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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유니온 Oct 27. 2021

전환의 시대, 청년의 노동과 미래

2021 한국노동사회포럼 - 2022년 대선과 노동사회정책전망

* 2021 한국노동사회포럼 <2022년 대선과 노동사회정책전망>의 Plenary Session에서 발표된 이채은 위원장의 글입니다. (2021.10.21.)


청년이 마주하는 첫 노동시장

한창 채용공고가 올라오는 시즌에는 피골이 상접한 동기들을 볼 수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취업을 위한 동아리와 대외활동을 하고 3학년 2학기부터 자소서와 면접 준비를 한다. 졸업 후 바로 취직이 되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이다. 새벽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정장에 구두를 신고 면접을 보러간다. 하루는 불합격 소식을 접하고 한 시간 내내 우는 친구를 위로한 적도 있었다.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 월세 등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중소기업의 임금, 더 이상 지원을 바랄 수 없는 부모님의 형편과 취업에 실패 했다는 패배감, 다른 친구들은 다 좋은 직장에 합격 했는데 나만 뒤쳐진 것 같은 불안감. 그 친구의 이야기는 대부분의 청년들이 느끼고 있을 불안과 걱정이었다. 이런 실상을 모른 채 실업률만 보고 “요즘 청년들 취업도 어렵고 공부하느라 너무 고생해”라며 지금의 청년들을 걱정하며 불쌍하게 여기는 어른들의 말은 오히려 대수롭지 않은 반응으로 느껴질 정도다. 수많은 언론, 정치인들이 사회 문제로 꼽는 사안 중에 하나가 청년실업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이 시행되었지만 역부족이었고 오히려 청년들이 느끼기에 취업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졸업 전에 취업을 한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졸업 후 취업까지 1년 이상 취업준비 상태인 청년구직자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오랜 구직 기간은 개인에게도 사회적으로도 큰 비용을 치르게 한다. 생활비 마련을 위해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없는 청년구직자의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저임금의 열악한 일자리라도 어쩔 수 없이 들어간다. 그렇게 들어간 일자리는 오래 다니지 못한다. 임금도 적을뿐더러 고용이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직을 하더라도 더 좋은 일자리로의 상향이동은 매우 힘들며 기존 직장보다 조금 나은 곳에 들어갈 뿐이다. 다수의 청년들이 이런 식의 “묻지마 취직”과 이·퇴직을 경험한다. 이런 구조에서 노동자 개인은 노동시장에서 경력을 쌓기 어렵고 겨우 적응한 직장에서 나와 다시 새로운 직장에 적응해야한다.

     

청년들이 오랜 구직기간을 감수하는 이유는 조금 더 안정적인 일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선호하는데에는 쉽게 해고 되지 않는다는 점도 있지만 최근에 와서는 은행 대출 여부와 금액 때문이라는 이유가 눈에 띈다. 근로소득만으로는 집을 구하기 어려우니 대출이 꼭 필요한데 안정적인 일자리가 더 유리한 것이다. 그러니 더 악착같이 취업 준비를 하고 좋은 일자리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취직 후 적금 상품을 꼼꼼히 살펴보며 착실하게 돈을 모으던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적금에 붓던 돈을 줄이고 주식에 투자를 하고 있었다. 이 친구 뿐만 아니라 코로나 이후 주식을 하는 청년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유튜브에서 적재적소에 투자한 주식이나 코인으로 큰 돈을 번 사람들의 성공사례를 보며 자신들도 한 탕 벌 수 있다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한번에 큰 돈을 벌겠다는 한탕주의는 노동의 의미를 퇴색시키는데 쉽게 번 돈은 일해서 번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일의 가치나 의미를 단순히 돈으로만 계산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도 이 투기열풍을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식하지 않는 사람을 바보로 여기거나 주식에 뛰어든 투자자들에게 “동학개미”라는 별칭을 지어주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독하지 않을 청년이 있을까. 취업이 어려워지고 끝도 없는 구직생활을 견디며 기댈 곳 없는 청년들은 세상과 단절된 채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높아진 불안감과 외로움은 결국 우울증으로 연결된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의 이야기에 따르면 최근 응급실에 자살 또는 자살 시도로 실려 오는 20대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한다. 특수청소업체가 마주하는 현장 중 최근 눈에 띄는 곳은 수십 개의 이력서와 조촐한 식사의 흔적이 남은 2030 청년의 마지막 주거공간이었다. 무엇이 청년들을 극단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을까. 아마 코로나 19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거나 실직을 당한 청년들이 다수 있을 것이다. 특히 타격을 많이 받았을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여성 청년 노동자들의 피해는 심각하다. 이를 생각하면 외로운 죽음이 어떤 청년들에게 가까이에 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안전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외면하고, 비용감축에 더 열을 올린다. 비용감축은 안전을 위해 필요한 인력과 시스템에 드는 가장 필수적인 요소를 줄이는 요인이 되며 이렇게 줄여진 안전비용은 가장 취약한 노동자에게 열악한 일터환경으로 돌아온다. 비극적인 청년의 죽음은 여전히 반복적으로 들려온다.


     

이런 실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즘 청년을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단어로 MZ세대가 어느 영역에서나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청년을 이르는 MZ라는 단어는 청년이 처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철저하게 은폐한다.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와는 다른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MZ를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청년이 특별히 다르다는 이야기로 귀결되어 버린다. MZ세대가 공정을 중요시한다던지 자신들의 이익을 드러내는데 거침이 없다거나 하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인식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했던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노동자나 서울교통공사에서 세 번째 노동조합을 결성한 주체들이 MZ로 호명되면서 더 공고해졌다. 그러나 언제 한국 사회가 연대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주류였던 적이 있는가. MZ세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특별히 공정에 예민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다른 세대도 공정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개인이 어떤 사회ㆍ경제적 조건에서 살아왔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청년들을 MZ세대에 욱여넣고 균질하지 않은 집단을 하나로 묶는 것은 억지다. 이렇게 만들어진 MZ세대론은 앞서 언급한 인국공 사태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겪는 열악한 일자리 문제와 사회 전반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이 아니라 MZ세대가 공정을 중요시 한다는 점에 집중하게 한다.



     

전환기의 2022년 한국사회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전환기에 와있다. 우리의 일상을 2년 가까이 옥죄어 온 코로나19를 넘어 단계적 일상회복이 조심스레 논의되고 있다. 올해 급격히 심화되는 기후위기는 산업의 전환과 일자리의 대전환, 그리고 여기에 걸맞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시민의 정치적 합의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더불어 2022년 대선을 앞두고 한국 사회의 정치 또한 대단히 격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세습사회의 가시화와 치솟는 자산가격에 무기력한 정치는 기존의 민주-반민주, 보수-진보로 귀결되는 정치 구도에 균열을 가하고 있다. 그 균열 너머에 어떤 정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대단히 두려워지는 요즘이다. 이번 대선은 왜 비호감 월드컵이냐는 정치혐오와 냉소를 벗어나서 전환기의 한국 사회가 처한 과제들을 극복해 나갈 정치의 힘을 우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누군가는 20대들이 어째서 보수정당을 지지하느냐고 힐난하지만, 이미 20대의 절반은 박근혜 탄핵 이후에 성인이 된 이들이다. 이들이 보아 온 것은 한국 사회가 전환기에 놓인 과제에 무기력했던 모습 뿐이다. 그나마 처음 K방역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번화가에 나붙은 임대 딱지는 K낙제점을 가리킨다. 기후위기가 시민의 삶을 덮치기 시작했지만, 여기에 대해 시민과 노동자들에게 대전환을 말하고 설득하는 정치와 운동은 부족하다. 부모를 잘 만나면 스펙도 편하게 쌓고 정당한 과정을 거쳐서 사회적 지위가 세습되며, 때로는 50억의 퇴직금을 받게 되기도 하지만, 여기에 대한 분노는 오직 공정이라는 앙상한 단어로만 대변된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고도성장기에 기성세대가 가진 일자리와 자산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동력으로 여겨지기보다는 걸림돌로 보일 때가 많아진다. 서울은 팽창하고 집값은 치솟고, 영끌의 여부와 집값 가격 상승에 올라탔는지에서 나오는 위화감은 온 사회를 휘감는다. 또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나 정년연장, 국민연금과 같은 주제들은 어떤 방식으로 한국 사회가 일자리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주제를 덮어두지 않고 논의하고 있는가. 마치 도전해보라고 훈계하더니 막상 도전하면 안 받아준다는 소설의 구절같은 상황은 아닐까. 우리는 이런 주제에서 더 많은 대화와 토론, 논쟁을 필요로 한다.

     

전환의 시대를 향한 노동운동의 역할

노조조직률 12.5%.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21년 만에 최고치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부터 계속 꾸준히 상승해왔다. 하지만 노동조합 바깥에, 노동조합이 있기 어려운 일자리에서 이해 대변의 공백은 여전하다. 고용이 불안정하고 업무환경이 열악할수록,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노동조합을 갖기 어려움을 겪는다. 편의점이나 카페처럼 초단시간 계약으로 근무시간이 쪼개지는 아르바이트 노동자, 초단위로, 건단위로 살아가는 프리랜서나 플랫폼 노동자는 더더욱 어렵다. 오히려 노동조합으로 이들이 단결할 수 있는지도 회의감이 드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목소리 모으기도 힘들거니와 모으더라도 그 영향력이 크지 않다.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다수의 불안정·미조직 노동자들을 아무도 대변해 주지 못하고, 이들이 사회적 논의에서 배제되는 현실은 여전하다. 법과 제도가 진전되더라도, 오히려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에 있는 노동자와의 격차가 더 커진다.



불평등과 격차 해소에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이 나서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 되어버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일자리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광주형 일자리와 같은 사례를 보다 발전시키고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 코로나19로 더욱 드러난 노동시장 안팎의 급격한 격차를 해결해야 한다. 임금노동자이냐 아니냐로 벌어지는 급격한 사회경제적 지위 차이에 적극적인 사회연대 구축으로 맞서야 한다. 적극적인 증세 논의와 재정정책의 확대를 요구해야 한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는 자산격차를 제어해야 한다. 부동산과 주식, 비트코인까지 노동의 의미를 모조리 삼켜버리는 자산시장 증식이 더이상 사회를 좀먹지 않도록 싸워야 한다.


이런 싸움을 해나가지 않는다면, “오징어게임”이 일상인 한국사회의 모습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끝내는 것에 동의하면 끝낼 수 있는 오징어게임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단 한 명의 승자만 남게 되는 결말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그 열쇠는 항상 우리의 손에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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