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두려움 매일의 기적> / 김하종 신부
◎ 강은 자기 물을 마시지 않고, 나무는 자기 자신의 열매를 먹지 않으며, 태양은 스스로를 비추지 않고, 꽃은 자신을 위해 향기를 퍼트리지 않습니다. 타인을 위해 사는 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돕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인생은 당신이 행복할 때 좋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입니다.
◎ 오늘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750개의 포장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오늘의 복음은 마태오복은 25장 35절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이다. 안나의 집은 복음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나 그 가르침대로 살기로 한다.
어느 날 책 한 권이 배달됐다. 보내는 이 옆에는 '안나의 집'이라는 익숙한 글자가 적혀있었다. 이탈리아인 신부님이 노숙인들을 위한 시설을 운영하는 곳으로 방송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곳이었다. 벽안의 젊은 신부는 선교를 위해 한국에 와 26년 동안 노숙인들을 위한 급식소, 자활 센터 그리고 청소년 쉼터 등을 운영하고 있었다. 감동적인 모습에 정기 후원을 신청했었는데, 첫 책을 출판하시면서 후원자들에게도 도서를 보내주신 것이다.
그렇게 처음 읽게 된 책이 <사랑이 밥 먹여준다>였고, 이후로 신부님은 <순간의 두려움 매일의 기적>, <오늘 하루도 선물입니다>라는 책을 더 내셨다. 가끔은 모르고 살았을 귀한 것들을 소개해주는 방송이 고마울 때가 있다.
'안아 주고 나눠주고 의지하는 집'이라는 뜻의 안나의 집은 거리의 친구들에게 저녁밥을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서 하루 한 끼 식사를 위해 멀리서 오는 분들에게 도시락 나눔을 이어갔다. 김하종 신부님의 본명은 '빈첸시오 보르도'지만 한국에 와 오래 지내며 '하느님의 종'이라는 뜻을 담은 '하종'으로 이름을 바꿨다. 노숙인들을 예수님 몸의 상처라고 여기고 그들에게 사랑과 밥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신부님. 다큐멘터리 속 그의 모습은 자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따뜻한 손을 내미는 사람이었다.
이듬해 차례로 발간한 두 권의 책을 추가로 구입했다. 내가 구입한 책값이 안나의 집에 조금이나 도움이 될 것 같아서는 두 번째 이유고, 신부님의 글이 맑고 따뜻했기 때문이다. 필사한 부분 외에도 마음을 울리는 구절들이 여럿 있었다.
밥을 짓는 일은 절실한 기도였다... (중략) 내가 사제가 된 이유는 신의 조건 없는 사랑을 일깨우고 무한한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다. 내게 밥과 사랑은 하나다. 나에게 십자가는 쌀 포대다.
인간으로서는 연약할 수 있지만, 사제로서는 강한 마음으로 활동한다는 김하종 신부. 그를 이 길로 이끈 건 자신의 어려움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왜 나는 독거노인과 고아들, 노숙인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가. 모두 아름다운 일이지만 덜 힘든 일을 하는 사세직을 맡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부랑자, 장애인, 교도소 수감자, 정신질환자 등과 지내려고 하는가.
난독증이라는 고통이 나의 영혼을 단련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은 내 정신을 더 민감하게 만들었고 내 존재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었다. 어떤 이유서건 고통받는 사람을 만나면 즉각적인 교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람의 고통이 내 것이 되는 것만 같았다.
신부님은 낮은 곳의 이웃들을 찾아가는 사제가 된 이유도 바로 이 '난독증으로 인한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난독증 때문에 마음이 더 예민해졌고, 주변의 고통과 나약한 모습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됐다고.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고통으로 이웃들의 고통과 하나 될 수 있었다며 난독증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신부님의 글을 읽으며 나는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누군가에게 '난독증'은 약간의 불편함 일 수 있다. 치료하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가벼운 장애일지도 모른다. 고통의 경중보다는 본인이 느낀 어려움 속에서 타인의 힘듦을 이해하려고 하는 신부님의 마음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아프고 나서 난 후 나는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이십 대 초 암 치료 이후 아픈 친구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어린이 병동을 지날 때마다 학창 시절을 병원에서 보내는 친구들을 보며 속상했기 때문이다.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학습 봉사, 보육원 노력 봉사 그리고 퇴사 후에는 맹학교에서 시각장애인 친구를 지도하기도 했다. 성당 활동을 통해 거동이 어려운 분들을 돕는 시설에도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선생님 저는 왜 이렇게 아픈 지 모르겠어요. 친구들은 2학년이 됐는데 저는 두 번이나 병원에 입원했어요."라고 말하던 K는 백혈병으로 투병했던 학생이었다. 아직 나이가 어려 슬픈 이야기도 해맑게 하는 아이의 모습에 나는 마음이 시렸다.
체육 선생님을 꿈꾸던 J가 중도 실명으로 시력을 잃고 몇 년 동안 방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속상함이 밀려왔다. 병명은 다르지만 어린 나이에 겪어야 했던 어려움들이 말로 다 하지 않아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당한 오토바이 사고로 평생을 침대에 누워있던 요셉 아저씨는 자주 이런 말을 했다.
"하느님은 나 같은 사람 빨리 좀 데려가지. 어떤 날은 새벽에 깨서 눈썹이 간지러운데 긁을 수가 없어. 수사님들을 깨울 수도 없고. 그럴 때는 속으로 막 허공에 대고 소리쳐. 장애를 줄 거면 휠체어에 앉을 수라도 있게 하지 이게 뭐냐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문제가 제일 크다고 생각했는데, 봉사를 하다 보면 아픈 사람도 아프지 않은 사람도 자신만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었다.
더 어린 나이지만 묵묵히 치료를 받고, 시력을 잃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던 친구들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요셉아저씨와 교류하며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서 배웠다.
봉사는 내 마음에 다른 이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남을 위해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제일 큰 선물을 받는 건 나 자신이다.
안나의 집에서는 지금도 550명의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기적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언젠가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서 굶주리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때, 기꺼이 안나의 집 문을 닫는 게 꿈이라는 신부님.
김밥 싼 포일로 꽃을 말아 선물해 주는 할머니, 밥 한 그릇으로 힘을 얻어 홀로서기에 성공한 노숙인 형제들, 상처를 딛고 마음속에 사랑의 씨앗을 싹 틔워가는 아이들, 하루도 빠짐없이 안나의 집을 차아와 앞치마를 두르는 자원봉사자분들, 빠듯한 형편에도 사랑을 나눠주는 후원자분들. 사랑으로 함께하는 안나의 집 귀한 친구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며 책은 끝난다.
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요즘 같은 겨울날 읽으면 가슴 한 구석을 훈훈하게 해주는 문장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