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에서 무슨 흑인노예운동이라도 일어난 거야??

DEI 개념에서 바라본 디즈니의 새로운 에리얼

by 유니버셜

최근에 ‘흑인 인어공주’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우리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 이미지에 대한 항변의 댓글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 글의 제목도 관련 기사를 읽다 우연히 본 인상 깊은 댓글이다.


‘디즈니 뭔데, 무슨 흑인 노예 운동이라도 일어난 거야??’


이 댓글을 달 수밖에 없었을 댓글 주인의 마음에 크게 이해한다.. 그의 마음은 이것일 것이다.

‘아니 내 머릿속에 인어공주는 하얀 얼굴에 빨간 머리카락을 지닌 에어리얼인데, 심지어 너네도 처음엔 그렇게 그렸잖아. 갑자기 왜 꼭 흑인 이어야 하는데?’


맞다. 모두가 알다시피 디즈니에서 처음 선보인 인어공주 에어리얼은 ‘백인’이었다. 어린 시절 봤던 그녀의 이미지는 거의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넘는 시간 동안 우리의 마음에 ‘살아’ 있었으니, 그 충격과 배신감은 작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언급하고 싶은 건 이 댓글의 질문 그 자체이다. ‘디즈니 뭔데, 흑인 노예 운동이라도 일어난 거야?’


그가 진짜 궁금해서 댓글을 달았다기보단 비난의 목소리가 더 실려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표면적으로나마 던진 ‘디즈니의 행보’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이 댓글의 가설은 재미있게도 어느 정도는? 비슷하게 맞았다. ‘흑인 노예 운동’은 아니지만, 디즈니는 지금 DEI를 기반으로, ‘다양성’과 세상에 대한 ‘포용성’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들의 방법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이다.




디즈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Reimaine Tomorrow>는 디즈니 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는 한 슬로건으로 디즈니의 digital destination이라고 설명이 되어있으며, 이는 DEI의 개념을 이해하면 이 슬로건에 대한 이유를 이해하기 쉽다.


DEI를 중심으로 디자인 가이드를 제작하는 업무에 참여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잠깐 설명을 덧붙이자면, DEI는 (아주 쉽게 설명하자면) 세상에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조명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갈 포용력 있는 세상을 만드는 가치를 담은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이념은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 등 거대 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처음엔 HR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도 함께 지낼 수 있는 직장 문화를 만들 자와 같이 기업 문화에 포커싱이 되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콘텐츠’나 ‘디자인’의 영역까지 그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하나의 트렌드라고 볼 수 있다.


“Diversity” refers to the representation of people from a variety of backgrounds
“Equity” focuses on fairness and justice, particularly referring to compensation and whether people are being paid or treated fairly
“Inclusion” is about whether people feel like they belong, and whether they feel heard or valued in an organization
출처 : ABC news


디즈니는 콘텐츠를 만드는 대표 회사답게, 이 DEI의 개념을 자신들의 상품인 ‘콘텐츠’ 영역을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가?라고 하면 디즈니의 Senior vice president인 Latondra Newton이 직접 한 말을 차용하여 설명하겠다.


“We are excited to introduce Reimagine Tomorrow, an effort that embodies Disney’s long-standing commitment to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efforts and shines a light on the scope of our aspirations, … Our intention is to make sure every person sees themselves or their life experiences represented in a meaningful way.”

|Latondra Newton, senior vice president and Chief Diversity Officer for The Walt Disney Company.


여기서 포인트는 이것이다.

"... Our intention is to make sure every person sees themselves or their life experiences represented in a meaningful way.”

"의도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우리의 콘텐츠에서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디즈니가 어린아이들의 꿈이 된다는 점에서,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


"모든 어린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디즈니의 컨텐츠에서 상상하고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의 부정적인 여론을 뒤로하고서라도 그 의도 자체는 충분히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어렸을 때 봤던 디즈니의 콘텐츠들을 다시 복기해 보자면, 다분히 ‘백인 중심적’이고, ‘남성 중심적’이었다. ‘백옥 같은’으로 묘사되는 공주님들은 왕자님을 기다렸고, 왕자님을 만나는 순간 모든 것이 행복하게 막을 내렸다. 즉, DEI의 관점으로 본다면 과거의 디즈니 콘텐츠는 다양성이 없었다.



그렇다면 DEI, 쉽게 말해 다양성이 콘텐츠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 우리 사회에, 특히 아이들에게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것에 대한 답은, 최근에 다녀온 ‘나이 듦에 대하여’라는 코엑스에서 열린 큰 강연에서 뵌 연세대학교의 한 교수님의 강의를 인용하여 이야기할 수 있겠다.

문화가 상상하지 못하는 꿈을 개인이 어떻게 꿀 수 있는가? 내 어린 시절(약 1950년대)만 해도 여학생들이 가질 수 있는 꿈은 간호사, 교사, 현모양처 정도였다. 사회가, 문화가 그 여학생들에 그 이상의 미래를 보여주고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는데, 어쩌면 그 여학생들도 그 정도의 꿈을 꿀 수 있음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화가 함께 상상해주지 못하는 꿈은 개인 혼자서 꿀 수 없다. 디즈니는 이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백인을 중심, 혹은 남성 중심으로만 보여주던 멋진 모습, 그리고 여자 캐릭터의 수동적이고 가냘픈 모습들을 통해 어린 여자 아이들이 왕자님만을 기다리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에 책임을 통감하고, 자신들이 가져야 하는 사회적 책임과 비즈니스의 연결 지점을 찾았을 것이다.


Tomorrow can always be better than today, so long as we all work hard to make it so” - Walt Disney




실제로 1992년 ‘알라딘’의 공주 자스민은 사랑에 목매는 수동적인 캐릭터로 그려지지만 2019년 ‘알라딘’의 공주 재스민은 여성에게 왕위를 허락하지 왕국의 관습을 깨고 술탄의 자리에 오르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표현됐다.

즉, DEI를 콘텐츠에 담아내는 다양한 과정과 실험 그 어느 중간에, 우리가 알던 동화 속의 수동적인 자스민 공주는 사라지고 스스로 왕국의 관습을 깨고 최초로 술탄의 자리에 오르는 자스민 공주가 다시 태어난 것이다.

여성의 모습을 주체적으로 담는 것만이 디즈니의 실험은 아니었다. 2017년 ‘미녀와 야수’에서는 엠마왓슨의 ‘벨’을 통해 진취적인 여성상을 보여줌과 더불어 거의 최초로 ‘성소수자’를 등장시켰다. 그리고 이 작품은 전 세계에서 한화로 약 1조 5000억의 매출을 올리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디즈니를 보는 아이들’에게 그들 모두의 모습을 콘텐츠 어딘가에서 찾아서 꿈꿀 수 있도록 한다. 흑인이어도 동양이어도 성소수자여도 괜찮다. 어떤 모습을 하고 어느 지역에 어떻게 살고 있는 존재이건, 모든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함께해야 한다고 했다는 말, 이제 너무 많이 들어서 질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아직- 그래서 ‘그 마을’에 속한 우리 모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담론을 꺼낸 역사가 깊지 않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 마을을 돌아다니는 인형극을 보여주는 옛날 그 어떤 아저씨와 같은- 문화 콘텐츠 사업을 하는 기업으로서의 디즈니의 이와 같은 행보에 적극적인 지지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 ‘백인’인 ‘인어공주’를 왜 망쳐야 하는 건데?


물론 디즈니의 이런 행보가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닌 듯하다. 사람들은 이번에 만큼은 ‘원작을 훼손했다’라며 거세게 반발한다.


하지만 굳이 따지면, 디즈니가 만든 애니메이션이 원작이 아니라 1847년 출판된 덴마크인 소설작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가 원작이다. 그 소설에서 ‘인어공주’는 바다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외모와 목소리를 가진 ‘인어’이지, 하얀 피부의 ‘백인’은 아니었다.

에리얼은 처음부터 백인인가?

그 책을 디즈니가 약 130년 후에 멋대로 ‘백인’으로 묘사해서 그렸다. 그런데, 당연한 말이지만 그 누구도 그에 대해 따지지 않았다. 그것이 어쩌면 그 시절, 역사 속 ‘백인’의 특권이고, 그에 따라 백인 아이들은 바다를 누비며 꿈을 꿀 수 있었을 것이고 흑인 아이들은 자신의 피부색에 의문을 표했을 것이다.


사실 굳이 에리얼 사태를 제외하고서라도 지금까지 디즈니의 행보는 이미 꽤 ‘원작 훼손’에 있어 공격적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들의 이념에 따라 과거에 있던 동화 속 스토리를 ‘완전히 바꾸는 방향’을 사용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우리는 알라딘의 자스민 공주가 옛날에 본 이야기와는 달리 왕자님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관습을 깨고 나아가는 이야기를 보면서 ‘굳이 왜! 스토리를 바꾸냐!’라며 항의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캐릭터의 인종보다 스토리가 달라지고 주인공의 성격을 완전히 바뀌는 것이 더 큰 원작훼손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은 불편하지 않았다. 이는 아마, 우리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여성의 주체성’에 대한 담론을 꾸준히 해 왔고 수많은 갈등을 넘고 넘어 사회 전반적으로 이제는 이를 어느 정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대를 만든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아직, 생각보다 우리는 ‘인종’에 있어서 만큼은 담론을 충분하게 생성하고 나누고 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안타깝지만, 디즈니는 일단 2023년의 수많은 사람들의 에리얼을 ‘망쳤'다. 재미있는 점은, 이에 격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 디즈니가 만들었던 인어공주에 대한 행복한 기억을 갖고 있는 ‘대부분 어른’이 된 우리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처음에 그 사람들 속에는 나도 내 발을 한쪽 걸치고 있었다. 왜냐면 내 머릿속 에리얼과도 크게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시각적인 인풋’은 굉장히 강렬하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보다도 아이들에게 그 판단을 맡겨야 하지 않을까?


이런 댓글도 봤다.


‘다 흑인으로 하면 오히려 백인 차별 아님?’


글쎄, 생각해 보면 2017년의 ‘미녀와 야수’도 2018년의 호두까기 인형의 주인공들도, 겨울왕국의 두 자매도, 메리포핀스도 모두 백인으로 묘사되었다.


어쩌면 누구나 되어보고 싶을 예쁜 목소리로 바다를 누비던 공주 에리얼을, 과거에 오래 사랑받았던 에리얼을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의 아이들도 꿈꿀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이 아닐까?




그럼 뭐, 디즈니가 그렇게 잘났어?


개인적으로 디즈니는 부족한 점도 많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내 최애작품이었던 ‘뮬란’이 떠오른다.(물론 애니메이션이 최애란 뜻이다.) ‘뮬란’은 실사화 영화를 제작할 때, 원작을 살려 아시안이자 중국인인 유역비가 출연을 했고 큰 돈을 들여 제작했다. 하지만 제작지원을 한 단체 중 하나가 위구르족 탄압에 가담했고 , 이에 디즈니 측에서 감사를 표했다고 들었다. 또한 유역비가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비난하는 글을 개인 계정에 올렸다.



디즈니는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결국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으로서 그 행보가 늘 올바르고 일관성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이런 가치적인 이념은 이익추구와 늘 충돌이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하지만 기업의 어떤 선택에 많은 이들이 비난하고 돌을 던진다면 그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그 책임자를 찾아 책임을 물을 기업이 얼마나 많은가. 좋든 나쁘든 최소한 자신들이 지키려는 ‘이념’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려는 디즈니의 모습을 보며 솔직히 ‘한 번은 저기서 일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ㅎㅎ)


‘중요함’에 대한 세상의 가치는 시대에 따라 늘 바뀐다. ‘옳음’에 대한 기준과 정의도 계속해서 바뀐다. 디즈니가 지나온 역사도 그러했다. 1967년에 세상밖에 나온 정글북을 글의 마지막에 언급하고 싶다.

정글북안에 유인원 킹 루이-라는 캐릭터가 있는데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풍자라는 비판을 받았었다. 그리고 디즈니는 디즈니플러스에 올라온 정글북과 같은 과거 작품들 중 잘못된 묘사가 있는 작품들에 하나같이 이러한 경고문을 ‘스스로’ 달았다.

It may contain outdated cultural depictions.
-
This programme includes negative depictions and/or mistreatment of people or cultures
-
These stereotypes were wrong then and are wrong now.


디즈니 유튜브 장면 중 자신들의 잘못된 묘사를 인정하는 부분

이 메시지들이 시사하는 바는 이렇다. 콘텐츠의 잘못을 부정하지 않고, 좋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인지하여 이로부터 배우고 더 포용적인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한 대화를 이끌어내겠다.

솔직히 '자신들의 ‘잘못’을 이렇게까지 멋지게 ‘브랜딩’을 할 일인가 -' 하는 생각이 제일 처음 마음에 들면서 스스로의 냉소적임에 놀라긴 했다. 하지만 사회에서 배운 것 중에 가장 큰 것 하나는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게 ‘돈’과 연결된다면 더더욱 그렇다.




가치. 그 어려운 것.


미래의 가치는 또 어떻게 변할 것인가. 어쩌면 또 사회의 흐름과 분위기가 엄청나게 바뀌어 현재 디즈니가 추구하는 이념도 완전히 뒤틀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2023년에 만들어진 ‘인어공주’에 어쩌면 경고딱지가 붙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콘텐츠는 다소 올드한 문화적 묘사를 담았습니다. - 아무리 그래도 에리얼 공주는 백인밖에 될 수 없는 것이며, 우리의 흑인 인어공주로 인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인지하고 있고, 다시는 이런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배우겠습니다.’
- (나의 예시)


글쎄, 만약 정말 그런 세상이 올 수는 있다 치더라도, 정말 지금의 흑인 에리얼이 별로여도... 만약 디즈니가 그런 경고문을 붙이는 미래가 온다면 그건 다소 슬픈 미래일 것 같다.


만약 정말 그런 세상이 온다면, 그리고 그때 내가 아이가 있어서 다시 백인으로만 묘사되고 있는 '아름다운'

<인어공주>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면, 나는 몰래 이렇게 덧붙일 것 같다.


‘그래도... 네가 이런 피부색을 갖고 있어도 에리얼도 할 수 있고, 벨도 될 수 있단다. 상상해 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