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모레 서른
혼자인 것만 같아, 어두스름한 새벽 걸음은 늘 두렵다.
날이 밝으면 두려웠다는 사실은 금세 잊는다.
내 주변에 곧 서른 살을 맞이하는 이들이 많다.
집에 들어가는 데 문득 든 생각은 '참 이상해'라는 의문에서 시작된다.
스포츠에서 프로 선수는 서른에 다가갈수록 전성기로 인정받는다. 20대 초반에는 미숙한 신체 능력과 경험의 한계 때문에 큰 방점을 찍는 경우가 드물다. 그들은 20대를 한 해 한 해 먹어가며 완숙해져 간다. 그리고 서른에 다가간다는 것은 정점에 이르렀음에 대한 보증수표. 이것은 비단 대부분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공통적인 사항이다.
요즘 해외축구, EPL에서는 공격수 '제이미 바디'가 핫하다. 20대 초반에만 하더라도 공장 노동자로서 8부 리그를 전전하던 하류 선수였다. 10여 년 전 1주일에 5만 원 받으면서 축구를 하던 그는 현재 세계 최고 리그 EPL의 득점 선두에 올라서 있다. 그의 내년 한국 나이는 서른, 그는 드디어 정점에 이르렀다. 신데렐라 같은 서른 살 이야기다.
서른은 단지 물질적인 성공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서른은 '이립',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세상의 풍파 속에서 서른이 되었다는 것은, 마음의 밑바탕이 명명백백한 신념 위에 다졌을 나이임을 나타낸다. 그 신념은 20대의 생각과 가치, 행동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이다. 비로소 마음의 근간을 완성하였으니 이는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며, 예부터 한 사람에게 중대한 경사로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가 서른을 떠올리는 이미지는 정점과는 멀다. 전성기가 아니라 내리막만 생각난다. '나이를 먹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아.' 오직 한 사람에게만 들었던 말. 서른이란 왜인지 전성기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많은 이들에게 서른의 이미지는 단지, 내리막길인 걸까.
서른은 두려움과 공포, 근심과 걱정에 다가가는 나이이다. 사실 취업을 준비할 때부터 시작하여, 우리는 서서히 자신의 불특정 한 미래와 안정치 못한 환경에 겁에 질린다. 그리고 두려움에 마주할수록 대체로 나의 계획들은 제한되고, 현실에 나를 맡기곤 한다.
우리 사회엔 많은 롤모델들이 산재해있다. 사회적 성공과는 대비되는 일반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스스로의 모습에서 드는 자괴감, TV 속 서른 살 남녀는 나와 달리 성공한 모습. 그와 비교되는 20대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나. 이런 내게도 과연 전성기가 오기는 할까. 흘러간 것은 아닐는지.
나이를 먹는 만큼 책임감은 쌓여만 간다. 그리고 높아진 책임감 만큼, 우리는 삶에 대한 기대도 내려놓는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아 단순한 안정감만을 쫒을 뿐이다. 그러나 기대 없는 삶은 대단히 무미건조하여, 그 건조함에 푸석푸석 하루씩 늙어간다. 그렇게 푸석하게 늙은 서른의 이미지가 완성된다.
그러니 지금의 서른에 관한 이미지는 비단 20대 모두에게 지워진 문제인 셈이다.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라는 김광석의 노래처럼, 20대의 나는 무엇을 연료 삼아 젊은 날들의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는 지 모르겠다. '모르겠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나도 무엇인가 방점을 찍을 시간을 만들어가고는 있는 걸까. 어쩌면 방점을 찍는다는 사실 자체가 두려운 걸 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표상과는 달리 내가 해낸 것은 없으므로. 하지만 세상은 그런 생각할 여유조차 잠식해간다.
나는 나의 목표와 거창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세상의 기대에 짓눌리며 살아간다. 그리고 거울에 비치는 반어적인 내 삶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 걷는 이 길이 어두스름한 새벽길이라면, 밝은 길이 기대되지 않더라도 결국 밝은 길에 다시 들어설 거라는 기대.
내가 이 길을 걷는 것이 두렵지만 혼자 걷는 길이 아님을 알기에 없어질 나의 걱정, 그리고 두려움. 때로 자주 잊곤 하지만, 나의 인생은 끝날 때까지 결코 혼자 걷지 않는다.
나는 볼품없을 수 있다. 이런 모습 그대로 서른에 다가간다는 것은 대단히 두렵고 쪽 상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볼품없는 것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다가가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어느 날엔가 누군가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전세난 속 집 구하러 다니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일상은, 어김없이 문 밖의 세상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서른은 숫자적인 나이라는 기대를 품고 노곤한 몸을 뉘인다. 그건 정말 사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