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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drew Oct 18. 2015

전역 유감(2)

길들여짐은 어렵다

뻐끔, 뻐끔, 뻐끔.


나는 담배를 입에 댄적 없다.

하지만 오늘은 담배 피고 싶은 하루다.





***





날이 밝았다.

나에게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군생활의 마지막 휴가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그간 사용했던 옷가지들과 물품들을 비운다.


나는 이곳을 떠난다.이제 내가 이 공간을 향유하는 것은 전역전 하루뿐이다.



1주일 전부터 조금씩 준비를 했다.

이별이란 늘 슬픈 것이다. 갑작스러울수록 충격은 크다. 조금 일찍 준비해야 했다.

대개 그럴수록 아쉬움이 더 진해질 뿐이지만 말이다.



친하게 지낸 선임과 외출을 나갔다. 속초 구경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 바가지 많이 썼다.

아끼는 후임들과 매일을 시간을 같이 보내려 노력했다.

라면 먹고, 축구하고.

단순했다. 단순해서 좋았다.




군입대 전에 소중한 사람들과 매일을 함께 보냈던걸 그리워했었다. 어느새 나는 전우와 남은 시간들을 매일 함께 보내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길들여졌다. 그들은 어느새 내게 소중한 사람이 되버렸다.

인정하기 싫었다. 그런데 정말 그랬다.




밤이 깊었다. 들뜨지만 아쉽고, 기쁘지만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를 마감하고 새 도약을 한다는 건 의미있는 일이니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던 것 같다.


아침이 밝았다. 전투복을 입으며, 수의로 갈아 입는 기분이 들었다. 낯설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전철에서 내려 길을 걷는 데, 마음이 많이 불안하고 조급했다.

두근거리고 긴장됐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노인 브룩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브룩스는 일평생을 쇼생크 감옥에서 보냈다. 그는 노년에서야 가석방되었다. 감옥 밖 세계는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다. 늘 쫒기는 감정, 그리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악몽.

브룩스는 자살을 선택한다.


브룩스의 시간과 비교할수는 없다. 그래도 21개월이 길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내가 걸었던 그날 그 거리는 대단히 고독하고 낯설었다. 집에 들어와서 별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깥 세상이 주는 격리감과 소외감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늘 나를 통제하던 군대가 벌써 그리워진다. 한편으로 이런걸 보면, 사람은 역시 긍정적인 기억들이  뇌리에 남는 것 같다. 인간이 겪는 모든 경험들은 대부분 안좋은 상황을 수반하지만, 그 경험을 매듭지을 때면 좋은 추억으로 잘 포장되기 마련이다.

 


나는 그들과 그곳에 여전히 길들여져 있었다. 한번 길들여진 것을 끊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집에 돌아와서도 많은 감정선이 오르내리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하루쯤은 숙연해졌던 것 같다.


문득 노을 보고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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