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딱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압축해 맛보게 해준, 그토록 치열했던 회사를 그만둔 지 어느덧 석 달이 지나버린 것이다. 처음 한두 달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여행을 다녀오고, 가족들과 몰려드는 일정 속에서 쉴 새 없이 움직였으니, 정작 회사 생활을 접었음에도 ‘바쁘다’는 감각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야 비로소 오전 시간을 온전히 홀로 보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물론, 적당한 수입만 있었더라면, 가끔씩 프리랜서로 일하면서도 자유롭게 사는 삶을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여기저기 다양한 시도를 해봤지만, 생각처럼 꾸준한 현금 흐름을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결국 커리어 플랜을 다시 짰다. 그에 맞춰 공부하고, 바라던 회사의 문을 두드려도 보았다. 그러나 지원서의 끝자락에서 나를 맞이한 건 “서류 검토 중”이라는 밋밋한 상태 메시지뿐. 면접 기회조차 잡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자, 마음 한켠이 흔들리는 걸 부인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는 진부한 말은 때로 예리한 진실이 되었다.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며 일상의 조각들을 다시 맞춰보고, 과거의 기억을 되돌려보는 사이, 흔들리던 멘탈도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은 플랜이었음에도 내가 원하는 그 자리만을 고집하며 더 큰 스트레스를 안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해보게 되었다. 세상일이란 대부분 내 의지대로 굴러가지 않고, 운에 좌우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어쩌면 나는 그동안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음을 조금 더 넓히기로 했다. 1순위 회사에 올인하던 전략에서 벗어나 2순위, 3순위, 4순위의 문도 두드려보는 것이다. 한 달 넘게 준비하며 공부했던 그 1순위 회사—비록 몸담진 못했지만, 마치 다녀본 것 같은 기분으로 떠올릴 만큼 익숙해진 정보들이 앞으로 걸어갈 길에 하나의 밑거름이 될 거라 믿는다.
아직 내놓을 만한 성과나 결과물은 없다. 취업은 물론이고, 커리어 플랜이 실현되기까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3개월 동안 그냥 흘려보낸 건 아니다. 매일 저녁 호흡을 가다듬어 달린 거리는, 어느덧 300km를 돌파했다. 가족들과의 여행으로 마음속 응어리를 달랬고, 미국 주식에 도전해보았으며, AI 모델과 ERP라는 새로운 지식을 손에 쥐었다. 하루하루를 기록하며, 내 안의 불안과 기대를 활자에 담아내는 연습도 했다.
결국, 이 석 달은 고요한 충전의 시간이었다. 눈부신 한낮의 여유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마음 한켠 흔들리는 불안과 타협하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 시간. 결실은 아직 없지만, 그 흔적들은 분명히 내 안에 쌓였다. 그리고 나는 이 길 위에서, 다시금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걸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