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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니 Aug 22. 2016

9일 동안의 태국 -1

여행 단상, 방 크라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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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나는 정말로 도화살이 없냐고 물었다. 도화살은 정말 하나도 없단다. 역마살만 있단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떫은 영혼을 여행 가방에 안에 꼭꼭 넣어서 그렇게 돌아다니나 보다. 역마살이 심한 정도는 아니라는데, 아무래도 사주를 다시 봐야 할까 봐. 짐 가방을 풀기 전에 다시 떠나고 싶은데. 어디서건 언제나 이방인이길 원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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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는 목적은 아마 사람들 모두 똑같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다른 것과 같은 것을 발견하려 한다. 다른 것을 찾으면 주어진 환경에 따라 살아지는 인간이 특별한 존재가 아닌 것 같아 심히 안심이 된다. 동시에 같은 것을 찾으면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방법도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이 주기적으로 필요하다. 누군가의 여행의 목적이 그것이 아니라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뭘까, 어쨌든 내 기준에서는 다른 단어 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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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크라차오를 추천하고 싶은 사람은, 방콕 여행이 처음이 아닌 사람. 왕궁을, 짜뚜짝 시장을, 커다란 쇼핑몰들을 다 둘러보고도 방콕에서 머무는 시간이 남은 사람. 택시를 타도 24시간 러시아워인 이곳에서 가고 싶은 곳을 맘껏 가지 못해 답답한 그런 사람. 에어컨 바람이 아닌 제 두 발로 일으킨 바람으로 시원해지고 싶은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익숙한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 그런 곳을 찾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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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록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흰색과 초록색인데,
흰색은 엄격하게 말해서는 색이 아니란다.
나도 그래서 좋아하는 색을 말할 땐 엄격하게 ‘초록’이라고 한다.
작가 이상은 여길 봐도 초록이고 저길 봐도 초록인 그곳이 권태롭다 하였으나,
태국에서 나는 조금 옅은 초록, 짙은 초록, 노란빛이 나는 초록,
풀 냄새나는 초록을 보느라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은 나에게 완전히 ‘권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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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게으르다고 흔히들 말한다.
언젠가 게으름의 정의를 ‘우선순위를 잘 모르는 것’이라는 글을
읽은 후로는 세상의 게으름뱅이들이 달리 보였다.
태국 사람들은 그 정의에 따르면 절대 게으르지 않다.
더위를 피해 나무에 해먹을 걸고 낮잠을 자는 것은
정말로 부지런한 일상을 보내는 것 아닌가.



다음 장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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