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은 늘 외롭다.
자신의 구역내의 그 누구도 세상밖으로 떨어져서는 안되며
한명이라도 잃었을 때의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비록 그게 실수여도, 혹은 한 인간이 막을 수 없는 것이더라도.
그러나 파수꾼은 이내 곧잘 털어내고 다시 아이들을 지켜내야한다.
우리 동네는 재개발 구역이었다.
그래서 잘사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상당히 혼재되어 있었다.
아이들도 서로 표만 안낼 뿐이지 다 안다.
쟤는 집 주인이니깐 금수저
얘는 전세니깐 은수저
나는 곧 여길 뜰꺼니깐 흙수저.
아이들은 그 속에서 첫 빈부격차를 느끼고, 첫 회의감과 마주한다.
또 유독 해체가족이 많기도 했다.
이것도 수저랑 연관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가정에서 받을 사랑이 없고, 삶에서 모델이 없는 아이들은 대개 방황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일탈하기도 하고, 그룹을 만들어 어두운 길로 빠지기도 한다.
세상의 유혹은 대개 첫 흡연, 술자리, 그리고 오토바이에서 시작된다.
그 문화를 접한 아이들은 이후엔 다시 만나기 힘들다.
어두운 얼굴에 어두운 모습으로, 어두운 길을 걷기 시작하는 아이들.
한창 공부하던 고2때, 집에서 치킨을 주문한 일이 있다.
배달원이 낯이 익어 얼굴을 들여다보니, 내 절친했던 중학교 친구였다.
우리는 서로의 사정을 알고 있었고,
간단한 인사치레와 함께, 우리는 오래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아.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셀린저
어떤 직업에 대한 좋은 인상은, 그 직업의 좋은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사진도 물질도 모두 언젠가는 사라져 없어지지만, 흔적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니깐 가끔 밤길을 홀로 걸을 때, 생각나는 것들은 보통 이런 것들이다.
유년 시절 선생님들이 내게 베풀었던 흔적들과 사랑, 그리고 마음을 일렁이는 감사함.
운좋게도, 정말이지 나는 대개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다.
나는 늘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학교가 5분거리인데도, 조금 일찍 들어가보겠다고 자주 담을 넘다 걸리기도 했고
지각도 참 많이 했다. 특별히 숙제를 꼼꼼히 잘 해온 학생도 아니었다.
그러나 일부 선생님들은 이런 나를 특별히 아끼고 좋아해 주셨다.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것의 일부분은, 전적으로 그들 덕분이다.
중 2때 담임 선생님은 늘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을 위주로 대화를 건넸다. 예를들면, 여자인 당신이 축구에 별 관심 없는 것을 뻔히 아는데도, 우리는 그 때 축구를 중심으로 대화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또 추운 겨울에 내가 칠칠맞게 콧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휴지를 가져와 손수 내 코를 닦아주기도 했다. 다 큰 중학생 아이의 코를 닦아줄 때,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우리 반은 모둠일기를 쓰곤 했다. 그 당시 좋아하던 친구와 같은 모둠이었던 나는, 그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일기를 열심히 썼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선생님의 칭찬.
'너는 글을 참 잘 쓰는구나, 재능이 있어.'
그때 처음 나도 조금은 잘할 수 있는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물론, 여전히 감사한 마음이다.
그날 내게 처음 꿈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그러니깐 선생님이란건 양을 이끄는 목자와 같았다.
많은 아이들이 일탈을 고민하고, 세차게 흔들리며 어두운 길에 빠지곤 했지만
그러나 여전히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는 선생님들이 있었고,
선생님은 그들 대부분을 옳은 길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중 3때 자퇴하려고 마음 먹은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출석일수가 몹시 위태로웠다.
선생님은 1년 내내 늘 그 아이의 출석일수를 손으로 헤아리곤 했다.
그리고 아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회유하고 달랬다.
'잠을 자도 좋으니 학교에 나오라.'
사회에 나오고나서야, 그것은 참 강하고 힘있는 책임감임을 알게됐다.
난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어긋나지 않을 수있었다. 많은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 역시 특별히 아끼고 사랑했다.
그때 어긋나버린 친구도 있었지만, 진작 어긋났어도 이상하지 않을 친구들중 많은 아이들이 여전히, 세상에서 건전한 모습으로 잘 지내고 있다.
유년 시절 나의 선생님들은 많은 아이들에 대한 파수꾼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세상의 절벽에 내몰려 있는 상황속에서도, 바르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니 밤 길을 걸으며 가끔씩 선생님 생각이 났을 것이다.
오늘 또 생각나도 기분이 좋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