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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log Oct 15. 2024

소확행

삶에 큰 일들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작은 행복을 모아 보기로 했다.


나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으로 햇빛이 쨍쨍한 날과 비가 땅을 뚫을 듯 퍼붓는 날을 좋아한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맑은 날이 더 많았고, 장마철에 물 웅덩이를 찾아 첨벙첨벙 지나는 유쾌한 일탈을 즐기며 1년 중 대부분은 행복했다.


전을 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면 항상 라디오놓는데, 좋아하는 노래나 오늘 잠시 흥얼거렸던 곡이 나오면 텔레파시가 통한 것처럼 신기했다.

무엇보다 우연히 바라본 시계가 59분이라 얼른 라디오 채널을 맞출 수 있을 때 가장 짜릿한 행복을 느꼈다. 작가들이 공들여 쓴 첫 멘트인 '오프닝'부터 정주행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DJ의 목소리로 한 토막의 문장을 듣고 나면, 책 속의 신선한 한 구절을 삼킨  포만감이 들었다.


빗소리, 새소리, 파도 소리,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를 들을 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시골에 내려갔다 올라오니 도시에 인위적인 소음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되었. 그래서 가끔 산이나 바다, 계곡 등에 가면 이어폰을 꽂거나 핸드폰을 보는 대신 자연 그대로를 바라보며 그 소리를 즐기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자연이 내는 소리는 마음을 어루만지는데 최고였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눈 내리는 소리'였다. 눈이 많이 오던 날 걸었던 바닷가를 기억한다. 우산 위로 눈이 내려앉으며 '사락- 사락-' 하는 소리가 났는데, 처음 들어 본 눈의 소리였다.

차가운 것 중에 가장 따뜻한 눈. 눈이 내는 소리도 참 따뜻했다.



다음으로는 편지 쓰기.

나는 손으로 쓰는 모든 것을 좋아한다. 편지 쓰기는 놓칠 수 없는 삶의 낙(樂)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손으로 무언가를 끄적거리면 마음이 조금 나아지곤 했다. 메모나 일기 쓰기도 좋지만 내 글을 받아 줄 상대가 있는 편지는 어딘가 마음을 달뜨게 한다. 말로 다 전하지 못한 진심을 한자, 한자 정성 들여 눌러쓰면 오롯이 그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이 시간이 귀하게만 느껴진다. 무엇보다 받는 이와 어울리는 엽서나 카드를 고르고, 스티커와 스탬프로 장식하면서 내 마음도 덩달아 아기자기해지는 느낌이다.

매년 지인들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카드는 '12월에 부리는 가장 큰 사치'이자 '연말을 보내는 가장 확실한 행복'이다.


원초적이고 가장 본능적인 행복은 역시 먹는 것이다. 특히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잘 먹고 잘 살려고 돈 버는 거지.'가 저절로 느껴진달까.

요즘은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과 마주 앉아 따뜻한 밥을 먹는 순간이 가장 기다려진다. 유튜브를 보면서 따라한 반찬이 제법 맛있을 때면 "와~ 진짜 맛있다. 너무 맛있네." 하는 남편의 칭찬과 함께 오늘 하루 있었던 소소한 일과들을 나누며 밥을 먹는다. 별 일 없이 지나간 무탈한 하루에 감사하고 나의 일상을 공유할 사람이 있다는 것에도 감사하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도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된다. 밥을 먹고, 두 발로 대지를 걷고, 하늘을 바라보고, 꽃 향기를 맡을 수 있고, 새소리가 들린다면 당신은 이미 행복에 꽤 가까이 있다.


현실은 바꿀 수 없지만 마음은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말처럼 쉽지 않아 나도 항상 버퍼링이 걸리지만 인생이 숨겨 놓은 작고 달콤한 초콜릿들을 꼭 한번 맛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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