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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네 살짜리 아이와 공존하기

by 유니유니

우리는 모두 가슴 속에 네 살짜리 아이를 하나씩 데리고 살아간다. 그 아이는 때때로 아무 이유 없이 울고, 갑자기 불안에 떨며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겁을 내기도 한다. 이 아이가 꼭 ‘잘못된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요즘과 같은 불안의 시대에 이 아이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실한 두려움과 인간적인 연약함을 대변하는 존재다. 부유한 이도, 가난한 이도, 유명한 이도, 무명한 이도,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이 아이를 품고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아이를 억지로 내쫓거나 지우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아이를 달래고,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며, 불안을 조용히 쓰다듬어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마음속 불안을 조금이라도 달래며, 우리의 멘탈을 관리할 수 있을까?


첫 번째로, 짧은 순간이라도 불안을 잠시 재워둘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재미있는 콘텐츠를 눈앞에 띄워놓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울고 있는 아이에게 예쁜 그림책을 펼쳐 보이는 것과 같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짧은 유튜브 영상이라도 좋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가 조용히 그림책 속 그림들을 바라보듯, 마음의 한구석이 한숨 돌린다.


또 다른 방법은 달리기에 나서는 것이다. 라디오를 들으며 숨을 고르고, 귓가에 울리는 음악이나 목소리에 집중하며 공원을 뛸 때, 달리는 몸짓은 불안이라는 꼬마 손을 잠시 놓게 한다. 뛰는 순간, 가슴속 네 살짜리 아이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며, 발끝으로 전해지는 땅의 온도를 느끼며 잠시 자신의 두려움을 놓아버린다.


또한 과거의 추억을 돌아보는 행위는 마음의 가벼운 담요가 되어줄 수 있다. 아이가 무서워할 때, “예전에 우리가 이렇게 놀았잖아. 그때 정말 즐거웠지?” 하며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은 지금의 불안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과거 속의 웃음소리, 온기, 달콤한 공기들은 현재의 바람 속에서도 여전히 향기를 남긴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시도도 중요하다. 아이는 눈앞의 사탕이 떨어졌다고 곧장 서럽게 운다. 하지만 어른은 시간을 길게 보고 사탕 한두 개가 아니라 과자 한 봉지, 아니면 다음 주에 있을 생일잔치를 생각한다. 조금 길게 보고, 지금의 소소한 문제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때, 마음속 아이도 차분해진다. 시간을 달리 살펴보면, 지금의 불안은 한 장면에 불과하고 다음 장면에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을 믿을 수 있게 된다.


세상일의 많은 부분이 운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위안이 된다. 마치 아이에게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냥 그런 일이 생긴 거야” 하고 달래듯, 스스로에게 운명을 탓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준비한 대안책 하나쯤 쥐고, 잘 안됐을 때는 “이번엔 운이 좀 나빴네”라며 시원한 맥주 한 잔과 함께 날려보낼 수 있다면, 불안은 조금 더 가볍게 흩어진다.


결국 마음의 여유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앞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 데서 싹튼다. 마치 아이가 울다 웃듯, 우리는 불안 속에서도 휴식을 허용하고, 자신을 다독이면서 살아갈 수 있다. 늘 불안을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 아이를 품으며 달래는 작은 행동과 태도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더 단단해진 멘탈로 세상 앞에 설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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