 나만큼 고생한 베트남 교수의 뒤를 나는 천천히 천천히 어슬렁 거리며 따라나섰다. 사실은 별 기대도 하나 없이.
그렇게 그녀를 따라 마침에 도착한 Reaching out Tea House Cafe. 유난히 조용한 카페 안이 신기하게 느껴지면서 머릿속의 답답함이 조금 풀어졌고 나는 높이가 조금 낮은 나무의자에 털썩하고 몸을 비스듬히 뉘었다.
그리고 발견한 낯선 나무 조각들과 종이 그리고 정겨운 연필. 갑자기 베트남 교수가 종이와 연필을 집어 들었다. 무엇을 마실래? 묻는다. 여기까지는 그런가 보다 했다. 우리나라 분식집에 가서도 종이 메뉴에 먹고 싶은 음식을 체크해 주거나 하기 때문에. 단출한 메뉴에서 허브티를 하나 골랐다. 베트남 교수는 베트남 전통차를 주문. 나는 그녀가 적는 메뉴를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다. 사실 말을 하기도 피곤했던 고단했던 하루. 말 자체가 피곤했던 날이었다.
그래도 호기심이 생기게 만들던 나무 블럭들. 마침내 어쩔 수 없는 질문을 했다. "이건 왜? 여기 있지?"
이 티하우스의 주문 방식이라고 했다. Staff들이 말 대신 글로 주문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말을 안 하는 거야? 아니면 못하는 거야?"
말을 못 하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카페 특성상 말 대신 침묵을 유지하는구나 했었는데 사실 말을 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분들을 Staff로 고용할 뿐만 아니라 이익금으로 청각 장애인들을 돕는 community가 운영하는 카페라고 했다. 너무 쉽게만 생각했던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지던 순간이었다.
그리던 차에 주문한 티가 나왔다. 녹차맛 코코넛이 그리고 달짝지근한 쿠키가 한 조각 딸려서 나왔다. 베트남 교수가 화장실을 간 사이 나온 차와 간식들. 베트남 Staff가 말 대신 그리고 소리 대신 손짓, 눈짓, 몸짓으로 차를 마시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만약 그냥 평범한 찻집에서 베트남 사람과 함께 있던 상황이었다면 필요했을 베트남 사람의 통역 같은 게 전혀 필요치 않던 순간. 나는 소리 없는 설명을 그대로 다 알아 들었다. 차를 잔에 부을 때 차의 찌꺼기가 나오니 꼭 차 받침대를 이용해서 차를 붓고 받침대를 옆 접시에 이동한 후에 차를 마시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때 문득 의문이 생겨 나는 나무 블록 중 Questions을 집어 들고는 연필을 쥐고 종이에 적었다.
'어떤 것이 허브티인가요?'
그러자 Staff가 옥색 차 도자기를 가르쳤다. 그리고 나는 그 흔한 “Thank you" 대신에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우리 삶에 말이 가끔은 필요가 없음을 느꼈다. 말 대신 전하는 손짓과 눈짓 혹은 몸짓이 이렇게 위안을 주고 귀엽게 느껴질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 어느 순간, 가끔은 그리고 특히 힘들 때에는 침묵 속에 살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찻집에서 나는 침묵이라는 언어를 배울 수 있었다. 침묵이 주는 그 소중한 순간을 말이다.
그리고 그 침묵을 즐겼다. 여유롭게 차를 한 잔 마시고 달짝 지근한 쿠키를 한 잎 베어 물고 그리고 베트남 교수의 코코넛 말린 것을 뺏어 먹으면서 우리는 함께 심심치 않은 이 침묵 속에서 피곤을 풀었다..
때론 거리를 한가로이 거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그렇게 힘든 하루의 피로를 침묵 속에서 풀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