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단어다. 나중에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없을 때가 되면 그때쯤 천천히 생각하고 싶다.
차를 운전하다 보면 종종 도롯가에 누워있는 길고양이의 사체를 보게 된다. 특히 형체를 알 수 없이 짓이겨진 아기 동물의 그것 앞에서는 자못 숙연한 마음까지 든다. 차는 빠른 속도로 멀리, 더 멀리 달려가지만 생각은 여전히 생명이 누워있던 자리를 맴돈다.
나는 내 몸이 금쪽이라 이렇게 아픈 것도 서럽고 치료를 받으면서도 마음이 슬픈데, 저들은 똑같은 목숨임에도 불구하고 객사를 해도 슬퍼해주는 이 하나 없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장례는커녕 그나마 사체 처리가 제대로 된다면 다행일 것이다.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길. 아니, 꼭 사람이 아니라도 죽음을 애도해 주는 누군가가 있기를.
스물한 살. 암 치료 이후 처음 '죽음'을 접한 건 환우 모임에서 만난 친한 지인이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같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으며 이야기 나누던 언니였다. 나이도 제일 어리고 낯설어하는 내게
"이나야, 거기 옆에 포크랑 나이프 집어서 이거 가져가서 먹어."
친절하게 메뉴를 어떻게 먹어야 할지 설명해 주던 그녀였다.
언제부터인가 모임에서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쇄골 부근으로 암이 전이되어 다시 치료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모임이 있을 때마다 그녀의 안부를 아는 사람들에게 상태를 물었지만 늘 '더 안 좋아졌다'는 이야기뿐이었다.
영화관에서 로맨스 영화를 보고 있을 때였다. 진동이 울려 휴대폰을 확인하니 부고 문자가 와있었다.
'별세, 빈소, 입관, 발인...'
언니의 예쁜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글자들이 가득했다. 무섭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삭제 버튼을 눌러버렸다. 언니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가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무섭기만 했다. 불현듯 맞이한 언니의 죽음을 충분히 슬퍼하지 못한 것 같아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크다. 잊으려고 노력했고 아니라고 애써부정하고 싶었다.
몇 년 전 젊은 암환우들을 위한 통합 치유 프로그램인 <스쿨 오브 히어로즈>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이 과정에 함께한 동기분들 중에서도 하늘의 별이 되신 분이 있다.
Y님은 대장암 3기로 투병 중인 이십 대 중반의 앳된 소녀였다. 긴 머리에 가녀린 그녀의 모습은 한들한들 아름다운 코스모스 같았다. 암 투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그녀는 친구들이 취업했다는 연락이 오면 너무 슬프다고 했다. 본인은 기약 없이 치료를 하고 있는데, 원하는 꿈을 이루어가는 친구들을 보면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막막하다고. Y님의 눈에 금세 눈물이 고였다. 누구보다 그녀의 마음을 잘 아는 나였다.
"우리는 남들보다 조금 천천히 가고 있는 거예요. 치료만 잘 끝나면 취업도 뭐도 다 할 수 있어요."
위로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을 해줬다. 프로그램이 끝나갈 즈음 그녀의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고, 장마가 한창이던 어느 여름날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첫 치료 후 프로그램에 참여하신 분들이 대부분이라 모두들 처음 겪는 동료의 죽음에 망연자실해했다. 나 역시 그랬다. 암환자로 살며 오랜 기간 많은 일들을 보고 듣고 경험한 나였지만 '죽음'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일은 도무지 불가능했다.
그녀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작은 선물과 편지를 보냈었다. 도자기로 된 책갈피를 보고 Y님은 "직업 만드셨냐"며 아이처럼 좋아했고, 나는 순간 '내가 왜 이걸 직접 만들지 않았을까...' 자책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꼭 이겨내겠다는 그녀의 말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올해도 Y님이 떠난 날에 맞춰 미사를 올리고 그녀와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기도했다.
또 한 분의 슈퍼 히어로. 암환우 유튜버 윤주님은 나에게 <스쿨 오브 히어로즈> 프로그램을 소개해 준 분이었다. 수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강의를 멈추지 않았던 열혈 강사이자 내가 아는 제일 유쾌 상쾌 통쾌한 환자였다. 환우들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에 앞장섰던 그녀는 마지막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고 의연한 모습이었다.
나는 죽음 앞에 이렇게 초연할 수 있을까? 그녀가 다시 웃기까지 남몰래 숨죽여 고뇌했을 시간들이 감히 짐작도 되지 않았다.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해.
테오야,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 아닐까?"
나이가 들어 평화로운 마지막을 맞이하고 별을 향해 걸어가는 길. 모두가 원하는 삶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