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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 May 06. 2019

'광고 같은 거' 만들기가 아니라 '문제 해결'하기

쇼핑의 과학을 읽었다


 광고홍보학과 1학년 광고학개론 수업에서 처음으로 광고(?)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임의로 클라이언트를 정해서 TV CM용 스토리보드를 만드는 과제였습니다. 저의 조는 캠퍼스 안에 있는 카페 탐앤탐스의 광고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때까지 (간략히) 배운 자사 조사, 시장 조사 등을 통해 What to say와 How to say 등 일단 그럴듯한 것은 모조리 다 집어넣고 스토리보드도 그럴듯하게 만들어서 발표까지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꽤 뿌듯했지만 글을 쓰려고 오랜만에 컴퓨터에서 찾아보니 이건 뭐...


 아마 그 광고는 어떤 미디어에 실릴 수도 없고, 실리더라도 아무런 커뮤니케이션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광고를 만든 게 아니라 '광고같은 거'를 만드는데 혈안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우리 카페를 찾고, 그러지 않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TV CM을 만들기 위해 이유를 갖다 붙였습니다.


 그리고 3학년이 되었습니다. 광고심리학 시간의 중간고사 대체 과제는 '쇼핑의 과학'이라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는 것입니다. 23시 59분 59초까지 A4 3페이지 이내 분량으로 단순 줄거리 요약이 아닌 내 생각과 느낀 점, 즉 비평과 분석이 들어간 내용으로 써야 합니다.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반성했습니다. 저는 한동안 (공모전이나 프로젝트의) 문제에 대해 포스터나 TV광고 등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었는데, 이 책이 소개하는 사례들은 정말 소비자 관찰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해 비즈니스, 브랜드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사례는 마트의 애완동물 코너에서 성인은 애완견의 주식(사료)을 구입하는 반면, 어린이와 노인들은 주로 애완견의 간식거리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몰랐을 때는 애완동물 간식이 선반 맨 위쪽에 진열되어 있었는데, 관찰을 통해 선반을 기어오르는 아이의 모습 등을 보고, 간식 제품을 아이들의 손이 닿을 수 있는 쪽으로 진열해 아이들이 제품을 보고 같이 온 어른들을 졸라서 구매로 이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뻔해서 지나치기 쉬운 생물학적 상수(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특정한 신체 해부학적 능력, 성향, 한계 및 요구가 존재하며, 이런 특징에 맞게 소매 환경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를 통해 사람의 시선, 팔과 손의 이용 등의 동작, 시야 그리고 사회관습을 토대로 매장의 동선을 만들고 특별하진 않지만 고객 행동과 관련된 광고를 만드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최근 부산에도 오픈한 삐에로쑈핑, 여기도 매장 동선이 다 기획되어 있을 것이다(아마도..?)

성별과 연령대에 따라 제품을 진열하고 매장 동선과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너무나 신랄하게 분석해서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분석이 불편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모두 같은 사람이지만, 모든 소비자는 다르다는 생각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매년 커지는 중앙일보의 서체 크기, 독자와 함께 나이 들고 있다.


 저자가 지금까지 실행했던 사례들은 정말 이성적인 근거를 토대로 해야 할 일들만 했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왜 '과학'이라는 단어를 쇼핑에 갖다 붙였는지 이해가 됩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꼭 TV광고를 만들거나 포스터를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닙니다. 다시 한번 그럴듯한 것의 유혹에 경고하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사족) 부디, 누군가 이 책의 독후감을 써야 하는 과제를 받았다면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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