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log Oct 15. 2024

상처에 소금 뿌리기

약이나 주사보다 더 아팠던 건 상처에 소금 뿌리는 '사람들의 말'이었다.

암을 겪어보지 않은 지인들이 무심코 내뱉은 말이 독한 치료제보다 더 마음을 후벼 팠다.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잘 아는 데로,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는 데로 본인의 속엣말을 던지곤 했다.




나는 인간이 선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가끔 '성선설'을 의심하게 하는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인류애가 와르르 무너지기도 하는데, 오래전 성당에서 만난 지인이 그랬다.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고 수녀님의 부탁으로 내가 그녀의 세례식에서 대모를 맡게 되었다. 수술을 앞두고 있어 거절했지만 수녀님이 워낙 간곡하게 부탁하셔서 하루 시간을 내 꽃다발을 사들고 행사에 참석했다. 간단히 통성명을 하고 성당 다니면서 어려움이 있거나 모르는 게 있을 때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도 교환했던 기억이 난다. 몇 년 후 성당에서 마주친 그녀의 어머니가 우리 엄마에게 전한 말은 가관이었다.


"베로니카씨 따님 이야기 들었어요. 안 그래도 우리 딸이 그 얘기 듣고는 이 성당은 저주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개떡 같은 소리가 있을까. 좀 더 교양 있고 문학적인 표현을 찾고 싶은데, 그 당시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은 '개떡'으로도 한참 모자라다. 길 가다가 모르는 이가 아프다고 해도 '에구. 안 됐다.' 하는 게 인지상정이거늘. 암에 걸린 것을 '저주받았다', '벌받았다', '재수 없는 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본인과 자기 가족에게 그런 일이 있어났을 때도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암은 인생이 저주받고, 재수 옴 붙어서 만나는 불행이 아니다. 그냥 열심히 살다가 교통사고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고 같은 것이다.

나는 더러워진 귀와 불쾌한 마음을 탈탈 털어버리기로 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사람의 말은 담아두지 않기로 했다.


모르는 사람이 한 비수 같은 말은 그래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지만 모든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친구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항상 입원하면 제일 먼저 달려와주는 고마운 친구가 있었다. 대학 졸업식이며 인생의 대소사를 함께했고 부모님과도 잘 알고 지낸 오랜 사이였다. 그날은 단체 채팅방에서 병원 정기검진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친구는 대뜸

"나는 이나 남편만 생각하면 불쌍해."

"???"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안 되었다.

"내 남편이 왜 불쌍해?"

당시 나는 남자친구도 없었고 결혼 계획은 더더욱 없었다. 아직 있지도 않은 미래의 내 남편이 왜 벌써부터 불쌍하다는 건지. 왜냐고 묻는 나의 말에 친구는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불쾌한 마음에 나는 한동안 대화창을 읽지 않았고, 곧바로 걸려온 그녀의 전화도 운전 중이니 나중에 통화하자고 끊어버렸다.


내가 들었던 무수한 이야기 중에 이 친구의 말이 제일 아팠다. 머리 깎고 항암제 맞으면서 어떤 부작용이 있고, 그 과정들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가장 잘 아는 사이였는데. 너무 자세히 잘 알아서 나의 미래의 남편이 걱정됐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가끔 속 마음이 불쑥 튀어나오곤 하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건 본인 자유지만, 당사자 앞에서 굳이 내색을 해야 했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것을 암환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한창 힘들었을 때 처음으로 주치의에게 마음이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바로 정신과 협진을 잡아주셨고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출혈이 잡히지 않아 항암 치료가 중단된 상태였고 과호흡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었다. 진료 기록을 살펴본 선생님은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고, 나는 어떤 것은 괜찮고 어떤 부분은 힘들다고 답했다.

"이나씨, 다음 주에 항암치료를 받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다시 주사를 맞는 게 힘들지 않겠어요?"

"선생님, 지금은 너무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그 주사를 맞으면 조금 나아질까도 싶어요."

그녀는 갑자기 발끈하며 말했다.

"아니 이나씨, 지금 이나씨가 걸어온 궤적을 살펴보면 누가 봐도 힘든 데 왜 자꾸 그걸 부정하세요?"


나는 의사의 말이 놀라웠다. 오랜 시간 암과 함께 지냈지만 사실 암치료에 걸리는 기간은 6개월에서 1년 남짓이다. 재발이 있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회사생활이며 연애, 여행, 취미 활동 등 남들과 다름없는 삶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은 마치 '왜 너는 분명 불행한 인생을 살고 있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느냐'는 다그침처럼 들렸다.


나도 힘들 땐 힘들다고 한다. 울기도 하고, 분노도 하고, 하소연도 하고, 의학적인 힘이 필요하면 약도 먹는다. 암 환자도 삶의 모든 부분이 힘들다기보다 이런 부분은 힘들고, 저런 부분은 그런대로 괜찮아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매일 울면서 좌절과 절망을 반복하며 지내지는 않았다.

 

혹시 내가 신경안정제를 먹는 것을 거부해서 그런가 싶어 그녀가 시키는 대로 약을 타왔고,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몇 번 먹어봤지만 항암제, 항생제, 수면제로 흐물흐물해진 몸을 더 몽롱하게 만들 뿐 당시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약을 버리며 깨달았다. 나에게 필요한 건 약이나 따끔한 조언이 아닌, 심리적 지지와 격려 그리고 따뜻한 응원이라는 것을.

그 후 곧바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경로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상담전문가와 만나며 나 자신을 회복하고 바로 설 수 있었.




나는 암을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암이 무조건적인 불행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평생 암을 만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우연히 그와 마주하게 된다면, 그래도 잘 치료하고 남은 인생을 담담히 걸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무례한 사람들보다 함께 손잡아주고, 울어주고, 내 일처럼 슬퍼해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잘 안다. 살면서 그들에게 받은 고마움은 오래오래 곁을 지키며 갚아나갈 것이다.


남의 불행으로 본인의 행복을 확인하는 일. 편견과 아집으로 상대방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고 재단하는 일. 기도는 못줄망정 상처에 소금 뿌리는 일.

나는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이전 06화 세상에서 제일 슬픈 성적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