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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니 Jul 12. 2017

이건 진짜 소울 푸드, 검보.

스튜가 혀를 포근히 안아 주고, 입 안을 따뜻함으로 가득 채워준다.

뉴올리언스를 대표하는 음식, 검보를 소재한 기념품.


이건 진짜 소울 푸드, 검보.


댈러스에서 휴스턴을 경유해서 드디어 뉴올리언스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몇 주동안 우리를 책임질 수하물을 애타게 기다리며 처음 들었던 말이다.

"뉴올리언스엔 처음이야? 그렇다면 꼭 검보(gumbo)랑 포 보이(po'boy)를 먹어봐."

휠체어 탄 승객을 안내하던 공항직원이 그에게 한 말이었다.

그 말을 엿들은 우리가 공항버스를 타고 프렌치 쿼터에 당도하자마자

눈에 보이는 식당으로 달려가 먹었던 음식이 검보와 포보이었던 건 당연했다.


검보는 이름이 주는 느낌이 꽤 묵직하다. 그래서 이 음식의 이름과 정보를 글로만 먼저 접했을 때는

무언가 대단한 요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케이준과 크리올 요리의 대표 주자 아닌가. 그런데 이 일품요리는 단출하다 못해 다소 초라해 보이는 첫인상을 가졌다. 크지 않은 사발에 풀풀 날리는 쌀밥이 담겨 있고, 그 위에 걸쭉한 수프가 얹혀 나왔다. 이게 다인가? 서버가 계산서를 두고 가는 걸 보니 이게 다다.

맛은 어떨까. 음 왠지 익숙한데? 향신료 맛이 강하게 났으며, 모든 재료는 푹 익혀 원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굳이 비슷한 음식을 찾자면 카레라이스(인도식이 아닌 일본식)가 떠오른다.


검보에서 카레를 떠올린 이유는 루(Roux)와 향신료 때문이다. 루는 밀가루와 버터를 함께 볶은 것으로 프랑스 요리의 기본이 된다. 검보는 크게 보면 케이준 스타일과 크리올 스타일로 나눌 수 있는데, 케이준 스타일은 태운 듯한 다크 루와 치킨, 소시지 등을 주원료로 하며 국처럼 묽은 편이고, 크리올 스타일은 케이준 스타일보다는 덜 볶은 루를 써 옅은 색을 띠며 스튜 같은 점성이 있다. 하지만 현재에 와서는 이런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 실제로 검보는 각 집마다 특색이 있어서 검보의 종류는 뉴올리언스의 주방의 수만큼 존재한다고 봐도 될 듯하다. 검보의 어원은 서아프리카에서 오크라를 부르는 단어인 'ki ngombo' 또는 'quingombo'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현재 가장 유력하다. 어원에서 알 수 있다시피 오크라는 검보의 필수 재료인데, 이 오크라가 바로 검보의 점성을 만들어 준다.


이게 다야? 네 이게 답니다.


뉴올리언스는 음식문화가 발달하기로 유명한 곳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음식이 대표 음식이라니 이상하기도 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을 비웃듯이 식당마다 검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도 메뉴의 맨 위에서. 굴요리 집에도, 햄버거 가게에도, 심지어 카페나 바에서도 말이다. 관광지라서 그런가? 명동에서 특색 없이 한국음식을 다 모아놓은 가게들을 봐온 터라 그런 의심이 들었다. 그렇지만 며칠 뒤, 비가 와서 몸이 으슬거렸던 허리케인의 도시에서 다시 검보를 먹고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비에 젖은 몸과 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검보를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걸쭉한 스튜가 혀를 포근히 안아 주고, 입 안을 따뜻함으로 가득 채워준다. 단조롭다고 생각했던 맛은 먹을수록 다채롭게 변해서 재료 하나하나 생생히 느껴진다. 게와 민물 가재의 싱싱함과 동시에 베지근한 채소의 맛도 느껴지다니, 그 한 숟가락에 얼마나 많은 것이 압축적으로 들어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정신없이 검보를 퍼먹다 보니 벌써 바닥이 보인다. 배를 채우고 난 다음에도 한동안 느껴진 따뜻함은 스튜의 온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자의로 타의로 고향에서 떠나온 사람들이 만든 도시. 그들이 고향을 그리며 오랜 시간 끓여 만들어 먹었을 이 음식은 내게도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경험을 한 번 하고 난 다음부터는 길을 걷다가도 문득 자꾸 검보 생각이 난다. 아, 그 갈색 스튜에 밥을 슥슥 비벼 몇 숟가락 떠먹었으면. 

스튜가 혀를 포근히 안아 주고, 입 안을 따뜻함으로 가득 채워준다.


검보와 함께한 여행이 끝나는 것이 섭섭해 서둘러 마트에서 검보 베이스를 사고, 서점에서 레시피북을 샀다. 한국에서도 그 맛을 그대로 느낄 수는 없겠지만 책과 베이스가 있으면 늘 따뜻한 기분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뉴올리언스에서 만약 단 하나의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나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검보라고 말하겠다.

만약 이 글을 읽고 호기심에 검보를 먹어본 뒤 실망한 사람이 있다면, 먹고 또 먹으라고 하겠다. 자꾸 먹어야 맛있다. 검보도 그렇다.


검보만 따로 다룬 레시피북도 서점에서 쉽게 볼 수 있다.


Tips

축제의 도시 뉴올리언스엔 검보 페스티벌도 있지요.

https://www.jazzandheritage.org/treme-gumbo




번외 편>

검보를 만들어 보자!


한국에서 그리울까 봐 노파심에 사 온 검보 베이스로 만들어보는 한국식 검보.

(라고 쓰고 재료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한국식이 될 수밖에 없다고 운다.)


재료: 검보 베이스(미제), 새우 적당량, 소시지, 샐러리, 양파, 후추, 로즈마리, 바질, 파프리카 분말  


*베이스를 사서 할 때는 간이 어느 정도 되어 있으므로, 소금 간이 필요 없다.

*크로우 피시(민물가재)를 더하면 본토의 맛에 가까워진다. 

*밥은 김밥을 만들 때처럼 고두밥으로 하는 것이 좋다.


첫 도전에 실패해도 신에게는 하나의 검보베이스가 더 남아 있습니다!



1. 재료를 준비한다. (사진에서 고양이 제외)

2. 샐러리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잘게 다진다. 양파도 똑같이 한다.

3. 새우는 폭폭 삶아서 육수를 낸다. (30분-1시간 정도)

4. 소시지는 5mm 두께로 썬다.

5. 검보 베이스에 물 5컵을 넣고 끓인다. 

5. 끓이다 2번을 넣고 더 끓인다.

6. 1시간쯤 끓여서 샐러리와 양파가 구분이 어려워질 때쯤 아까 썰어놓은 소시지를 넣는다.

7. 새우 육수 한 컵과 새우를 넣고 몇 분 더 끓인다.

8. 밥과 함께 맛있게 먹는다.    


그는 좋은 검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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