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에 나날이 기쁨

내 꿈은 한컴 타자 왕

by 윤이나

한때 '왕'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십 대가 막 시작될 무렵 접한 '컴퓨터'라는 세계는 나를 '한컴 타자 왕'으로 이끌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유니텔,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통신이 보급되면서 컴퓨터를 가르치는 학원이 우후죽순 늘어나기 시작했다. 책도 티비도 아닌 생소한 매체의 등장에 엄마는 바로 학원을 등록해 주었다.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뒤처질 수는 있을지언정 문외한은 되지 말자는 것이었다.




나는 컴퓨터 학원에서 맹렬히 타자연습을 했다. 컴퓨터와 관련된 대단한 이론을 배우는 건 아니었다. 기억 속에 컴퓨터 학원은 선생님, 친구들과 모여 간식을 먹으면서 신나게 한컴타자 연습을 하던 모습이었다. 숙제가 많았던 다른 학원에 비해서 컴퓨터는 부담이 없었다. 나머지 공부도 없었고, 쪽지 시험도 없었다. 매번 시험을 봐서 1등부터 순서대로 학원 벽면에 이름을 써붙여 놓는 일도 없었고, 진로 상담이나 부모님과의 면담도 없었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 '타닥. 타닥. 타닥' 키보드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만이 교실을 가득 메웠다.


제일 좋았던 프로그램은 '산성비'라는 게임이다. 파란 블루스크린 같은 바탕에서 위에서 아래로 단어들이 내려온다. 초급은 하나씩 천천히,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갈수록 길고 어려운 단어들이 비처럼 떨어졌다. 빈칸에 단어를 입력하면 떨어지던 단어가 사라지는 방식으로, 특별히 파란색 단어를 면 일정 시간 감추기·속도 조절·pH 회복·특수 효과가 발동하기도 했다.


매일 이렇게 거침없이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한컴 타자, 특히 '산성비'게임 덕분이었다. 무수히 했던 게임의 단어 중에 내가 제일 좋아했던 말은 '나날이'였다.

'나날이, 나날이, 나날이...'

'나날이'를 입력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었다. 받침도 그리 어렵지 않고, 같은 자음 'ㄴ'을 연달아 치는 게 수월했다. 어감도 좋았다. '매일매일', '하루하루' 보다 '나날이'라는 말이 지금도 더 정감이 간다. '나날이'라는 단어 뒤에는 날로 날로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일들이 일어날 것만 같다.


'나날이'가 주인공이던 산성비 게임에 열중하며 중간중간에 치토스를 먹는 일도 잊지 않았다. '와작 와작' 과자 씹는 소리가 타자 소리와 어우러져 두 배로 경쾌했다. 하늘에서 단어가 내려오기 전 입에 털어 넣는 한 주먹의 도파민이란. 짭조름한 치토 과자의 맛을 음미하며 한컴 타자왕이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나날이를 좋아하던 나는 '나날이'에 나날이 기뻤다.


날이 갈수록 타자실력이 느는 게 몸으로 느껴졌다. '메밀꽃 필 무렵', '들 사람의 얼' 같은 단편 소설을 연습할 수도 있었지만, 역시 나에게는 '나날이' 만한 것이 없었다. 뭘 하다가도 마무리는 언제나 산성비 게임이었다. 난이도가 어려운 다른 프로그램을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내 쉴 곳은 오직 '나날이' 뿐이었다.



'나날이'가 그 시절 컴퓨터 학습의 팔 할이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코딩을 배운다고 한다. 나는 아직도 코딩의 정확한 정의를 모른다. 그저 내가 배우던 컴퓨터 세상과는 다른 차원의 학습이라는 것만 알 뿐.


어른이 된 나는 한컴 타자 왕을 꿈꾸던 때와는 많이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컴퓨터 자판을 빠르고 정확하게 치는 것은 더 이상 자랑이 아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것과 물속에서 숨을 오래 참는 일도 어릴 적만큼 자랑스러운 일은 못 되었다. 어른이 되니 사람들은 더 이상 구구단을 틀리지 않고 외울 수 있다거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를 헷갈리지 않고 부를 수 있다고 뽐내지 않았다.


망태 할아버지가 무서워 울던 아이는 이제 없었다. 전쟁이 날까 봐, 엄마 아빠가 죽으면 어떻게 하냐고 서러운 눈물을 흘리던 아이도 멀어졌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과자를 먹으면서 자판을 치지 않는다. 매콤한 양념은 입으로 들어갈 땐 맛있지만 자판 사이에 끼면 난감함이 되었다.




설날에 온 가족이 모였다. 밤톨같이 귀여운 조카는

"서후 이제 다섯 살 돼요. 서후 이제 다섯 살이야."

몇 번씩이나 조막만 한 손가락을 쫙 펼쳐 숫자 '5'를 보여줬다.

"우와~ 우리 서후 이제 다섯 살이야? 형아네. 서후는 꿈이 뭐야?"

"여섯 살 되는 거요."

여섯 살이 꿈이라고 말하는 서후는 망설임이 없다. 진실로 그게 꿈이기 때문이다.

"고모는 몇 살인 줄 알아? 고모는 사십 살이야."

"사십 짤?"

"응. 사십이면 그러니까... 다섯 살이 여덟 번 있어야 돼."

아이는 아직 사십을 모른다. 나는 오 곱하기 팔을 알려주려다 빠르게 포기했다.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나는 서후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산 걸까. 아이의 세상은 작지만 또 얼마나 소중한지.

나의 다섯 살은 컴퓨터도 핸드폰도 알지 못했던 시절인데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했다.


어린 시절 내 꿈은 한컴 타자 왕이었다. 왕위 계승을 위한 치열한 싸움도 없고, 왕이 됐다고 매일 극진한 수라상이 차려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꼭 되고 싶었다.

든든한 외척 세력도 지략이 뛰어난 신하들도 없었지만, 천 번 만 번 입력하던 '나날이'가 나를 왕으로 만들어 같았다. '나날이'에 나날이 기뻤던 날에 무수한 감사를 표하며 그 시절을 추억하는 마음으로 한번 더 남겨본다.


나날이... (아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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