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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또 Feb 16. 2016

당신속의 전쟁 콤플렉스

n포 세대는 누구의 잘못일까

저는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서둘러 일어나 교통카드를 찍습니다. 기사님이 문을 빨리 닫아버릴까 불안하거든요.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러시나요? 저는 9층에 삽니다. 9층에서 내려가려고 버튼을 눌러놨는데 엘리베이터가 12층까지 올라갑니다. 순간 화가 치솟습니다. 혹시, 당신도 그러시나요?

왜 이렇게 너나 할 것 없이
작은 일에도 불안해하고 화를 낼까요?


그 이유를 '전쟁'에서 찾으려 합니다.

<단편 애니메이션을 통해 보는 세상>,

그 네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본 글을 읽기 전에 영상을 보시길 추천합니다)


< Trois petits points (바늘땀 세 개) >

재생시간 : 3분 32초


<줄거리 요약>

대륙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재봉사인 아내는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립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남편은 온몸이 찢어졌습니다. 벌어진 상처 사이로 검은 형체가 꿈틀댑니다. 아내는 바늘로 남편의 상처를 꿰매고는 밖으로 나가서 파괴된 세상을 즐겁게 꿰매 복구합니다. 남편은 가위를 가지고 아내를 도웁니다. 그러나 남편의 상처 틈새로 검은 형체가 튀어나와 그를 서서히 잠식해갑니다. 결국 남편의 몸은 전부 잠식되어 아내가 꿰맨 세상을 다시 가위로 잘라 찢어버립니다.

나는 6.25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경험하지 않았겠죠. 경험하셨더라도 상당히 어리셨을 거라 감히 추측합니다.(브런치의 연령층을 생각하면요.) 당연히 우리는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보다 더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린 왜 이렇게 힘들까요? 단순한 엄살일까요?

기성세대의 불안감은
계약직이라는 고용 제도를 만들어
젊은이들에게 취업의 불안을
떠넘긴 게 아닐까.
<만 가지 행동> 中

전쟁에서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경험한 사람들은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입습니다. 영상 속의 남편처럼요. 당연히 심리치료가 필요합니다. 특히 아이들은 치료를 받지 않으면 유년기의 불안과 공포를 평생 안고 곪아갈 테죠. 그렇다면 6.25 한국전쟁 후 우리나라 사람들과 아이들은 어땠을까요? 정신 분석을 공부한 소설가 김형경은 심리에세이 <만 가지  행동>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전쟁뿐 아니라 긴 식민지 시대를 겪었는데, 그 사건들이 끼친 심리적 영향이나, 그것을 경험한 아이들을 돌보는 문제에 대해 아무도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안정감, 존엄성, 애착 등 여러 분야에서 균열과 상실을 경험했을 텐데, 그와 관련된 외상이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깊을 텐데.

정신분석학에 "부모가 해결하지 못한 심리적 문제는 자녀가  떠안는다"라는 명제가 있다고 합니다. 어릴 적 가난해서 공부를 하지 못한 아버지가 자식 교육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이야기는 참 흔하죠. 아무튼, 전쟁의 트라우마를 가진 아이들은 커서 자식을 낳았고, 불안감/적대감/피해의식과 같은 전쟁 트라우마를 유산으로 물려줬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할 대상은 두려움 그 자체다."

그런데 전쟁을 '직접' 경험한 부모와는 달리, 트라우마를 물려받은 자식들은 그 트라우마의 대상이 없습니다. 불안한데 왜 불안한지 모릅니다. 화가 나는데 그 대상을 몰라서 분노를 해소할 수 없습니다. (악플과 묻지마 범죄가 그 결과겠죠.) 형태가 없는 두려움만큼 두려운 것이 또 있을까요? 형체 없는 트라우마는 콤플렉스가 되어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내려 갑니다.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적대감으로 모양을 바꿔가며, 바로 이렇게, 카페에서 알바를 하던 제 친구에게처럼 말입니다.

할아버지뻘로 보이는 나이 지긋하신 손님이 가족과 함께 왔어. 그 손님은 나한테 물을 갖다 달라했고, 카페의 규칙에 따라 "물은 셀프입니다" 고 안내드렸지. 그러자 그 손님이 나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거 있지! "그깟 물 하나 못 갖다 줘? 너 나 힘들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만화가 김규삼 웹툰 中

[88만원 세대] : 비정규직으로 사는 세대

[삼포세대] : 연애/결혼/출산 포기한 세대

[n포세대] : 모든 것을 포기한 세대

[나레기] : 나 + 쓰레기. 스스로를 비하하는 말


 현재 젊은 세대는 패배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저 역시 젊은 세대에 속하고요. "쯧쯧 요새  젊은세대"가 나약한 탓일까요, "저 늙은 꼰대세대"가 이기적인 탓일까요. 근데 정말 "어떤 세대"의 잘못이 있기나 한 걸까요. 그러면 이건 정말로 "어떤 세대"만의 문제일까요?


신경증은 세대를 넘어 전이되면서 더욱 강화되며 세 번째 세대에 이르면 정신증에 가까워진다고 <만 가지 행동>은 말합니다.

여러 세대 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상처와 고통을 내가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중략) 모든 사람에게 책임이 있지만 어느 누구도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 심리학자 존 브래드쇼

지금 우리나라는 모든 세대가 전쟁 트라우마를 겪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처럼 외관은 삐까뻔쩍하게 복구했지만 검은 형체는 우리를 서서히 잠식하고 있습니다. 2016년 새해가 밝았고 세 번째 세대가 태어나 자라고 있습니다. 저는 결혼해서 자식을 낳는다면 행복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습니다. 혹시 당신도 그러신가요?


그럼 우리, 이제는 치료를 시작해야하지 않을까요.


- 참고자료 -

1. 커버 이미지는 언론 '참세상'의 기사 <88만원 세대의 소박한 꿈> 삽화를 가져왔습니다.

2. 김형경 저, <만 가지 행동>, 사람풍경

3. 오마이 뉴스 "전쟁의 심리적 상처,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4. Anna Freud, "War and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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