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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drew Sep 30. 2015

전역 유감(1)

손꼽아 기다리지 말자


2015년 9월, 병장 3호봉.



군대에서 전역한다는 건, 포크로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다. 의외로 유감스럽고 서운한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미련을 정리하고,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이제 내 '짬'쯤 되면, 달력을 가까이하기 마련이다. 지나간 날짜에 x표를 치기도 하고, 남은 날수가 몇일인지 손가락으로 헤아려 보기도 하며, 다가올 마지막 휴갓날과 전역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우리 행정병들의 달력에는 하루가 지나면 지나간 날짜에 ‘X’자를 큼직하게 낙인처럼 찍는다. 그러니까 낙인이 찍히면 그 날도 해낸 것이며 버텨온 것이다. 이렇듯 군대에선 다들 전역날 만을 바라보고 기다린다.



전역은 인생의 새로운 문이며, 다들 그 문을 열기 위해서 숨을 죽이고 모든 기대를 건다. 하지만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은 단지 '소비'된 시간, 그리고 무가치한 시간으로 여겨진다고 생각들을 한다.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유감이다. 지나간 시간에 x표 그려진 달력이 무엇을 투영해주고 있는 지를 이해하면 그렇다. 20대 초반의 시간들이 배우고 경험하고 무언가에 몰입하는 시간이 아닌,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시간을 소비되고 무가치한 것으로 여긴다는 사실이 슬프다. 더욱 문제는 무가치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악한 내면을 드러내곤 한다.


내가 처음 이등병으로 전입왔을때, 우리 중대엔 부조리로 악명을 떨친 한 사람이 있었다. 정모군이라고 해두자. 정모 군은 마음에 안드는 후임이 있으면 얼굴에 물을 뿌리곤 했다. 또 때로는, 서슴없이 욕설하고 부조리를 강요하기도 했다. 구타 또한 있었다. 정모군은 공공의 적이었고 어떤 후임이든 그에 대해 치를 떨었다. 그러나 덩치 좋은 그에게 어느 누구도 맞설 생각을 못했다. 정모군의 전역식은 의기양양했다. 그 기세로 세상으로 나가서도 성공가로를 달릴 것만 같았다. 2달 뒤 우리는 정모군의 소식을 들을수 있었다. 그는 돈가스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웃는 얼굴로 손님을 대응할 모습을 상상하려니 조금 기분이 역겨웠고, 또 의기양양했던 그를 떠올려 보려니, 돈가스 아르바이트하는 그림이 당최 잘 그려지지 않았다.

 


 우리는 군인인 것이 명예롭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 나를 소개할 때, 상대방의 ‘아......군인이세요?’라는 말은 많은 것을 함축한다. 내가 특별히 불쾌함을 느끼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군인에 대한 어떠한 명예도 존중도, 이해도 없다. 그러므로 군인은 무가치한 시간 속에 있으며 인생에서 특별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떼어놓고 싶은 케익 조각 같게 돼버린다.


이렇듯 군의 바깥에서도 안에서도 자신을 인정해주질 않으니, 그들은 자신을 포기해버린다. 그러니 군대에서 더욱 인성이하의 행동이 잦은 것이고, 그래서 다들 그렇게 전역에만 그렇게 목매여 있는 셈이다. 존중이 없는 곳에서 인간은 더없이 악해진다. 그리하여 선후임 막론할 것 없이 다들 그곳에서 탈출하고 싶어한다.



유감이다. 나 또한 이런 현실에 때때로 동화되기도 한다. 내가 부대 안에서 부정당하거나 소모물품쯤으로 전락되어버릴 때, 혹은 사회밖에서 까까머리 군인으로 개무시당할 때, 나도 전역을 하루빨리 기다리곤한다. 전역하면 달라질 내 모습을 기대하며 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 스스로가 더욱 가증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결국 그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간을 부정할 때, 나의 젊음마저 부정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훗날, 24세의 오늘이, 다시 돌아가면 잘해내고 싶은 그런 날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부끄러운 시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는 바라는 바 전역 후의 미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전역까지 충분한 60여일이 남아있다. 그러니 달력에 x표도 더이상 치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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