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못할 사건 또 잊지 못할 사건

영턱스클럽 <질투>

by 윤이나

잼, 쿨 등 혼성그룹의 계보를 잊는 데는 '영턱스클럽'도 한몫을 했다. '정'이라는 노래가 큰 사랑을 받았지만 나에게는 2집 타이틀곡인 '질투'가 강렬하게 남았다.


새 털 같이 많은 초등학교 6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걸스카웃' 활동이었다. 운동회도 수련회도 재밌었지만 스카우트는 3년이라는 긴 시간을 두고 활동할 수 있어서 꽤 진한 추억이 되었다. 갈색 빵떡 모자와 스카우트 단복, 손가락 세 개를 펼쳐서 스카우트 선서를 했던 것, 활동을 하나씩 끝마칠 때마다 배지를 부착하며 좋아했던 것도 생각난다. 어깨띠가 무거워져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늘어나는 배지에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회합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걸스카우트 노래 여전히 생생한 걸 보면 틀림없이 나에게 좋은 시간이었나 보다.

그중에서도 중 제일 재미있었던 활동은 초여름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1박을 하던 '뒤뜰야영'이었다. 레크리에이션, 장기자랑, 담력 테스트, 캠프 파이어 등 함께 생활하는 법을 배우며 협동심을 기르는 프로그램이다. 잔뜩 겁을 먹고 담력 테스트에 다녀오면 텐트 안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킨이 놓여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 만나는 산타의 선물처럼 스카우트의 뒤뜰야영은 공짜로 치킨을 먹는 날인 줄 알았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 프로그램 하나를 무사히 마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짭조름한 치킨을 흐뭇하게 먹고 나면 운동장 가운데 모여 축제의 서막을 열었다. 스카우트는 4, 5, 6학년 각 두 명씩 여섯명이 한 조였고, 이렇게 큰 행사에는 보이스카우트와 아람단까지 함께였다. 레크리에이션이 끝나면 단체별로 준비한 장기자랑 시간이 있었다. 캠프파이어의 흥을 돋우기 위해 몇 달 전부터 언니들과 모여 장기자랑을 연습했다. '장기'가 꼭 춤일 필요는 없었을텐데, 초등학생들이 모여 제일 원초적으로 즐거울 수 있는 건 역시 춤뿐이었다.

이때 내내 들었던 곡이 영턱스클럽의 '질투'였다. 선택권은 없었다. 6학년 언니들의 진두지휘 하에 곡이 정해졌고, 어느 부분에서 등장해서 언제 퇴장하지도 모두 선배들의 몫이었다. 한 살 차이가 왜 이리도 컸는지, 내 나이 5학년. 6학년 언니들 눈치 보랴 4학년 동생들 챙기랴 둘째의 삶은 퍽 애처로웠다. 강당에서 춤 연습을 하며 질리도록 들은 노래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 즈음 선배 한 명이 소리쳤다.

"'불티나게 삐삐 날 찾느라고 쳤지.' 이 부분에서 너네가 나와야지. 여기까지 걸어와서 춤추란 말이야."

무대 구조상 앞까지 걸어가서 춤을 춰야 했는데, 출발선에 있던 우리들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눈만 꿈뻑이고 있었다. 팔짱을 낀 언니들 매의 눈으로 우리의 동선을 감독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가차 없는 질책이 날아왔다. 춤을 춰야하는데 아무래도 흥이 나지는 않았다. 가뜩이나 몸치인데 여러 사람 앞에서 뭘 하려니 팔다리가 각자 자기주장을 펼치며 따로 놀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대충 몸을 흔들고 들어왔다. 게다가 내가 춤을 춰야 했던 부분은 여자 멤버들이 랩을 하는 소절이었다.

"불티나게 삐삐 날 찾는다고 쳤지. 또 사정없이 우리 집에 전화해도 소용없어."

이런 내용의 랩에는 도대체 어떤 춤을 춰야하는지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정신줄을 놓고 신나게 흔들었어야 했는데, 샌님 같았던 나는 친구들과 무대 중앙까지 당당하게 걸어가 막대기처럼 꼿꼿하게 장기자랑을 마쳤다. 다행히 순위를 매기는 건 아니어서 춤이라고 하기에 애매한 움직임을 보였다고 해서 불이익은 없었다. 스스로 좀 민망했을 뿐.

'리듬에 몸을 맡긴다'는 건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것 같다.




요즘도 설거지를 하면서 종종 90년대 댄스 음악을 듣는다. 노래 한 곡을 선택하면 유튜브가 알고리즘으로 이 시절 유행가들을 들려준다. 자자의 '버스 안에서', 솔리드 '천생연분', REF '이별공식', 김건모 '스피드', 김현정 '그녀와의 이별'... 가요계에서 댄스곡의 전성기는 90년대가 아니었을까? 신나게 흥얼거리며 집안일에 몰두하다 보면 힘들다는 생각이 들 새도 없다. 노동요로 특화된 노래 덕분이다.


기특한 알고리즘이 용케 영턱스클럽의 '질투'를 찾아냈다. 수세미에 거품을 내다가 흠칫 놀란 나는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어! 이 노래!'

뒤뜰 야영의 기억이, 북새통 속의 장기자랑이 스쳐간다. 통이 넓은 힙합바지를 입고 왕꿈틀이처럼 꼬물거리던 나의 모습도 보인다. 후렴이 지나고 노래가 점점 절정을 향해 가면 곧 그 부분이 나올 것이다.

"불티나게 삐삐 날 찾는다고 쳤지. 또 사정없이 우리 집에 전화해도 소용없어."

나는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사정없이 접시를 닦았다. 몸으로 배운 건 오래간다고 하던데 엉덩이가 저 혼자 씰룩대고 있다. 아뿔싸. 나 지금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있는 건가?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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