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를 하며 갑자기 늘어난 시간들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 <책 100권 읽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와 읽고, 좋은 구절은 필사하고, 다시 반납하러 가는 과정은 산책을 겸한 놀이 같아서 휴학 기간 동안 다양한 책들을 접할 수 있었다.
틈틈이 자격증 공부도 하며 다음 학기 시간표를 미리 짜두기도 했다. 한 번은 나를 오래 두고 본 친구가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네가 그때 항암치료 할 때 너네 집에 놀러 갔었잖아. 책상 위에 토익책이 펼쳐져 있길래 얘가 이 공부를 지금 왜 하지? 싶었다니까."
라고 말했다. 친구는 그때 내 모습이 꽤나 이상했나 보다.
속초에서 항암치료를 했을 때는 아픈데 집에만 있으려니 통증에만 집중하게 되어 설악산에 올랐다.폐활량도 늘리고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을 끌어올릴 겸 시작한 산행이었다.
처음에는 얼마 못 가 쉬고, 금방 또 쉬고를 반복했지만, 몇 개월 후에는 한 번의 쉼 없이 거뜬히 목적지에 오르는 '설악산 날다람쥐'가 되어있었다.
누워있기 답답해서 시작한 등산은 아름다운 동식물과 설악산을 찾는 여행객들을 구경하는 재미로 투병 중에 큰 활력이 되었고, 자연 깊숙한 곳에서 오는 안식과 위로를 안겨 주었다.
서울살이를 접고 무작정 시골로 내려가면서도 처음 든 생각은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해질 수 있을까?'가 아닌 '그래서 여기서 난 뭐 하지?'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는 애당초 내 사전에 없는 듯싶었다.
요양을 위해 내려온 곳에서도 할 일이 없어 방황하고 있는 나를 보며 친구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기자단에 대해 알려줬다. 나처럼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글 쓰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거였다.
나는 그 길로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활동들을 찾아봤고, '강원도 서포터스'와 '속초시 SNS 홍보 기자단'으로 3년간 활동했다. 내가 사는 지역의 맛과 멋에 대해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고, 나도 모르는 우리 고장의 역사와 문화, 인물 등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기자단으로 활동하며 지급되는 소정의 활동비를 모아 항암치료 종료 후 홍콩으로 트래킹 여행을 다녀온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타임지가 선정한 아시아 최고의 트래킹 코스인 '드래곤스 백 (Dragons back)'이 홍콩에 있는데, 용의 척추모양을 한 구간을 걷는 동안 양 옆으로 바다를 감상할 수 있어 인기가 좋은 곳이었다.
어느 신문에서 이 기사를 본 것이 자극제가 되어 열심히 설악산을 오르며 체력을 길렀고, 기자단 활동을 통해 여행경비를 모아 홍콩으로 향했다. 4시간여의 트래킹 끝에 정상에 오르자 길고 험난했던 치료를 마치고 비로소 홍콩에 와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지금의 이런 정신력과 마음가짐으로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뿌듯한 마음으로 여러 장의 기념사진을 남기고산을 내려온 기억이 있다.
나는 이런 내 모습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아프지 않았을 때에도 성실하고 부지런히 살던 나인데, 큰 병으로 죽음 가까이에 살며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회사가 아니어도 시간을 쪼개어 할 일을 생각했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도 굳이 만들어서 했다. 그리고 그 계획들을 빠짐없이 완수해 나가면서 스스로가 아주 잘 살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본 영화 한 편이 공고했던 신념에 균열을 가져왔다.
<곰돌이 푸 : 다시 만나 행복해>라는 영화로 만화를 실사로 구성한 작품이었다. 여유 있는 날에는 보고 싶은 영화나 전시 등을 찾아다니며 바쁘게 지내던 나였다. 푸는 오랜 친구인 로빈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불가능은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매일 아무것도 하지 않아.
아무것도 안 하다 보면 대단한 뭔가를 하게 되지."
어른이 되면서 삶의 여유를 잃어가는 동료에게 푸가 건네는 대사다. 나는 마치 그 말이 나에게 하는 이야기 같았다.
매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점점 낙오되고 뒤처질 것 같아서. 내가 쉰 이십대와 삼십 대는 앞만 보며 달리기에도 부족한 시간들인데, 자주 아파 멈춰있으니초조해서. 무언가해야 할 것 같은 강박감에 스스로를 옥죄였다. 물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모든 일을 미루고 쉬었지만, 쉬어도 되는 날에 무언가를 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다 보면 더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발상이었다.
사실 그랬다. '어떻게 일하느냐' 보다 '어떻게 쉬느냐'가 생산성 극대화와 만족감 향상에 기여하는 부분이 높다고 한다. 많은 일을 하면서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법만 생각했지 '어떻게 하면 더 잘 쉴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다.
잦은 수술과 치료로 남들보다 약한 체력을 인정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피로해지는 몸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피곤해지면 몸의 이곳저곳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건강 염려증'이 생겼고, 늘 재발의 두려움 속에서 유리멘탈을 부여잡고 있었다. 이런 나야말로 남들보다 훨씬 더 느린 템포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쓸모없는 행위는 하지 않고, 소모적인 만남도 지양하고, 불필요한 계획은 세우지 않는 그런 삶. 실천이 어렵겠지만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했다는 것만으로도 남은 인생을 꾸려나가데 큰 수확이었다.
과거의 나의 삶을 모두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삶에 대한 애착과 욕심, 여러 가지 계획들과 그것을 달성하며 느꼈던 성취감들은 분명 나를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다만 앞으로의 나의 삶은 충분히 느리고 여백이 많은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