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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재훈 Oct 24. 2021

페르시아 제국의 상징, 페르세폴리스를 가다4

페르시아 제국의 상징,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를 가다4        




“명령하노니, 누구도 다른 사람을 학대하거나 도시를 해칠 수 없다. 

집을 손상시켜도 안되며 누구의 재산도 훔치거나 빼앗아서도 안된다. 

누구나 자신의 신념체계를 지켜야 하고 자신의 신을 섬길 자유를 가져야 한다.”     

                                 -'키루스 대왕'이 바벨을 정복했을 때 남긴 인권현장


(아르타크세르크세스왕의 절벽 무덤.)     


산 한가운데에는 뜨거운 햇볕에 반짝이며 신전인 듯한 것이 반짝인다. 전면에는 페르시아 제국의 상징인 아후라마즈다가 돋을새김으로 서있고 그 아래에는 작은 돌문이 있다. 키루스 대왕의 손자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왕의 절벽 무덤, 네크로폴리스(nekropolis죽은 자들의 도시)를 닮았다. 

덕치(德治)를 베풀지 못한 왕들은 후환(後患)이 두려워 돌문을 닫고 절대로 열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피라미드가 그렇고,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무덤을 밀장(密葬)하고 일만여 필의 말발굽으로 그 흔적을 없애버린 칭기즈 칸이나, 수천 결사가 입구를 맞는 진시황도 죽어서 죽지 못한 황제들 아닌가. 어느 왕은 내가 죽으면 80개의 무덤을 만들라고 했다고 하니, ‘살아서 인치(仁治)를 베푸는 것이 천 년의 후환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텐데, 인간사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올라서 보니 아주 큰 규모는 아니다. 가만히 벽을 보니 수천만 번을 했을 법한 정질이, 2,500년을 건너 마치 어제한 것처럼 선명하다.

페르세폴리스 안에는 박물관이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려면 다시 20만 리알을 더 내야한다. 입구에서도 20만 리알을 냈지만, 이란의 물가가 저렴해 배낭 여행자들에게도 큰 부담은 안된다. 이 근처에서 발견된 고대 유적과 문화를 연계해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어서 680평 규모의 ‘하다쉬 궁전Hadish Palace’이 나온다. 크세르크세스 왕이 거처하던 곳으로 페르세폴리스를 파괴시킨 화재가 발생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로아스터교의 상징이자, 남성의 상체와 둥근 날개가 달린 ‘파라바허르Farabahar’로 장식되어 있다.


조선은 500년 동안 수많은 화재에도 도당(渡唐) 유학파인 최치원 등에 대항해 우리나라 자생풍수에 비조인 도선의 비보(裨補)사상에 따라 약한 지기까지 보완하며 왕조의 백년대계를 꿈꾸었다. 그런데 이런 대제국이, 이렇게 수천 년 무너져 어느 한 군데 복구됨이 없이 나날이 부서지고 낡아가고 있다. 

특히나 이슬람이 아닌 타 종교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는 호메이니의 후신들에 의해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로 더욱 부서지고 풍화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은 되어 있으니 세계인의 문화재이지만 어느 누가 감히 타국가의 문화재에 대해서 일갈할 수 있겠는가?              


(보물창고는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다. 알렉산드로 대왕이 2만마리 노새와 5천마리 낙타로 보물을 가져갔다.)     

다리우스 궁전(타차라)은 페리세폴리스 궁전단지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궁이며 이어 크세르크세스의 하렘과 보물 창고가 이어진다. 보물창고는 전체 유적의 가장 안쪽에 있으며 기원전 330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를 침입했을 때 털렸다. 

플루타르고에 의하면 이곳을 함락시킨 알렉산드로 대왕이 보물을 옮기기 위해 2만 마리의 노새와 5천 마리의 낙타를 동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몇 달 동안 페르세폴리스의 보물들을 약탈하고 도시를 폐허로 만들 것을 명령한 알렉산더 대왕은, 크세르크세스 1세의 궁전은 잿더미가 만들어 버렸다. 

그는 아르케메네스 왕조의 태조 키루스 대왕의 묘는 파괴하지 않았는데, 크세르크세스 1세에게는 왜 그리 가혹하게 대했을까. 그러한 이유의 키루스 태조의 성정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세계를 자신의 말발굽 아래 두겠다는 야욕은 있었지만 대왕은 적국에게서도 칭송을 받는 그런 인자하고 현명한 성군이었다. 

그렇지만 손자인 크세르크세스 1세는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 때 아테네를 정복하고는 잔혹하게 세계적인 유산인 아크로폴리스를 모두 불태워 버렸다. 그것을 잊지못한 알렉산더에 복수였는지도 모른다. 인류유산이 사라진 것은 더없이 안타깝지만 “전쟁은 끊임없이 피를 부르며 인간이 이 세상에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자학(自虐)이다.”

흰구름 아래 부서진 대리석 덩어리만 인간의 끝없는 어리석음을 철저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러니 ‘전쟁만큼 불행한 것은 없고 평화시대를 산다는 것은 참으로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최소한 3대의 적선은 쌓아야만 우리는 그나마 표면적으로는 전쟁이 없는 땅에서 살 수 있다.            


(아후라 마즈다의 상징 ‘파라바하르’ 부조.)     


우리가 마지막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덕(德)뿐이라고 한다. 그런 성군이 다스렸던 나라의 종교, 조로아스터교의 상징인 ‘파라바하르’를 보면 참으로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종교임을 느낄 수 있다. 

역사적인 기록에도 키루스(Cyrus) 대왕을 비롯한 고대 이란의 왕들은 타 민족에게 종교의 개종을 강요하지도 않고 그들의 신앙체계를 존중했다. 참으로 배타적인 현대의 종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니 키루스 대왕이 바벨을 정복했을 때 남긴 인권현장도 참으로 이색적이다.     

  

“명령하노니, 누구도 다른 사람을 학대하거나 도시를 해칠 수 없다. 

집을 손상시켜도 안되며 누구의 재산도 훔치거나 빼앗아서도 안된다. 

누구나 자신의 신념체계를 지켜야 하고 자신의 신을 섬길 자유를 가져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으며 자신의 거주지를 선택할 수 있으며, 

누구도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인자함이다. 참으로 2500년 전에 이런 현군이 있었다니 그런 분이 다스리는 나라에 가서 살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복수가 복수를 만들고 인류유산을 잿더미로 만든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인류 역사는 그것의 반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도시는 알렉산드로스 사후 <셀레우코스 왕조> 때도 페르시아 수도로 있었으나 점차 폐허로 변하였다.      

이란 정부는 1971년 페르시아 왕조 창건 2,500주년을 맞아 이곳에서 기념식을 했고 1979년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쉬라즈에는 이란에서 두 번째로 큰 스키 리조트인 <플러드커프Pouladkaf>도 있어 겨울동안 많은 스키어들로도 붐빈다.         


(페르세폴리스 매표소 풍경.)     


이제 페르시아 제국의 가장 위대한 유산 페르세폴리스 밖으로 나온다. 매표소 아래에는 아까 들어갈 때는 보지 못한 세계의 국기들이 몇 개 붙어 있는데, 그 중 태극기도 있다. 세계 속 대한민국의 위상과 이란과의 우리의 관계, 특히나 이란의 젊은이들이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한류와 K-POP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반갑다. 

우리도 너무 미국의 눈치만 보지 말고 중동국가들과의 자주적인 관계정립을 이란의 저항경제를 보면서 반성해야 할 것이다. 요즘 트럼프의 폭압과 거기에 덩달아 묻어가는 한국을 보면서 이란에서 ‘한국물건 불매운동’이 일어난다는 소문까지 들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화단에는 여고생들이 앉아있다 만발한 꽃처럼 환하게 웃는다.)     


테헤란의 가장 번화가 백화점 1층을 삼성과 LG가 거의 반반씩 나누어 쓰고 2층부터 거의 모든 소규모 가게 앞에 삼성의 간판이 환하던, 마치 용산전자상가에 온 것 같던 그 모습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위태하다. 한국인이라면 환하게 웃으면서 대해주던 순수한 사람들의 그 눈망울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화단에는 여고생들이 앉아있다 나를 보며 만발한 꽃처럼 환하게 웃어준다.  


          

(스위스 청년과 중국아가씨, 친절했던 이란인 기사, 그가 준비한 차와 크랙커를 먹던 그 시간이 그립다.)     


기사가 2, 3분여 오른쪽으로 차를 모는가 싶더니 유적 철조망 곁에 차를 세우며 여기서 사진을 찍으며 전채를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아까 길가에서 석류와 오렌지를 살 때 뜨거운 물을 담더니, 황량한 벌판 위에서 본네트 위에 크렉커 몇 개와 따뜻한 차를 준비한다. 

그의 세세한 마음 씀에 훈훈함이 밀려온다. 36세에 아직 아이가 없다는 젊은 기사, 앳되어 보이지만 페르시아인 특유의 굴레수염이 빽빽한 털보 운전사, 관광객들이 팁도 잘 줄 것 같은 그의 센스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언제쯤이나 이 자리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전채적인 조망과 함께 ‘만국의 문’을 볼 수 있다.)     


이오니아식, 도리아식, 기둥과 주춧돌만 뒹구는 폐허, 귀 떨어지고 코 떨어진 소들의 석상, 깨어지고 팔 떨어진 사신들과 사자들의 부조, 키루스 대왕도 다리우스 1세도 크세르크세스 1세도, 젊은 나이에 세계를 피비린내로 몰아넣고 자신의 말발굽 아래 호령하다 홀연히 떠난 알렉산더 대왕까지도,


“인간의 영화가 덧없다”      


는 심수봉의 노래 한 구절이 저절로 나온다. 부서진 잔해 속에서는 금방이라도 툭, 툭 털고 일어날 듯 그리핀상(사자의 몸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지닌 상상의 동물) 한 마리가 유독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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