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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재훈 Oct 25. 2021

죽은 자들의 도시,낙쉐 로스탐Naqsh-i Rust

죽은 자들의 도시, 낙쉐 로스탐Naqsh-i Rustam      


       

(왼쪽부터 아르타크세르크세스1세, 크세르크세스1세, 다리우스1세, 측면에 다리우스2세 암굴묘 순이다.)

     

“죽은 자들의 도시”를 찾아 나선다. 이곳 어디쯤 역사가 기록되기도 전에 지구상에 처음으로 거대한 제국을 만들고 사라져 버린 고대 묘지가 숨어 있단다. 

페르시아어로 <낙쉐 로스탐Naqsh-i Rustam>이지만, 영어로는 <네크로폴리스nekropolis, 고대 그리스어νεκρόπολις>이다. 출발부터 약간 음습한 기분이 들었다. 산 자들이 찾아가는 그 길은 따가운 태양 아래 끝없는 흙빛 벌판만 펼쳐졌다. 과연 샤한사(왕중왕)들은 이 길을 가면서 장래 자신의 죽음을 예비해 두었을까. 

얼마쯤 달리다 보니 딱, 벌어진 거인의 어깨처럼 돌산 하나가 병풍처럼 펼쳐졌다. 낙쉐 로스탐, 어원을 보니 ‘낙쉐’는 ‘조각’이고 ‘그림’이란 뜻이며, ‘로스탐’은 전설 속 왕의 이름이다. ‘왕의 조각’, ‘로스탐의 부조(Relief)’ 쯤 되겠다. 로스탐은 페르두시의 『왕들의 서』에서도 고대 영웅들을 지칭하니 서로 통하겠다. 

그러나 이곳은 사산제국의 몰락과 함께 역사 속에 묻혀 벼렸다. 그러다 발견된 것은 1923년 독일 고고학자 헤르츠펠트의 노력에 의해서다. 그는 이곳의 가치를 알아보고 다리우스 1세의 영묘 명문을 주조해서 연구했다. 그리고 1936년부터 39년까지 슈미트가 이끄는 시카고대학교 동양학연구소 팀과 1974년 샤바지가 이끄는 아케메네스연구소에 의해 발굴과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페르세폴리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12키로 쯤 떨어져 있다.          


(아르카크세르크세스1세,크세르크세스1세,다리우스1세, 2세 순서.)     


네크로폴리스는 도시 내의 무덤과는 달리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땅 위에 남아있지 않는 무덤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 단어는 고대 시대에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말이었지만, 인간의 뇌리 속에 사라졌다가, 19세기 초에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다. 즉 <글레스고 네크로 폴리스Glasgow Necropolis>와 같은 계획된 도시 공동묘지로 쓰이게 되었다. 

이런 형태의 묘지의 원형은 아마도 고대 이집트의 <기자 묘지Giza Necropolis>에 있는 커다란 피라미드들로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속하기 때문에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묘지 중의 하나이다. 파라오 매장을 위해 미리 예약된 피라미드를 제외하고 이집트 네크로폴리스에는 초기 왕조 시대 전형적인 왕 무덤인 마스터바스Mastabas도 포함되어 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성당 뒤 작은 언덕에 있는 네크로폴리스도 유명하며 입구에 한국참전용사 기념비도 있다.      

파르스 지방Fars Province에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아케메네스 왕조의 이 유적지는 후세인산(Hussain Kuh) 남쪽 암벽에 4개의 암굴묘로 초기 황제들의 영묘군(靈廟群)이다. 왜 이렇게 암벽 위에 만들었을까, 생각하며 올려다보려니 고개가 아프다.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해 이렇게 힘들게 절벽에 암벽을 뚫고 들어간 것은 아마도 그들이 믿는 종교, 조로아스터(짜라투스트라)교의 강령 때문일까?      


“죽은 자는 땅에 묻어도 안 되고, 

불에 태워서도 안 되며, 

물속에 넣어서도 안 된다.”     


여기서 멀지 않은 파사르가대에 페르시아 제국의 문을 연 태조 키루스 대왕도 자신을 미라로 만들어 땅 위에 돌로 제단을 쌓고 그 속에 안장했다(이모작뉴스3회, 페르시아 제국의 기원, 파사르 가대를 가다. 참고). 

독수리가 발라먹고 남은 뼈들을 보관하는 조로아스터교의 조장(鳥葬)의 풍습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땅을 오염시키지 않고 새를 통해 육신이 공중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했을까? 문득 우리의 솟대사상까지 오버랩 된다.   


(입구에서 본 낙쉐 로스탐.)     


그늘 하나 가릴 나무 한 그루 없는 광활한 벌판에 내리쬐는 뙈약볕은 거대한 바위 절벽에 부딪쳐 나오는 복사열까지 합쳐 더욱 뜨겁다. 포장 아래에는 현지인들 몇 명 앉아 그들의 전통놀이인 주사위를 던지고 우리를 태우고 온 기사도 그 옆에 앉는다. 

기념품 가게 주인은 오늘 장사를 포기한 듯 별 관심을 가지지 않은 관광객들을 보며 약간 늘어져 있다. 그 옆에서는 커피도 팔지만 사람들은 눈길을 주지 않는다. 우리처럼 시원한 냉커피라도 팔면 서양인들이 붐빌듯 한데 주인이 아예 의욕이 없어 보인다.  

 여기로 들어오는 길 입구에는 사산 왕조 시대의 영광을 보여주는 <낙쉐 라자 암각유적>이 있는데, 대관식 장면과 성직자의 활동상 등이 아주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관광객들은 먼저 전면에 있는 구릉에 올라가 4개의 왕 무덤을 사진에 담는다. 절벽에는 전면에 3개, 측면에 1개의 굴이 있는데, 모두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그 가운데에 작은 굴이 있다. 가장 후대인 다리우스 2세가 있는 측면 굴은 지금 보수공사 중이다, 그 안에 인걸들은 이미 풍화되고 흔적도 없으리라.      


“일체의 일어나고 스러짐이 단순하다.”

     

“본성은 공(空)하다.”     


왼쪽부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크세르크세스 1세(구약 성경에는 ‘아하수에로 왕’), 다리우스 1세(구약 성경 에스라4~6장에 나오는 다리우스 왕), 다리우스 2세다(자료마다 다리우스 1세 이외의 암묘 주인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다.)         


(다리우스 1세 암굴묘, 아래 전투 장면, 왼쪽에는 사산왕조 샤푸르 2세의 승리묘사 부조가 있다.)     


제국의 2대 왕인 다리우스 1세 암묘 앞에 먼저 서본다. 아무래도 가장 먼저 이 자리에 터를 잡았으니 원형에 더 가까우리라. 십자가 상부에는 가운데 아후라마즈다 신이 모셔져 있고 오른쪽에는 불의 상징인 태양이 떠 있다. 

그 아래 3층의 단 위에는 보통 사람보다 크게 돋은새김 된 왕(약 2,7m)이 활을 잡고 서 있고 그 앞에 조로아스터교 상징인 불꽃 제단(불향로)이 있다. 그의 뒤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조로아스터교 상징, 그 아래 왕과 꺼지지 않는 불, 28개 속국들 사신이 그 상징과 왕을 받치고 있다.)     


첫째, 아후라마즈다에 대한 경배와 기도다

둘째, 다리우스 1세와 조상들의 업적에 대한 찬양이다 

셋째, 이곳에 새겨진 부조에 대한 설명이다.      


다리우스 황제가 통치했던 28개국 사신들이 그 아래에서 황제 제단을 떠받들고 있다. 고대 시절에도 정복자들의 권위와 위세는 대단했나 보다. 재단 밖에는 2개국 대표가 더 표현되어 있다. 제단의 가장자리 기둥머리에는 포효하는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제단 양쪽에는 우리가 페르세폴리스에서도 많이 보았던 불사친위대가 호위하고 있다. 

올려다보니 너무 높아 고개가 아프다. 자연암반을 저렇게 깊게 파고 들어가려면 석수장이는 밤마다 얼마나 팔이 저렸을까? 저 절벽 끝에 요행히 걸터앉아 수천만 번의 정질을 했으리라. 고대의 역사를 건너 뛰어온 인류문화유산이라고 하지만 단 한 사람의 욕망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땀을 바쳐야 하는 그 이데올로기의 댓가가 민중에게는 너무나 크게 다가온다.

제단 위 오른쪽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 다리우스를 사후세계로 안내라도 하는지 수천 년 외롭게 떠있는데, 이제는 세월 속에 마모가 심해 퇴락한 그들의 역사만큼이나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은 크세르크세스 1세 영묘이다. 명문은 페르시아어와 엘람어 설형문자로 이루어져 있다. 상단부 부조의 폭은 10,9m, 높이는 8,5m인 직사각형 형태다.          


(중앙부에 궁궐 모양으로 치장된 석묘 입구.)     


중앙부는 가장 넓으며 기둥과 지붕 형태를 갖춘 궁전 모습으로 왕이 사후 영생을 누릴 궁전인 모양이다. 4개의 기둥이 있고, 기둥머리는 등을 맞댄 쌍둥이 황소가 받치고 있다. 기둥의 높이는 6,22m이고 기둥 사이 간격은 3,15m다. 궁전은 다섯 칸으로 폭이 18,57m에 이른다. 기둥 위에 톱니 형태의 처마와 슬라브 형태의 천장이 있다. 궁전의 높이는 7,63m에 이른다. 전체적인 모습이 페르세폴리스의 타차라 궁전과 같은 모습이다. 

가운데 문의 폭은 1,4m이고 높이는 2m 쯤에 이른다. 안으로 들어가면 방 모양이 세 개 있으며 각각 세 개의 묘실이 있으니 총 9개다. 내부 바닥에는 물길이 있어 묘실로 물어 들어가는 것을 차단했다. 묘실의 깊이는 1,05m, 길이는 2,1m이다.

연구자들은 이곳을 다리우스 1세의 가족들의 묘로 보고 있다. 그의 부모와 두 아내가 함께 있는데, 두 아내 중 하나는 키루스 대제의 딸인 아르티스투네아이고, 또 하나는 크세르크세스 1세의 어머니 후타오사이다. 그리고 크세르크세스 1세를 제외한 자식들이 함께 묻혔을 것으로 추정한다. 가족묘 내부 공간은 크기는 길이 18,72m, 폭 2,13m, 높이 3,7m이다. 그런데 하단부는 깨끗하다. 마치 공(空)과 무(無)라도 상징하려는 듯이 아무 무늬가 없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인 기원전 시대에 어떻게 바위 속에 이런 큰 굴을 파고 밖에는 저런 조각까지 하였는지 볼수록 대단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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