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에 관해서
내 학창시절 이미지를 그린다고 가정해보자.
먼저 밑그림을 최선을 다해 그린다. 그리고 그림에 여러 가치와 생각을 담으려고 집중한다.
그러다가 제풀에 지쳐서 나머지를 푸른 색 물감으로 대충 덧칠할 것이다.
첼시는 참 좋은 팀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나의 분신처럼 여겼다.
부천 sk란 팀이 사라지고 해외축구에 눈을 돌릴 무렵, 파란 유니폼의 첼시는 내 구미를 당겼다. 마침 그 시즌에 팀은 50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그것은 그들이 동경할 가치가 있는 팀임을 의미했다.
그 해 세뱃돈을 털어 10만 원을 호가하는 팀의 유니폼을 구입했고, 매 주 일요일 새벽이면 그들의 경기를 챙겨봤다. 의외로 부모님은 그것을 꽤 괜찮은 취미로 여겨주시고 존중해주셨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첼시는 감독이 구단주의 입맛에 따라 자꾸 바뀌었다. 때 마침 나는 곧 고3이었다. 첼시와 잠깐의 이별을 고하는 건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그 뒤 챔피언스리그 정도만 간간이 보았고, 난 그렇게 연인을 떠난 일탈을 가벼이 즐겼다.
생각보다 긴 일탈에 익숙해질 무렵, 군대에서 나는 몇 기사를 통해 첼시를 다시 접하게 된다.
램파드가 떠나고 드로그바가 안녕을 고하며, 나의 기억 속 첼시가 이제는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긴장이 들었다. 그때 다시 그들의 경기를 시청하게 되었다.
다시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니, 왜 내가 응원하는 팀들은 유독 바닥을 치는 지. 첼시는 근 수십 년간 가지 않았던 강등권에 머무르고 있다. 팀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추앙받던 호세 무리뉴는, 경기가 끝날 때마다 경질되니 마니의 추측으로 신문 1면을 장식한다.
글쎄, 그래도 끝까지 기다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내 기억 속 인물들이 정상에 있지 못하는 것은 가슴 아프다. 하지만 아직 시즌은 끝나지 않았고, 팬의 직무는 그들을 끝까지 지지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마음이 특별히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사실 이건 나에 대한 지지와 매한가지다. 대학 신문사에서 일할 때, 날 아끼던 선배가 한 명 있었다. 하루는 그가 나를 앉혀놓고 근엄하게 말했다.
"하나의 신문 기사는 일종의 나의 분신이다. 네가 지금껏 쓴 기사들 중, 네가 진심으로 가치를 느끼는 기사는 어떤 게 있니?"
선배님, 대단히 외람되지만요. 제가 비록 분신으로 생각하는 기사는 없었지만, 분신처럼 여기는 축구팀이 하나 있는데.
크나큰 혼란과 내적 갈등 속에서, 팀의 성적이 곧 나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아 기분이 불편하다.
역시 응원하는 팀은 1등 하는 게 제 맛인데.
그러나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해낼 것임을 믿는다. 언제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