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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 Oct 25. 2018

"저는 여러분의 눈을 보고 싶어요."

공연을 만드는 모든 사람에게

이 글은 절대로, 어제 볼빨간사춘기를 제대로 보지 못해 화가 나서 쓰는 게 절대로 절대로 아닙니다.




라쿤페스티벌에 온 볼사


공연을 들었다


저는 볼빨간사춘기(이하 볼사)를 조금(?) 좋아하는 편이라, 부산에 볼사가 오는 행사나 페스티벌은 꾸준히 다니고 있습니다. (연말 콘서트 꼭 갈 거예요!!!) 어제는 한 대학교 축제에 볼사가 와서 당연히 다녀왔습니다.


대학 축제 마지막 날은 학생회 구성원들이 올라와서 인사를 하고, 아름답게 터지는 폭죽 불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관객들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일제히 무대가 아닌 무대 옆 대기실 쪽을 쳐다봅니다. 무대에 서있는 사회자는 아무도 듣지 않는 안전에 대한 당부를 할 뿐입니다. 이제 아티스트들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휴대폰과 카메라가 올라옵니다.


네, 사실 저는 많이 답답했습니다. 투빅과 볼빨간사춘기 공연 중에 제가 본 것은, 무대를 찍는 휴대폰 화면과 그걸 잡고 있는 팔들이었으니까요. 공연을 '보았다'라고 하기에는 본 것이 너무 없어 '들었다'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연장 여러 군데에서 '카메라 좀 내려요', '좀 같이 보자'라고 크게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전 조용히 맘속으로만.. 쭈굴..)


다른 페스티벌이나 스탠딩 콘서트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그나마 더 잘 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집중했습니다. 효과는 별로였지만요.



SIMON DOMINIC : "저는 여러분의 눈을 보고 싶어요"


그리고 마지막 아티스트, 사이먼 도미닉이 '사이먼 도미닉' 노래와 함께 무대에 올라왔습니다. 요즘 가장 핫한 아티스트임을 알려주듯 카메라는 더 많아졌습니다.(물론 볼사 때도 많았습니다) 쌈디는 '정기석입니다'라고 소개를 하고 부산에 와서 반갑다고 사투리로 관객들과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촬영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촬영해서 인스타와 유튜브에 올리는 것은 좋다고 먼저 편을 들어준 다음, 특유의 구성진 말투로, 하지만 멋이 없지 않느냐, 안 놀 거냐고 귀여운 타박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한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메라를 내려놓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눈을 보고 싶어요


물론 그 멋진 모습마저 남기고 싶어 계속 촬영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쌈디는 그 한 마디로 사람들의 맘을 흔들었습니다. 저는 잠시 아티스트가 관객을 보는 시점을 상상해봤습니다. 수백수천 개의 카메라렌즈가 보고 있다면 안정감을 느끼긴 힘들 것 같았습니다. 아티스트들은 단련은 좀 돼있지만 그들도 결국 비슷한 사람이겠죠. 카메라 렌즈보다는 여러분의 눈이 보고 싶지 않을까요?


카메라에 찍힌 사이먼디, @longlivesmdc


'내가' 찍은


저는 촬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이 글에 첨부된 첫 사 제가 찍은 사이거든요. 수평은 안 맞고, 픽셀은 다 깨져있는데 심지어 멀어서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제가' 찍은 사진은 전문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보다 소중한 느낌을 줍니다. (물론 얼마 안 있어 까먹고, 쌓인 데이터 신세가 되지만요)


그리고 촬영을 해야 해서 한다기보다는, 안 하면 안 될 것 같다라는 느낌도 있죠. 기록중독입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중요한 것들은 별로 없습니다. 중요한 것들을 촬영에 집중하느라 놓쳐버리거든요. 저는 그래서 요즘 무엇을 보든 '일단 보고' '남아있는 중요한 것들'만 휴대폰에 메모합니다. 근데 이건 사람마다 다를 것 같습니다.


혹시 찍은 사진이나 영상이 중요하지,  '내가'가 중요하지 않은 분들은, 공연 다음날 아니 몇 분 뒤에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행사명@ + @아티스트@'를 검색하면 아마 실력자분들이 고퀄리티의 촬영물들을 올려놨을 겁니다. 그분들은 정말 빠릅니다. 감사합니다.



합리적인 규칙이 있다면


사실 공연장에서 촬영을 하든, 잠을 자든 아무 문제없습니다. 단,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요. (관람 방해, 저작권 문제 등) 하지만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공연장에서는 크고 작은 문제는 계속 생겨나죠.


저는 가끔씩 보러 다니는 사람인지라.. 잘 모르겠습니다만, 공연을 많이 다녀보신 팬분들이나 공연기획자분들이 경험 자산들을 재구성해서 합리적인 규칙을 만든다면 어떨까요. 팬이라면 자신이 사랑하는 아티스트가 더욱더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로, 공연기획자라면 자신의 공연의 매끄러운 진행과 다른 공연과의 차별화 포인트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 들어,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아티스트에게 멘트를 부탁한다 (관객들은 사회자의 말은 안 듣지만 아티스트의 말은 듣습니다, 그리고 이미 많이 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 촬영존을 따로 만들거나


예시를 쓰다 보니, 정말 아닌 것 같네요. 좋은 방법이 있다면 꼭 공유하고 실행해주세요!! 아티스트와 관객이 서로 눈을 볼 수 있도록!



공연을 만드는 모든 사람에게


공연은 아티스트나 기획자, 실무자들이 만드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관객 한 명 한 명도 공연을 함께 만듭니다.(너무 훈련소 교관이 하는 말 같지만) 문화를 즐기러 온 김에, 함께 즐겨보면 어떨까요. 다음 볼빨간사춘기 콘서트장에서 만날 공연을 만드는 분,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할게요.


배달의민족 배짱이 행사에 온 볼사, photo by 숭


이 글은 절대로, 앞으로 볼빨간사춘기 공연을 더 쾌적하고 즐겁게 보기 위해서 쓴 게 절대로 절대로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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