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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log Nov 25. 2022

지기(知己)

2022. 11. 24 (목)

셋째 출산을 앞둔 세연을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매년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데, 친구의 주소가 '산성대로'여서 신기했었다. 아마도 남한산성 부근에 살고 있어 그랬나 보다.


큰 아이 하교시간까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겨우 세수만 하고 부랴부랴 성남행. 임신 7개월이라 몸이 무거울 것을 걱정했지만 친구가 햇볕 있을 때 산책을 하고 싶다고 해서 행궁을 둘러보았다. 성문 밖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 중에서 짜박 두부가 맛있다는 집을 골라 식사를 하고, 지인분이 운영하시는 카페에 들렀다. 늦가을 정취가 물씬 나는 테라스석에 자리를 잡고 햇살 받으며 앉으니 식빵 굽는 고양이가 된 느낌이다.


친구들은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의 경우에는 지방으로 이사를 하면서 자주 만나기가 어려워졌었다. 코로나까지 겹쳐서 얼굴 보는 일보다 카톡이나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경우가 익숙했는데, 세연과는 대학 졸업 후 오히려 더 친해진 케이스다. 우리는 대학교 1학년 때 오케스트라에서 만나 같은 플륫파트에서 친분을 쌓았다. 사실 우리가 관현악단을 한 시기는 1년도 안되지만 그 후로 교양 일본어 강의도 (우연히) 함께 듣고, 회사 다닐 때 친구가 대학원에 있어서 학교 가서 만나기도 하고, 가끔 만나 전시회도 보고, 결혼식도 가고... 벌써 17년이 되었네. 사실 여기까지는 다른 친구들과 비슷하다.


전에 큰 수술을 하고 카카오톡을 탈퇴한 적이 있었는데, 걱정이 되었는지 친구가 전화로 물어오면서 더 진하게. 친하게. 자주 만나게 되었다. 요양차 지방으로 이사를 가기 전에 친구를 만났는데,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서 나왔던 기억이 있다. 육아하느라 정신없는 상황이었을 텐데도 만나서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본인 시어머니 이야기도 해주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병원에서도 포기한 사례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신 분의 이야기는 책에서만 볼 줄 알았는데, 내 친구 가족의 이야기였다니. 친구는 "너도 할 수 있다"며 힘을 주었다.


속초에 있을 때는 아이 둘과 함께 놀러 와서 만나기도 하고, 내가 서울로 이사 온 후로는 종종 친구 집으로 가서 얼굴을 보곤 한다. 지난 7월 치료가 끝난 후 처음 만난 친구였는데, 사실 세연은 내가 다시 수술을 하고 치료했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친구에게 이야기했었는데, 이렇게 시간이 지나 마음의 평화도 되찾고 멀쩡한 모습으로 친구와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햇살이 얼굴 정면을 비추었다. 그래도 좋았다. 평일이라 차도 많이 다니지 않고, 사람도 없고, 음악소리는 감미로웠고, 낙엽 내음 풀 내음이 올라왔다.


"아. 행복하다. 정말 행복해."


하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오늘도 친구와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친구도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었었기에 항상 깊이 있는 조언을 해주고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열심히 사는 게 뭐가 어떠냐'는 친구의 말이 재밌게 들린다. '항상 열심히만 살아서 이제 그냥 되는대로 살려고' 나도 최근의 생각들을 털어놓는다.


아기가 나오면  친구를 만나러 오기로 했다. 친구가 경험한 세상을 나는 모르고, 내가 겪은 일들을 친구는   없지만 우리는 이해하고  공감하며 서로의 어깨를 다독인다. '잘하고 있다고. 지금도 충분히 대단한 거라고.  좋아질 거라고.' 대학교 1학년  만나  남자의 아내가 되고, 아이 셋의 엄마가   친구 세연. 꿋꿋하게 삶을 개척하는 너의 모습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가끔 만나 세월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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