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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재훈 Oct 24. 2021

페르시아 제국의 상징, 페르세폴리스를 가다3

페르시아 제국의 상징,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를 가다3


          

(2,500년 전에 세운 기둥과 잔해들만 뒹구는 ‘아파다나 궁전Apadana Palace’.)     


<아파다나 궁전Apadana Palace>은 제국의 ‘샤한샤’가 조공을 바치러 온 사신들을 접견할 때 알현실로 쓰였으며, 페르세폴리스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웠다. 한꺼번에 수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규모였다. 사절단과 귀족들을 접견하기 위한 장소(연회장)로 역대 왕들의 대접견장이며, 다리우스 대왕이 페르세폴리스 궁전의 영광을 표현하기 위해 짓기 시작해 크세르크세스왕 때에 완공 되었다.

20m 높이의 기둥이 72개나 서 있었는데, 현재는 13개만 남아있으며,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돋을새김의 조각들이 선명하며 섬세하다. 그 시절 문화과 예술적인 상상력들을 잘 보여주며, 중앙아시아를 누비던 오리엔트 제국의 기상이 도드라져 보인다. 

페르시아어로 ‘샤(왕)한샤’는 왕 중 왕(황제)이라는 뜻이며, 다른 말로는 ‘파디샤’, ‘왕들의 주인’이라는 뜻도 있다. 그런 웅장했던 공간에 맨 처음 고고학자들이 왔을 때. 기둥 위에서 황새의 둥지까지 보았다고 하니, 사람들의 뇌리에 영영 잊혀진 고적한 공간이었나 보다. 천군의 말발굽이 지나간 이후, 세상사 꿈꾸었던 덧없는 욕망들만 흰구름 아래 아스라하게 떠있었나 보다. 
 넓은 공간을 석조기둥이 떠받치는 공법은 고대 이집트에서 유래했으며, 기둥 초석에 수련(睡蓮)으로 보이는 이집트 연꽃무늬까지 남아 그때의 시절을 아로새기는 듯하다.    


       

(각가지 조공을 바치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사신들과 노루즈(설날)의 상징, 소를 무는 사자.)     


아파다나를 오르는 계단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신들이 왕에 대한 영원한 충성의 증표로 은과 금제품, 무기, 보석, 비단, 향료, 염소 등 온갖 진귀한 보물을 바치기 위한 긴 행렬이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불사부대the Immortals로 알려진 최고의 군사력과 용맹함을 갖춘 왕실 엘리트 수비대원들도 그려져 있어 당시 페르시아 왕의 절대 권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거대한  건물 뒤로는 <다리우스 궁전>과 <크세르크세스 궁전>이 이어진다. 
 

위대한 왕조의 유산 아파다나 궁전의 남쪽 끝에 남아있는 계단 벽에는 황소와 사자가 싸움을 하고 있는 부조Bas-relief가 남아있다. 긴 세월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을 보여주는 이 부조는 이란 사람들의 가장 큰 명절인 ‘노르즈(Nowruz설날)’를 의미한다. 

새해 첫날을 뜻하는 노루즈의 기준은 ‘춘분(春分)’으로 긴 겨울이 지나고 낮이 밤보다 길어지는 첫날이다. 달과 겨울을 의미하는 ‘황소’와 태양과 봄을 상징하는 ‘사자’가 그려진 이 부조는 노루즈의 기본을 잘 표현해 준다. 두 동물은 끝없이 영원한 싸움을 계속 하는데, 춘분날 사자가 황소를 물리치게 됨으로서 드디어 봄이 오게 되며 비로서 이란의 새해가 시작된다. 타일랜드의 송크란이나 미얀마의 더굴라와 비슷한 계절에 시작되며 의미 또한 상통한다.         


(가장 완벽하게 남아있는 춘분의 부조, 사자가 황소를 이기면 춘분이 오고 노르즈(새해)가 시작된다.)   

  

동양의 관념과는 약간 배치되는 느낌도 든다. 우리에게 왕방울만한 소의 눈망울은 겁이 많고, 순수, 평화를 상징하며 백수의 왕 사자는 힘과 용맹으로 표현되는데 말이다. 특히나 농경사회에서는 소는 농사의 기본이고 소가 없는 농사는 생각할 수가 없다. 소는 모든 것을 인간에게 주고 간다. 사람이 사는 지역에 따라 저마다의 문화와 생활이 다르므로 여행의 묘미가 더 새롭게 다가온다.      

마호메트가 메카에서 ‘메디나‘ 이주한 622년이 원년이며, 기원전 538년 키루스왕 때에는 아베스타Avesta어로 나버세르더Navaserda, New Year라고 불렀으며, 이곳의 설 연휴는 거의 2주 가까이 진행되어 치앙마이 오지 산속에 사는 몽족들과도 비슷하다. 

오래간만에 어른들 집을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친척들을 만나는 것은 우리와 같다. 그래서 민족 최대의 명절인 새해를 맞기 위해서 우선 ‘커네 테커니(Khane-Tekkani집을 흔들다)’을 하는데, 손님들을 맞기 위해서 ‘대청소’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는 새로 가정용품도 사고 가족들의 설빔도 산다. 그래서 노르즈를 ‘설 타흐빌(Sal-Tahvil새해의 배달)’이라고 하는데, 설 전에 인테리어 용품이나 가전제품들이 집으로 배달되어 오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란은 금요일이 우리의 일요일이며 토요일이 한 주의 시작이다. 혹시나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목요일날 미리 준비해 두어야 낭패를 면할 수 있다. 가게들이 문을 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들도 이때 사람들이 가장 많은 지출을 하므로 광고 등에 많은 신경을 쓴다. 노르즈는 이슬람이 유입되기 전 키루스 대왕 때 조로아스터Zoroastrian교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모든 국민들이 민족 대이동을 하며 즐기는 진정한 페르시아인들의 축제이다. 
 그래서 페르세폴리스에서는 노루즈를 기념하는 의미로 관광객들을 위한 ‘하프트신 상차림’을 매년 전시한다. 각 가정에서도 우리가 차례상을 차리듯 하프트신 상차림을 정성껏 준비하며 기쁜 새해를 맞는다.      


    

(각 나라 사신들의 모습.)     


기원전 6세기 경 어느 노르즈(새해) 첫 날,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페르세폴리스 왕궁 앞, 사신들의 옷차림이나 헌상물들도 저마다 다른데, 잠깐 실눈을 뜨고 행렬을 내려다본다. “     

낙타를 타고 온 아라비아인과 들소를 몰고 온 간다라인(인도 동쪽 중부지방), 전차를 끌고 온 리디아인, 상형문자가 가득한 파피루스를 들고 온 이집트인, 말을 몰고 온 아르메니아인, 금가락지를 들고 온 레바논인, 소를 몰고 온 바빌로니아인, 향수병을 들고 온 인도인, 상아를 들고 온 에티오피아인들이 만국의 문 앞에 줄지어 서 있다.”     

서아시아에서부터 지중해를 건너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대제국의 왕 다리우스 1세를 알현하고 눈도장을 찍기 위해 28개 속국의 사절단들이 왔다. 그 뒤로는 1만 명의 정예부대로 구성된 불사(不死) 친위 병력이 도열하고 있어 극도의 위압감을 준다.

다음 날은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의 과시하기 위해 15,000명에 달하는 왕족들을 페르세폴리스 궁전으로 불러 향연을 베풀었다. 상대적으로 작게 새겨진 외국 사신들은 손에 진상품을 가득 들고 커다랗게 묘사된 왕 앞에 서 있는 것이 당시 그들의 위상을 알려준다. 사신들의 공손한 태도, 왕의 근엄한 표정,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에서부터 공물로 바쳐지는 동물들의 몸부림까지 장대한 서사시가 역동적으로 전개된다. 옥좌에 앉아있는 다리우스 왕과 뒤에 서있는 아들 크세르크세스 왕이 각국의 사신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부러지고 쓰러진 영화)


1979년 입헌 군주제인 팔라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은 이슬람 종교지도자인 국부 호메이니는 조로아스터교 시대의 산물인 설날(노루즈) 행사를 ‘이교도의 축제’라며 비난했다. 그래서 이란 교과서는 페르시아의 영광도 간략하게 다루며, 페르세폴리스를 비롯한 폐허가 되어버린 다른 고대 유적지들도 그냥 방치하는 수준이다. 

이어 2011년 권력을 이어받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이슬람 이전의 역사를 너무 강조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란인의 피에는 페르시아 전통이 흐르고 이란인들은 자녀의 이름을 페르시아의 영웅들에서 가져온다. 그러므로 설날 전후 2~3주에 이르는 민족대이동을 한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호메이니 정부는 ‘반제, 반미’ 의 선봉이 됐다. 급기야 2002년 부시 미대통령은 이란을 ‘악의 축’으로 몰았으며, 2011년에는 경제의 실핏줄인 금융을 차단했다. 

지금까지 일류역사상 최고 수준의 경제 봉쇄를 당하면서 굴하지 않고 ‘레시스탕스 경제(저항경제)’라는 이름 아래 자급자족으로 버텼다. 

그러나 나이 먹은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고 살고 있지만 지하경제는 사실 힘들다. 특히 젊은이들은 그런 경제봉쇄제재를 좋아하지 않으며 그나마 사이가 좀 괜찮은 아르메니아, 터어키, 그리스 등 인근 나라들에 살며 유럽 등에서 직장을 잡기를 원한다. 그들은 한 번 국경을 벗어나면 다시 돌아오기가 힘들다.      

자원은 풍부한데 국민들은 가난한 나라, 그래도 축복의 땅이라고 해야 할까. 땅속에는 어느 곳이나 빨대만 꽂으면 석유와 가스가 나오고 카스피해와 오아시스 인근의 땅에서는 풍부한 일조량 덕분에 오곡백과가 풍성하다. 그들의 자랑처럼 자립경제가 가능하니 자존심을 지키면서, 미국에게 큰소리 칠만도 하겠다. 그런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들은 연호도 독자적인 <이란력>을 사용한다. 

태국 같은 나라도 독자력을 사용하며 일 년 중에 가장 더운 4월 12월쯤에 세계적인 물축제 송크란이 열린다. 

한국과의 시차는 4시간 30분이며 서머타임일 때는 5시간 30분이다. 독자적인 연호와 30분 시차의 표준시를 쓰는 나라는 지구상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 올해가 이란력으로 1399년이며 4월 초는 1월 중순쯤 해당된다.           

(사라진 제국의 흔적.)     


건축사적으로 페르세폴리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산물인 헬레니즘 건축의 모태가 되었다. 페르시아 건축은 대제국답게 웅장하고 화려한 거대 열주들이 연속되는 양식의 구조물을 즐겨 사용했는데, 알렉산더가 대제국을 세운 뒤 그리스인들도 이를 받아들여 통치의 권위성을 과시하는 기념비적인 양식을 만들게 된다. 

건축사가들은 페르세폴리스 건축은 독창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리스 양식과 애초부터 밀접한 연관성을 지녔다고 본다. 기원전 4세기께 소아시아 해안지역의 이오니아가 페르시아에 꾸준히 조공을 받치면서 유명한 이오니아식 기둥양식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대 화재 후 그나마 원형을 유지한 건물 중의 하나가 ‘거울 홀The Mirror Hall’로 불리기도 하는 ‘타차라 궁전Tachara Palace’이다. 

다리우스 개인 공간으로 지어진 궁전은 예전에는 태양빛이 창문을 통해 비칠 때의 투영된 이미지가 조각된 돌들로 덮여 있었으나, 현재는 아케메네스 왕의 축복받은 위엄을 묘사하는 부조들만 남아있다.          


(다리우스왕의 기초에 의해 태조 키루스왕의 꿈이 이룩된 페르세폴리스, ‘백주 궁전’.)     


1,400평가량의 면적에 세워진 <백주 궁전>은 크세르크세스(Xerexes519~466 BC)에 의해 100개의 기둥으로 지어졌으며, 그의 아들 아르타크세르크세스(Artaxerexes 1세, ?~424 BC)가 완성했다. 돌로 만들어진 8개의 출입구와 쌍두의 황소로 기둥 상부가 장식된 검은 대리석이 이채롭다. 조공을 바치러 온 사신들을 환영하고 연회를 베풀던 장소였지만 현재는 거의 기둥도 남아있지 않다.      

따가운 태양 아래 페르세폴리스를 발아래 품은 낮으막한 돌산을 오른다어찌 이런 작은 산 아래 이 웅대한 대제국을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중국의 대제국들이나명멸해 갔던 이 땅의 수많은 왕조들은 모두 높은 산과 푸른 물 속에 포근하게 배산임수(背山臨水)로 자리 잡았었다.

나는 세계여행을 하며 세계의 왕조를 볼 때마다 동쪽의 조그만 반도의 나라 대한민국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지금 현 시점의 한류콘텐츠들인 대장금이나 주몽 같은 드라마와 싸이, BTS 등을 볼 때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땅의 왕조들이다고려조선 500년에 신라는 세계사에서도 그 유래가 찾아보기 힘든 당당하게 1,000년 역사에 육박한다.

조선는 지기(地氣)만 보아도 북쪽은 북악산, 전면에는 남산, 서쪽에는 인왕산, 동쪽에는 허한 기운까지 보완한 낮으마한 낙산까지 사방이 푸른 산과 물로 쌓여있지 않은가. 그런데 여기는 물 한 줄기는커녕 풀 한 포기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산이다. 


"백성들은 뭘 먹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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