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활동으로 방문하게 된 곳이 있다. 몸이 불편한 형제님들이 계신 '사랑의 선교수사회'라는 곳이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여 작은 도움을 드릴 수 있었다.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주말에 한 번씩은 빨래 봉사를 했다. 거동이 불편해 거의 누워만 있는 아저씨들의 식사를 챙겨드리고 말벗을 해드리기도 했다. 그러다 요셉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이곳에 입소한 지 가장 오래되신 분이었다. 직선적이고 거침없는 성격으로 봉사자들을 쓱 한번 쳐다보고는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지시했다.
"방을 닦아라. 냉장고에 요구르트를 가져와라. 눈썹 위에 연고를 발라달라. 오른쪽 다리를 옆으로 좀 이동해 달라." 등등
빡빡 깎은 짧은 머리에 목소리는 또 얼마나 우렁찬지.
처음에는 아저씨가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친해지면 누구보다 털털하고, 뒤끝 없고, 정 많은 스타일이었다.
형제님의 말에 따르면 군대를 제대하고 오토바이 사고가 크게 났는데 깨어나보니 몸이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목 밑으로 신경이 마비되어 누워서 생활해야 하고 배변도 모두 침대에서만 가능했다. 식사 후에는 소화를 시키기 위해 배를 꿀렁거리며 몸을 움직이곤 했는데 그래야 가스가 덜 찬다고 했다. 새벽에 얼굴이 가려울 때가 제일 고통스럽다고도 말씀하셨다.
"이렇게 다칠 거였으면 휠체어라도 탈 수 있게 했으면 좋지 않았냐."
며 하느님께 따지고 화도 많이 냈었다고. 아저씨의 삶은 감히 내가 헤아릴 수도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겠지만 가끔씩 그분이 하는 말에 공감이 갔다. 아파도 될 나이는 없다지만 나도 한 번씩
'어차피 아플 거 조금 더 나이 들어서 아팠다면...'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 친해졌을 때 아저씨가 젊은 시절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다. 늠름하게 서있는 사내가 어딘지 낯설었다. 사진 속 잘생긴 청년의 첫사랑 이야기도 듣고 나의 고민도 나누며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하루는 다른 일정을 마치고 집에 가는데 요셉 아저씨가 생각났다. 개인 사정으로 몇 주째 봉사를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아저씨 잘 지내?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기운이 하나도 없네..."
친구에게 보내는 것처럼 편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저씨는 입에 긴 막대기를 물고 버튼을 눌러 휴대폰을 사용했고, 본인이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가끔 메시지로 부탁하거나 전화가 오기도 했다. 조금 후에 도착한 아저씨의 말이
"기분을 빡~ 빡 땡겨."
나는 그 문자를 보고 폭소했다. 기분을 빡 빡 땡기라니. 신박한 발상이었다. 아저씨는 늘 유쾌했다.
형제님은 하루종일 천장만 보고 있는데 이렇게 나돌아 다니면서 기운 없다고 말하는 게 꼭 투정 같았다. 그리고 대화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알았어. 아저씨. 고마워! 아저씨도 잘 지내고 있어."
고맙다고. 다음에 만날 때까지 잘 있으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게 벌써 오래전. 아저씨는 작년 설을 앞두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가끔 아저씨가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아저씨, 왜 그런 소리를 해! 더 오래오래 살아야지. 아직 젊다구요."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었다. 하지만 어쩌면 아저씨의 그 말이 늘 씩씩했던 형제님의 진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같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기분도 자연스럽게 침잠한다. 그럴 때면 천둥 같은 목소리로
"기분을 빡~ 빡 땡겨"
라고 말하는 아저씨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