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텅 빈 마음>
중학교 2학년. 친구에게 이승환의 <무적전설> 라이브 CD를 빌렸다. 그동안 내가 듣던 흔한 유행가와는 분명 다른 차원의 노래였다.
'세월이 가면', '내게', '한 사람을 위한 마음', '덩크슛',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 침묵의 기록', '애원', '천일동안', '가족', '당부', '다만'... 주옥같은 노래들이 가득한 이승환의 명반이었다. 공기 반 소리 반 읊조리듯이 내는 목소리도, '어린 왕자'라는 별명에 걸맞는 고운 미성도, 힘차게 지르는 샤우팅 창법도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기에 충분했다.
엄마에게 나도 CD를 사달라고 조르는 대신 원하는 대학에 가면 이승환 콘서트를 보내달라고 했다. 제일 좋은 자리, 제일 비싼 좌석으로.
친구들이 잘 듣지 않던 이승환 노래에 열광하던 소녀는 곧 대학생이 되었다. 숫자와 그래프를 보는 전공이 적성에 안 맞긴 했지만 문학수업을 원 없이 들을 수 있었던 대학 생활이 행복하기만 했다. 덕분에 혼자 듣는 수업이 많았다.
오전에 '한국 수필문학의 이해'를 들은 뒤 오후에 '문화인류학'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강의실에 자리를 잡으려는데 햇살 내리쬐는 창가에 혼자 앉은 남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머리, 까만 눈동자, 유난히 속눈썹이 검고 길었던 남자아이였다.
'쟤는 남학생이 혼자 문학 수업을 듣네...'
글 쓰는 남자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었을까, 햇살 아래 한 마리 사슴처럼 청아하게 앉은 모습에 호기심이 생긴 걸까. 수업 중에 이따금 그쪽을 흘긋 보기도 했다.
다음 수업에서 아까 본 그 학생이 바로 옆 자리에 앉아있었다. 우리 과 신입생들에게 나눠준 파일케이스가 책상 위에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말을 건넸다.
"저기요. 상경대세요?"
아이는 맞다고 했다. 우리는 같은 학번 새내기였다. 금방 친구가 되어 한 학기 내내 목요일을 함께 했다.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식탁 위에 놓인 S의 폴더폰을 열어 보았을 때, 바탕화면 하단에 '텅 빈 마음'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텅 빈 마음? 이거 이승환 노랜데?"
"어! 너 어떻게 알아?"
나는 대수롭지 않게 무적전설 CD를 들으며 이승환의 짱팬이 되었다고 말했다. 수능을 잘 보면 콘서트 제일 좋은 자리로 보내준다고 했던 부모님과의 약속도 덧붙였다. S는 반색을 하며 말했다.
"나랑 가자. 올 연말에 나랑 같이 가면 되겠다!"
우리가 세 살 때 나온 이 노래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음악과 책 여러 가지 취향을 공유하며 그와 점점 가까워졌다.
그는 수줍은 많고 얌전한 학생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손가락 길이를 언급하던 문화인류학 수업에서
"야. 손 좀 봐봐."
라는 내 말에 내민 S의 하얀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떨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그가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라는 것은 손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너 혹시 이 시 알아?"
비슷한 결을 가진 S라면 뭐든 알 것 같았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으니
저 물도 내 맘 같아 울며 밤길 흐르는구나.
연가처럼 보이는 이 시조는 단종의 유배길을 안내한 금부도사 왕방연이 어린 왕을 청령포에 두고 돌아오며 지은 글이라 전해진다. 언어영역 시간에 배운 고전 시가 중에 제일 애틋하게 마음에 품고 있던 문장이었다. S는 들어봤다고 하면서 허난설헌과 그의 스승인 손곡 이달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스무 살 밖에 되지 않던 나는 이런 이야기를 친구와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것도 남자 사람과 말이다.
연말에 있었던 콘서트에서 카운트 다운을 하며 상기된 연인들과 달리 우리는 어색하게 내외하며 서있었다. 이성 친구라고 사귀어본 적 없는 나이. 나는 순진했고 그는 백지였다.
콘서트 뒤풀이로 마련한 자리에서 S가 물었다.
"너 대학 와서 마음에 드는 사람 있었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갔을 텐데, 눈치를 밥 말아먹는 나는 신나게 다른 사람 이야기를 했다. S는 앞에 놓인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야구 연습장에 들러 한참을 말없이 공만 쳤다.
'탕. 탕. 탕'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배트에 맞은 공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엇갈렸다.
2학년이 되어 S는 군대로 나는 유학을 떠났고, 졸업 후에도 한 번 만났지만 각자 처한 상황이 달라 연인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다시 입원하게 되었을 때, 망설이다 S에게 연락을 했다. 실시간 메신저도 지우고 수험생활을 시작한 S는 고향에서 공부 중이었다.
"오늘 나에게 엄청 중요한 일이 있는데, 혹시 나를 위해 기도 해줄 수 있어?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다. 건강 잘 챙겨."
수술장에 들어가기 전에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나에게까지 연락을 주고. 엄청 중요한 일인가 보다. 오늘 하루 윤아녜스를 위해서 기도할게! 스무 살 때 처음 알게 됐을 때부터 너는 맑고 따뜻한 아이라고 생각했어. 그런 너라면 오늘 분명히 잘 해낼 거야! 파이팅!"
문자를 받고 용기백배가 된 나는 씩씩하게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S는 나의 이런 후일담을 모른다. 오래 준비했던 시험에 합격한 후 그와 연락이 닿았지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나중에 S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그때 고마웠다"는 말도, "사실 이런 사정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할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그의 번호를 지우고 SNS를 정리했다. 더 이상 이승환의 노래도 찾아 듣지 않았다. 이따금 피아노를 치며 감성 넘치게 부르던 승환옹의 발라드와 신간 음반도 심드렁할 뿐이었다.
가끔 <건축학개론> 같이 대학 시절의 풋풋한 추억을 담은 영화를 볼 때면 사슴같이 맑던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두 배는 더 많은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기억 속 S의 모습은 앳되고 순수한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제 라디오에서 이승환 노래가 나와도, '텅 빈 마음' 그 노래가 들려와도 이제 마음이 스산하거나 쓸쓸하지 않다. 내 옆에는 텅 빈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남편이 있고, 그는 그대로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추억은 추억일 때 가장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