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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log Nov 25. 2022

크림 파스타 그 황홀함에 대하여!

2022.11.25 (금)


어릴 적 빨리 어른이 되어 돈을 벌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 내가 먹고 싶은 맛있는 음식을 사 먹기 위해서였다. 좋아하는 메뉴와 맛있는 식당, 카페들을 캡처해서 꼭 방문해보고 혼밥을 즐기는 데에도 망설임이라고는 없었다.


하지만


암 진단을 받은 후 가려야 할 음식들이 늘어났다. 흰쌀, 빵, 떡과 같은 정제 탄수화물과 과자, 피자, 햄버거, 치킨 등의 인스턴트 요리들, 달고 짠 외부 음식들은 거의 기피 대상이 되었다. 그동안은 '못 먹는 게 더 스트레스'라고 하며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먹었지만, 이번 치료가 끝난 후에는 식습관을 바짝 조이게 되었다. 불에 구운 육고기도 자제하고, 커피도 먹지 않고, 과일청에 들은 설탕도 안 좋다고 해서 에이드도 시키지 않았고... 이러다가 삶의 낙이 하나도 없어져 요즘은 커피는 디카페인으로 가끔, 고기는 수육이나 샤부샤부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먹고 있다.


며칠 전 잠자리에 누웠는데 크림 파스타인 '까르보나라'가 너무 먹고 싶었다. 예전 외대 앞에서 팔았던 일루소의 '버섯 크림 파스타'나 속초에 있는 단골 파스타집 호네의 까르보나라가 생각나서 혼자서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겨우 잠을 청했다. 아무데서나 파는 크림 파스타가 아니었다. 딱 그 정도의 농도와 식감과 크림의 풍미가 시급했다. 파스타도 밀가루인 점을 감안해 맛있는 크림소스 베이스의 리소토 집을 생각해냈다. 집 근처였는데, 가성비가 좋지는 않지만 까르보나라를 향한 헛헛한 내 마음을 충분히 적셔줄 수 있을만한 곳이었다.


그 와중에 내일 있을 디톡스 (하루 단식)을 대비하여 어울림 도서관에 들러 '독소를 비우는 몸'이라는 책을 빌린 일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렇게 오랜 고민 끝에 만나  크림 리소토의 

맛이란! 환상  잡채!!!


고기가 들어있어서 망설였지만, 크림 베이스 리소토는 하나뿐이라 선택권이 없었다. 슬픈 것은 그 고기마저 다소 퍽퍽하고 쿰쿰하여 안타까웠다. 어쩌다 한 번 먹는 거라 제일 맛있고 좋은 요리로 먹고 싶었는데. 그래도 크림소스의 풍미는 원하던 맛이어서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빌려  책을 휘적휘적 넘기며 식사를 하고는 고용량 비타민C 주사를 맞으러  계획이었다. 가려야  음식은 있지만 그래도 원하는 것을 먹을  있고, 몸에 좋다는 치료를 받을  있고, 책도 마음껏 읽을  있고,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계획할  있으니 지금삶도 그럭저럭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정기검진 때 CT 검사를 할 때면 6개월간 먹었던 나쁜 음식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때 피자 먹지 말걸. 그때 자장면 먹지 말걸'

검사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올까 봐 잔뜩 겁을 먹어서

'이번 검사만 잘 통과하면 다신 안 먹을게요. 절대 안 먹을게요'라고 속으로 계속 기도한다.

그러고 보면 16 동안 다소 거짓부렁을 했던  같다.


하나도 안 먹고, 다시는 절대로 안 먹기는 너무너무 너무 많이 어려운 일이다.

요즘은 최대한 자제하되 정말 먹고 싶은 음식음 먹고, 운동과 반신욕을 착실하게 하려고 한다.


크림 리소토 한 접시가 가져다준 황홀함에 마음이 가뿐해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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