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 피천득
◉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얻었노라, 사랑의 고통을
잃었노라, 사랑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오월을 꿈꾸고 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피천득 선생의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말간 봄의 햇살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의 글은 내가 몹시도 닮고 싶은 부분이 많아 수필 한편을 통째로 적어둔 둔 경우가 많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연> 말고도 <파리에 부친 편지>, <나의 사랑하는 생활> 등의 작품을 필사했다. 특별히 <오월>이라는 글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브런치북에 담아보았다.
유행가만큼 자주 동요를 흥얼거린다. 의도하지 않아도 등산을 할 때면 '숲 속을 걸어요'나 '아기 다람쥐 또미'가 해 질 녘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볼 때면 '노을'이라는 곡이, 봄바람 살랑이는 날은 '봄바람 등을 타고'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는 매년 6월이 되면 합창제를 열었다. 반 별로 합창단, 중창단을 꾸려 맹렬히 연습하곤 했는데 나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으나 늘 반주자에 당첨되었다. 친구들이 노래하는 모든 순간에 나는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건반을 눌렀다. 당시에는 '올간'이라고 하는 풍금이 반마다 있었다. 손발이 바빠 입도 뻥끗 못했지만 이 노래가 얼마나 아름다운 곡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가사도 멜로디도 심지어는 화음까지도 조화로운 동요와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다.
리코더로 처음 실기시험을 봤던 '이슬', 에헤라디야 바람 분다~로 시작하는 구성진 노래 '연날리기', 친구들과 부르기 좋은 '수건 돌리기'와 아름다운 노랫말의 '네 잎클로버'까지.
특히 오월에는 '어린이날 노래'가 아른거리는데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아직도 목소리도 크게, 입도 더 크게 벌리는 습관이 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윤석중 작사, 윤극영이 작곡한 <어린이날 노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념 동요로 요즘도 오월이 되면 들려오는 노래다.
6학년. 우리 반은 열정적인 담임 선생님의 지휘 아래 공부도 1등, 체육도 1등 모든 성취도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반이었다. 이렇게 거듭날 수 있었던 데는 분단별로 조를 나누고 상점을 스티커로 배부해 학생들의 경쟁심을 자극했던 방법이 숨어있었다. 학급 뒤쪽에 있던 게시판에 조별로 스티커판을 붙여놓고 한 달 단위로 통계를 냈다.
발표를 잘 한 조, 청소를 잘 한 조, 과제를 잘해온 조, 역할극을 잘 한 팀 등등 스티커의 은혜는 한계가 없었다. 매달 말 결산에서 1등을 한 조는 조원 전체가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는 금액이 하사되었다. 오백 원, 천원도 큰돈이었던 우리들은 학교 앞 분식점에서 떡볶이에 계란, 라면도 추가해 먹을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을 늘 꿈꿨다. 그것도 여러 명의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그날은 어린이날을 맞아 오월 첫 주에 있던 운동장 조회 시간이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들었고, 반별로 남학생 여학생 일렬로 나란히 서있었던 기억이 난다. 몸이 막 베베 꼬여갈 때 즈음 '어린이날 노래' 제창으로 식을 마무리 한다는 멘트가 나왔다.
쿵짝쿵짝 신나게 시작하는 반주 소리가 반가워 나는 큰 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날아라 새들아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아 푸른 벌판을. 오! 월! 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나름 밴딩과 악센트도 넣어가며 목청을 높이고 있었는데, 그 옆을 지나가던 담임 선생님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윤이나! 스티커 하나 추가!"
라고 외쳤다. 노래를 크게 잘 불러서 주셨단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혼자 흥에 겨워 목젖까지 오픈하며 노래를 불렀던 게 상이되어 돌아왔다. 기분이 째졌다. 오월은 어린이날이라는데 윤이나 어린이는 부모님께 선물 받았던 날보다 이날이 더 좋았다.
당시 우리 조 이름은 '명문조'여서 내가 속한 명문조에는 귀하디 귀한 스티커 하나가 추가되었다. 층층이 쌓여가는 빨간색 반짝이 하트 스티커를 보면서 흐뭇하게 미소 지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 큰 소리로 노래를 잘 부른다고 스티커를 주는 선생님은 없다. 스티커를 모으면 분식을 사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는 스티커에 한 장에 목숨 걸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오월을 노래하는 어린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지사 입을 크게 벌려 노래함은 학창 시절 행복했던 추억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동요를 부를 때면 특히 '어린이날 노래'만큼은 씩씩한 발성으로 목청을 높이게 된다. 두 주먹은 왜 불끈 쥐는 건지 배에 힘이 들어가고, 또렷해진 눈빛으로는 창공을 가를 수 있을 것 같다.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로 돌아가는 게 느껴진다.
오월에는 이렇게 마음 놓고 동요를 불러도 좋은 어린이날, 세상에서 가장 천천히 시드는 꽃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어버이날, 스승의 날과 성년의 날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결혼식이 가장 많은 달도 아마 오월일 것이다.
'계절에 여왕'이라는 수식어처럼 복되고 의미 있는 날들이 많은 오월을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떠올리면 흥겨움이 샘솟는 그 시절 동요들을 햇살이 내리는 공원을 걸으며 읊조릴 것이다. 왠지 이날만큼은 목소리가 조금 커져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