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올리언스의 기묘한 요리책 서점
올해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첫째 날은 흐렸다. 올려다본 하늘은 농도가 다른 회색들로 마블링되어있고, 입고 나온 옷은 잔뜩 습기를 머금어 무겁고 눅눅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페스티벌의 날씨가 이렇다 보니 좀처럼 힘이 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로 도망치고 싶었다.
뉴올리언스 재즈 앤 헤리티지 페스티벌은 예전에 경마장이었던 ‘페어 그룬즈 레이스 코스 & 슬로츠’에서 열리는데, 프렌치 쿼터에서 거리상으로는 그리 멀지 않다. 그렇지만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꽤 난감한 곳에 위치해 있어, 버스를 이용할 경우 가까운 정거장 어디서 내리더라도 한참을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개인차량을 이용해도 주차문제로 걷는 건 마찬가지일 듯) ‘키친 위치 쿡북 KitchenWitch Cookbooks’은 바로 그 버스와 구 경마장 사이 어드메에 위치해 있다. 우리는 타고 갈 말이 없으므로, 걸어 페스티벌을 가는 도중에 잠깐 쉴 겸 이름도 신기한 이 서점에 들러보기로 했다.
‘키친 위치 쿡북’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음식, 요리와 관련된 책을 판매하는 서점이다. 이 독특한 콘셉트의 서점은 미국 남부 음식 문화의 중심지인 뉴올리언스가 아니면 대체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 뉴올리언스의 사람들은 그들의 음식 문화를 단지 관광 상품으로만 소비하고 있지 않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이 서점의 존재로 알 수 있다.
내부 공간은 이름 그대로 마녀의 부엌을, 아니 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책과 소품이 자유롭게 제각각 자리 잡고 있는 이 곳은 그야말로 마녀의 집이 허리케인을 타고 이 곳에 뚝 떨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녀가 살았을 그때부터 이곳에 쭉 존재했을 것 같은 곳인데, 재미있게도 프렌치 쿼터에 있다가 이 쪽으로 이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정신이 없어, 일반적인 분류법으로 책을 분류한 것이 아니라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책을 그저 놓아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뉴올리언스의 지역 음식 요리책은 일반 서점에서 찾을 수 있는 새책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실제로 보고 음식을 만들었을 것 같은 빈티지 책들도 빼곡했다. 아닌 게 아니라 여기서 당장 요리를 만들어도 될 것 같다. 팬과 국자 같은 요리 집기와 소품이 책과 함께 뒤엉켜 있고, 널따란 서점의 구석엔 아예 주방이 있으니 말이다. 단순한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라, 저 오븐에 불이 들어오는 날도 반드시 있을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확신이 들었다. 맙소사 한편에는 아이스박스가 있고, 얼음과 함께 소다와 물이 들어있다. 어디까지가 판매하는 상품이고, 어디까지가 비치용품인지 이쯤 되면 헷갈린다. 여긴 대체 뭐지?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공간보다 더 신기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키친 위치 쿡북의 주인장들. 60년대 영화를 찢고 나온 듯한 주인들을 보니, 이 이상한 공간이 납득된다. 데비와 필립은 이때까지 만나 본 친화적인 뉴올리언스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친화적이었으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온몸으로 발산하는 사람들이었다. 재즈 페스티벌에 간다는 우리에게 페스티벌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가지고 있는 온갖 페스티벌 정보지와 전단지를 챙겨주는가 하더니 곧이어 자신의 페스티벌 티켓을 문워크와 함께 자랑했다. 뉴올리언스와 음식, 책에 대해서는 물어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아는 것 모르는 것 다 알려줄 기세였다.
열정적인 그의 소개 때문만이 아니라, 여기가 아니면 살 수 없을 뉴올리언스 칵테일 책과 케이준, 크리올 책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그 중에서도 매년 쉐프들이 어린이를 위해 만들고 있는 레시피북은 정말 마녀의 비법처럼 신비롭게 느껴졌다. 실제로도 레시피에 적혀있는 재료들은 대부분 한국에선 구하기 어려운 낯선 것들이기도 하고 말이다. 짐이 부담스러운 장기 여행자라 작은 검보책(gumbo book) 하나만 살 수밖에 없는 게 못내 아쉬웠다.
필립은 한국에서 왔다는 나에게 김치의 레시피를 물어봤다. 나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우리 할머니와 엄마는 잘 알지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에게 한국에 돌아가면 할머니와 엄마에게 꼭 레시피를 물어보고 자기에게 언제든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검색 몇 번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아직 그에게 메일을 보내지 않은 이유는 뉴올리언스와 가느다란 끈으로라도 연결된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아, 물론 마녀의 정기를 받고 찾아간 그날의 재즈 페스티벌이 최고였다는 건 굳이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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