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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또 Feb 29. 2016

세상에서 가장 긴 여정

부모의 세계를 허물기 시작했다

살다보면 나의 가치관이 부모의 그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정면으로 갑작스레 마주한 듯 깨달음은 너무나 선명하면서도 충격적이다. 그 찰나부터 우리는 부모로부터 벗어나 나를 찾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한다.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세상 - 다섯 번째

< The Longest Road (가장 긴 여정) >

재생시간 : 4분



부모로부터 벗어나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즐겁다. 책을 읽거나 여행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은 짜릿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애니메이션에서 성을 떠난 직후에 남자는 미소 짓는다. "나는 이제  자유로워!"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나는 이제 자유로워질 수 있어!

그러나 부모의 그림자는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기는 태어나 부모와 첫 애착관계를 맺고 그들의 가치관을 마른 스펀지처럼 전부 흡수한다. 머리가 굵어지고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고 싶은 욕망을 깨달았을 때 부모는 이미 내 정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인간에게는 생물학적 욕구뿐 아니라 애착의 감정이 중요하며, 애착 대상을 잃거나 애착 감정을 박탈당하면 심각한 심리적 타격을 입는다는 이론이 등장했다.

애착 대상을 잃는다는 것은 나의 정신을 뒤흔든다. 평생 살던 집을 나오거나 경제적인 지원이 끊기는 등 물리적으로도 큰 타격이 오기에 함부로 반항할 수 없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들어질 무렵에 이런 말이 들려온다. "그러니까 부모 말을 잘 들으랬지. 괜히 반항해서 고생하니"

그러니까 부모 말을 잘 들으랬지!

삶이 힘들수록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은 아주 손쉬운 진통제가 된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쉽게 내치지 못한다. 특히나 한국에서 부모와 자식이 유대관계를 끊는 것은 죄악시된다. 그래서 대부분은 고개를 숙이고 다시 부모의 가치관에 지배받길 스스로 선택한다. 애니메이션에서 성을 떠나는 주인공을 공격하는 왕의 모습은 부모가 아닌 자기 내면과의 갈등을 상징한다. 엄마 아빠의 손을 놓지 못하는 건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데미안>


역설적이게도 나의 세계를 세우기 위해선 내 안에 있는 부모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은 증오다. 미움과 분노는 모든 걸 때려 부시는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노로 부모의 세계를 파괴하면 나의 것도 분노로 세워지게 된다. 며느리가 미운 시어머니를 욕하면서 닮아간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자기애성 분노는 투사적 동일시와 파괴적 내재화의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눈덩이처럼 부풀려진다.


그는 말을 떠나보낸다

따라서 부모의 세계를 파괴하기보단 허문다는 말이 더 적절하게 느껴진다. '파괴'는 너무나 강한 말이기에 때로는 공격성 자체가 목적이 되지만 '허문다'는 사라짐을 목적으로 삼는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세계가 사라지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기존 세계를 무너뜨려야만 하는 이유를 알면 새로운 세계를 더욱 성공적으로 구축하게 된다. 애니메이션 후반부에서 주인공은 말을 자유로이 떠나보낸다. 그는 파괴하지 않고 허문다.


나는 분노의 강렬한 에너지를 좋아한다. 나도 분노하며 부모의 세계를 파괴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럴 때가 있다. 그러나 분노가 나를 지배하지는 못하게 조심하자고 수없이 되새긴다. 나는 내면에서 의지하던 부모를 떠나보내고 내 세계를 온전하게 세우고 싶다. 분노는 방아쇠의 역할이면 충분하다.


애니메이션의 결말이 맘에 든다. 누군가는 "그의 선택이 부모를 무너뜨렸다"고 비난하겠지만 그의 뒷모습은 담담하다. 그는 자신의 두 발로 온전히 땅을 딛고 정면을 바라본다. 부모의 세계가 사라진걸 애도할지는 몰라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부모와 외적으로 싸우는 건 극히 미미한 아픔이다. 애니메이션의 제목은 가장 중요한 점을 말해준다.  마음속으로 <가장 긴 여정>을 떠나는 동안 들려오는 달콤한 의존의 유혹과 분노하려는 욕망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세상에 홀로 서기 위해서, 그리고 분노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 글을 쓴다. 오늘도 용기 내어 내면의 세계를 허문다.



-인용 출처-

칼럼 <슬픔과 함께 담배 끊기>, 김형경

<임상집단정신치료 강의: 집단정신치료의 바이블>, 이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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