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스토리펀딩 연재 - 노력말고 노조가 필요한 우리 7
청년의 삶을 파괴하는
‘블랙기업’
“아주 24개월을 꽉 채워 쓰고 버려졌다.”
2014년 중기중앙회 해고 계약직 여직원 유서 中.
기간제라는 이름으로,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실습생 혹은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일회용품 처럼 쓰이는 청년들의 노동, 정규직 희망고문으로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과 각종 부당함을 감내하게 만들고, 회사의 이윤과 실적을 위해 각종 영업과 고된 노동을 강요하며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기업들, 그 속에서 저마다의 노오력으로 버텨내다 하나하나 지쳐 스러져가는 청년들…
2014년 11월 9일, 회사에 내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시켜만 주시면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다는 신입사원의 애틋한 열정을 착취하고 청년의 삶을 파괴하는 블랙기업에 맞서 싸우기 위해 청년유니온이 나섰습니다. 한국판 블랙기업 운동을 선포하는 기자회견과 함께 제보센터를 설치하고 열정페이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 블랙기업: 청년의 절박한 처지를 악용하여 노동을 착취하는 비합리적인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
당시 사회적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다 그만둔 저는 사회적기업의 블랙기업 사례를 찾고 있던 청년유니온을 만나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일반기업 뿐만 아니라 사회적기업에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청년유니온은 사회적기업 인터뷰 사례자를 찾고 있었고, 저는 청년유니온을 통하여 인턴생활 중 대표의 모욕적인 언행과 태도, 그리고 월급의 문제로 퇴사하게 된 저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인턴생활에서의 고충을 이야기하면 친구들도, 부모님도 “네가 일을 처음해서 그래” 라고 하거나 “누구나 다 그렇게 일을 한다” 며 조금 더 참아보라 말해줄 때, 청년유니온은 처음으로 저에게 잘 그만두었다고, 힘들었을 것 같다고 수고했다 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청년유니온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뭐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당시 22살이었고, 학교를 그만두고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본인만의 잘못이라고 생각 하지는 않을까, 너무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계속 청년유니온에 기웃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블랙기업 너머
업계의 관행에 맞서다
청년유니온의 크고 작은 활동에 함께하던 어느날, tvN 신입조연출 사망사건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유가족 분들과 사건 대응을 준비하던 청년유니온의 담당 팀장님은 제가 고등학교 시절 영상을 전공하고 드라마 PD를 꿈꿔왔던 것을 알고 의견을 묻고자 연락해왔습니다.
사건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접한 후 드는 생각과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볼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사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지난 청년유니온의 블랙기업 사업 운동이 떠오르며 tvN 역시 블랙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동에 대한 지식도 없고, 직접적으로 방송 산업에서 일하지도 않기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방송 업계에서 일하는 친한친구와 후배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요즘 일하는데 힘들지는 않냐고, 혹시 tvN 신입조연출 사망사건을 알고 있냐고 말이죠.
모두들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방송제작과정에서 벌어지는 현장 내 괴롭힘, 장시간 노동 등의 부당하고 고된 노동이 비단 tvN만의 문제가 아닌 ‘원래 그렇다’는 방송업계 전반의 관행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하나의 블랙기업을 넘어서는 거대한 업계 전반의 문제 앞에서 한없이 작아짐을 느꼈지만, 친구들이 전한 현장의 상황과 그들이 듣고 있는 실제 이야기들을 전달하며 현장과 청년유니온 간의 작은 다리 역할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사건 해결과정에서 고인의 추모식 무대에 올릴 캘리그라피를 손수 적고 캠페인에 쓰일 현수막 디자인도 하는 등 작으나마 힘을 보탰습니다.
그렇게 작으나마 함께 문제해결에 참여한 경험으로 위안 삼으며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 집중하고 있을 무렵, 청년유니온을 비롯한 대책위와 유가족이 CJE&M과의 교섭을 통해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말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사건을 드러내는 일에서 시작해 “원래 그런 것은 없다”는 구호와 함께한 캠페인,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한 1인시위, 시민들과 함께한 추모식 등 많은 대응들이 빠르게 이어진 결과였습니다.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던 자리에 계시던 유가족분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렇게 1년만에 고인을 온전히 위로하고 기릴 수 있었습니다. 청년유니온과 함께 그 과정에 참여하며 처음으로 제 주변의 문제를 누군가와 함께 해결해보는 경험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혼자하는 노오력 말고
함께하는 노조로 그리는 내일
tvN 사건으로 저는 처음으로 청년유니온이 노동조합임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청년 개인이, 유가족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을지도 모를 문제였지만 청년유니온과 조합원, 그리고 우리의 활동을 통해 귀기울이고 함께한 수많은 이들 덕분에 CJE&M이라는 대기업, 그 너머 방송업계의 관행에 맞서 유니온,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도 힘을 갖게되었습니다. 그 힘이 문제를 해결가능하게 해준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한지 1년이 조금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적은 보수와 수많은 수정작업 혹은 계약 이 외에 부탁과 강요를 넘나드는 업무지시 등 그간 수많은 프리랜서들이 겪어온 문제들을 경험하였습니다. 다른 프리랜서들과 함께 소통하며, 적어도 프리랜서들이 사회보험을 가입할 수는 없을지 실업급여는 왜 받지 못하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한명 한명의 프리랜서가 아닌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해 볼 수 없을까 하는 상상력이 생겼습니다.
tvN 사건의 해결과정을 보며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약간의 도움을 주던 조합원에서 실제로 청년유니온이 세대별 노동조합으로 나와 같은 프리랜서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부터 서울로 집약된 방송산업이 더 개선될 여지는 없는지, 최저임금 인상으로 벌어질 앞으로의 문제를 같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기성세대와는 다른 형태의 노동과 시스템 속에서 살아갈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 청년유니온과 계속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청년들에게는 당장의 월급이 인상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이 일하는 내 옆 동료의 상태, 사장님이 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한 문제는 혼자만의 노오력으로 해결할 수 없기에, 함께하는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의 활동이 더욱 필요합니다.
이전 방식대로의 노동조합을 넘어, 변화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살아가며 일하는 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새로운 노동조합을 청년유니온과 함께 꿈꿉니다.
글|청년유니온 조합원 ‘hyphen LY’
발행일 | 2018-01-29
*2017 스토리펀딩 [노력말고 노조가 필요한 우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