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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log Oct 15. 2024

불행에서 벗어나는 세 가지 방법

원치 않았지만 암과 베프가 된 내가 정신줄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노하우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인생에는 희로애락이 있고 살다 보니 시련은 쥐도 새도 모르게 다가와 내 방 창문을 넘고 있었다. 절망 속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불가항력적인 문제가 집요하게 반복될 땐 자존감과 자신감이 바닥으로 치달았다.


독한 항암제를 맞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차수가 누적될수록 약 기운이 몸에 쌓여 부작용이 심해졌고 독한 약이 정상 세포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불면증, 우울감, 불안, 초조, 스트레스 등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졌다.

그러다 우연히 다큐멘터리에서 스르르 눈이 녹으면서 노란 복수초가 올라오는 장면을 보았다.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고 싶다...'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때의 나는 아무 흔적도 없이, 마치 이 세상에 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그러면 내가 죽고 나서 우리 부모님이 슬퍼하지 않아도 되고 장례식 같은 것도 치르지 않아도 되니까.

'죽는다'는 말이 무서워서 '눈처럼 녹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었다.




삶의 어려움은 교통사고처럼 다가오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 나에게 효과적이었던 방법은 다음과 같다.

누군가 어떠한 이유로든 자신감을 잃고 자존감이 떨어졌다면, 고민이 많고 점점 소심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했다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것 같을 때 한 번쯤 활용해 보아도 좋겠다.



1. 친구나 자식에게 하는 조언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 보기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큰 일을 겪은 편이라 친구들이 편하게 본인의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영화나 드라마 속 소재가 내 삶의 일부가 된 이후부터는 "그럴 수 있어~"와 "그러려니~"가 숙달되었고, 덕분에 조금 더 포용력 있게 넓은 관점에서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인들에게는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을 보내는 일도 빼먹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남에게 후해도 정작 본인에게는 야박했다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높았던 건지 엄격하고 유난스러웠다.

예를 들어 암 재발이 반복되면서 비난의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리고 있었는데

'내가 음식을 잘못 먹어서, 내가 운동을 덜 해서,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등 자책하는 마음이 컸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언젠가 책을 출판하고 싶은 꿈을 키우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박완서 선생님이나 김훈 작가님 같은 분들이나 책을 쓰는 거지.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암은 평범한 삶만 가져간 게 아니라 내 자신감과 자존감에도 손을 대었나 보다. 내가 나 자신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 갈 때 즈음. 문득 친구나 지인에게 하는 것처럼 나에게 말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나와 똑같은 일을 겪었다면 나는 그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했을까?


"OO야,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지금까지 이렇게 힘든 과정도 잘 버텨왔잖아.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는 없었을 텐데, 넌 정말 강하고 대단한 사람이야. 하루하루가 기적이니까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다. 모두 진심이었다.

세상이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으니 내가 나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극한의 상황이 왔을 때 스스로를 더 절벽 끝으로 밀어 넣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특히 나에게 박하고 남에게 후한 사람이라면 친구나 자식에게 하는 것처럼 본인에게 조언해 보면 어떨까? 틀림없이 따뜻함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2. 때로는 다른 사람의 고민에 집중해 보기


원래 사람이란 남의 중병(重病)보다 내 손톱 밑에 낀 가시가 더 아픈 법이다. 나에게 생긴 문제에 너무 함몰되어 있으면 해답이 보이지 않고, 실제로 세상에는 답이 없는 고민들도 많다. 그럴 때는 사실상 시간이 약이기도 한데, 혼자 동굴을 파고 골몰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이슈를 나누며 스스로를 환기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몇 년 전 성당에서 성경공부를 하며 <자기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에 대해 나눔을 한 적이 있다. 한분이 결혼을 생각했던 남자와 헤어졌던 일이 제일 힘들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 옆에 있는 자매님이 갑자기 발표한 분의 손을 덥석 잡더니 본인도 그런 경험이 있다며 한참을 부둥켜안고 우는 게 아닌가.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그들의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인생이 얼마나 평탄했으면 결혼할 뻔한 남자와 헤어진 일이 삶에서 가장 힘든 일일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암을 겪은 직후 목숨과 관련 없는 고민들에는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그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늘 외로울 거라고. 네 나이에 네가 겪은 일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에 그런 잣대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 안 된다."

고 이야기해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는 누군가의 슬픔을 나의 것과 비교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감하며 최대한 같은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노력 중이다.


SNS 속 사람들을 봐도 다 밝고 행복한 모습이지만 저마다 사연은 있고,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존재한다.

지금 혹시 '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 생각하고 있다면, 누군가를 만나 잠시라도 상대방의 일상과 고민에 집중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3. 내일 죽는다고 해도 가치 있는 문제인지 생각해 보기


다소 극단적일 수 있지만 일시적인 생각 전환에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나의 경우 큰 일에는 대담한데 작은 일에는 소심한 편이다. 걱정도 많고 고민도 많아 점점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쓰는 일이 많아졌다. 근심이 생겼을 때 회사라도 가면 9시부터 6시까지는 조금 덜 고심할 텐데, 아프고 난 뒤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한 가지에 골몰하면 내내 그 생각에 사로잡히기 일쑤였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했다는데 나에게 마지막 하루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매일 먹어도 맛있는 청국장과 보쌈 정식을 먹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좋아하는 길을 산책하고, 평화롭게 잠이 들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하는 고민은? 이 고민을 이 중요한 날에도 할 것인가? 이렇게 소중한 하루의 몇십 분을 들여서?"

라고 생각하니 대답은

 "NEVER!"




<느리게 사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이며, 22%는 사소한 일,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일이고, 오직 4%가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사실 작년 이맘 때 했던 고민도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 그때도 무언가 걱정거리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지금 하는 고민이 내일이 삶의 마지막 날이어도 가치 있는 일이라면 충분히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냥 덮어두거나 잊어버려도 좋다.

당신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부정적인 생각과 불안에 사로잡혀 흘려보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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