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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니 Jun 11. 2017

모르니까 가는 거지.

<재즈도 모르면서 뉴올리언스>를 시작합니다.

홍대 근처에서만 십수 년째 사는 나에게 '힙스터'란 단어는 호감이 아니라 비호감에 가까운 단어다. 

그렇지만 여행에 있어서만은 이 부끄러운 '힙스터 정신'을 버리지 못하겠다.

이름은 왠지 들어봤던 것 같은 곳,

그렇지만 주위에 가본 사람이 별로 없는 곳, 

그래서 정보를 찾고 싶어도 찾기 어려운 곳.

그런 곳들을 골라서 몇 번의 여행을 했고, 왜 그곳에 가냐는 물음에 나는 그럴싸한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에서 아이슬란드에 대해 읽었어. 여우가 등장하는 설원을 보고 싶었지."

"라오스에서 꼭 보고 싶었던 건 탁발하는 승려의 행렬이었어. 그런데 정작 기억에 남는 건 바스켓에 담아주는 칵테일이야."


어쩐지 인생을 좀 아는 꽤 쿨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이런 어리고 어린 감정에 끌려 여행을 하다 보니, 

결국은 나의 여행들이 진짜 내가 원하는 여행인지 타인이 원하는 여행인지 모호해지는 순간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삶은 관성이라 우리는 또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뉴올리언스를 다음 목적지로 정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번엔 그럴싸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왜? 재즈도 있고, 미국 남부 음식, 그곳이 배경인 영화와 문학 작품도 많은 그야말로 그럴싸한 여행지잖아?

재즈를 좋아한다고 하기엔 나는 루이 암스트롱도 곡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고,

키스 쟈렛을 앨범을 선물 받고는 '이 사람이 키스 잘해?'라는 재미도 감동도 없는 농담을 해서 주위를 얼어붙게 했다. 케이준 음식은 파파이스 밖에 모르고,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는 한 페이지도 넘겨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왜 뉴올리언스인가. 

예를 들어 우리는 '버튼을 누르겠다' 결심하는 동시에 버튼을 누르고, 그것이 자신의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와 관련된 영역의 뇌는 그보다 1-2초 먼저 활성화된다고 한다.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어쩌면 자유의지가 아닐 수도 있단 것이다.

버튼을 누를 때의 1초와 여행지를 결정할 때의 몇 초, 며칠,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은 사실상 이미 결정된 것들을 합리화하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뉴올리언스로 가는 이유를 찾지 않기로 했다.

이미 나는 이름 모를 바에서 들었던 재즈 음악 때문에, 기억나지 않는 글에서 읽었던 뉴올리언스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들었던 그곳의 뉴스 때문에 이미 뉴올리언스에 가기로 정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아무렴 어떤가. 이유가 어떻든 뉴올리언스는 최고의 여행지였으니.



+ 본 매거진은 매주 두 번 업데이트 됩니다. 

화요일은 인규의 시선, 목요일은 윤이의 시선으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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