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산문집

그 남자 이야기

무릎이 갖는 의미

by Anndrew


일상에 치이다보니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늘 쉽게 쉽게만 생각한다.

이런것도 어른이 돼가는 과정인걸까.


그렇다면 그건 참 슬픈 일인것 같다.






나는 중앙선을 즐겨타곤 했다.

등굣길의 중앙선은 대개 여유롭고 한적하여

한껏 기분 낼 수 있었다.

특히 봄이나 가을에는 더욱 그렇다.


13년 봄으로 기억한다. 우연히 옆의 한 할아버지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런 작은 만남이 마음에 들었고, 할아버지 역시 일면식이 없어도 그런 류의 것들을 제법 괜찮게 생각한것 같다.


우리가 이런저런 얘기를하다가 한 남자가 등장하였다.

그는 다리를 절어 매우 위태로이 걸었다.

그리고 으레 그렇듯 승객들 무릎에 종이를 올려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였다.


하지만 승객들은 냉담히 고객을 돌렸고, 할아버지도 나도, 객실안의 어느 누구도 지갑에 손이 가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던 남자는 종이를 다시 수거하려고 했다.



'쿵'


위태로이 걷던 그 남자가 넘어졌다. 놀랄만큼 큰소리가 났다.

좌중은 웅성였고 할아버지 얼굴은 사색이 됐다.

주변 사람들이 얼른 부축해 그는 간신히 일어났다. 그의 안색이 참 안쓰러웠다.


그리고는 객실안 사람들이 지갑에서 1천원, 1만원씩 꺼내어 그 남자에게 건넸다.

할아버지는 아까 냉멸히 고이 두었던 지갑에 돈을 꺼내서 그에게 줬다.

가능한 많이 건네려는 마음과 지갑의 형편간 내적갈등에서인지, 8-9천원을 주셨다.


그리고 수다쟁이였던 그는, 이후 침묵을 지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열차에 내렸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중앙선을 타는 데 낯익은 목소리가 귀를 울린다. 그 남자였다.

그는 위태로이 걷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넘어질것만 같았다.

왠지 이후의 벌어질 일에 대한 꺼림칙한 상상이 들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들리는 소리.

'쿵'


'쿵'이 주는 위압감. 사람들은 그 큰 소리에 애간장이 탄다.

주변 사람들은 남자를 부축하고, 허겁지겁 지갑에서 돈을 꺼내든다.

그렇게 그 봄에 나는그를 5번정도 목격했다.

5번 모두 적시의 타이밍에 넘어졌다.

이후 휴학을 했던 나는, 중앙선을 다시 탈 일이 없었다.





연속된 기억은, 그가 내 머릿속에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도록 하였다.

요즘도 가끔씩 기억나곤한다.

워낙에 늘 전철을 타니, 그런 사소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하나둘 생각나나보다.


사실 그당시에는 악질적이란 생각이었다.

동정심을 유도하는 행동은 참 나쁘다.

그의 목적은 단지 돈 뿐인거잖아. 어떤 의미에서 그는 속임수를 사용한거다.

여전히 돈을 정당하고 어렵게 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도 하루 5만원을 벌기 위해 누군가는, 열두시간을 쇳가루를 마셔가며 공장에서 허드렛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쉽게 넘어지는 무릎이 참으로 부당하고 몹쓸일이라 생각했다.





글쎄, 이 에피소드가 떠오를 때마다, 나는 그렇게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얼마전에 이 일이 생각이 났고,

이번엔 다르게 생각했다.


그 역시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을것이고

적시에 무릎을 움직여 넘어질 때마다

인간적 자존심과 존엄성을 내려놓는듯한 기분이 들었을것이다.


나처럼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둘씩 많아질수록 더더욱.

왠지 그건 많이 어둡고, 쓸쓸한 방에 있는 기분일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를 변명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나름대로 정직하려고 얼마나 노력 하는데, 당신은 그렇게 양심을 속여?'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정직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 눈을 감고 덮어줄줄 알며,

소시민은 소시민과 따뜻한 마음으로 연합할 줄 아는 것.


그게 어른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이며

정직보다 더 우선적인 가치일 것 같다.




나는 늘 손이 제법 따뜻하다.

그러니 복학하고 혹여 그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지갑 속 천원을 꺼내드리는것도 좋겠지만

그의 손을 잡아드리는 것도 꽤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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