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4.
2011년 여름, 나는 재수를 위해 노량진을 찾았다.
부모님께 받은 30만 원은 한 달 독서실과 책값, 단과학원을 등록하고 나면 빠듯한 생활비였기 때문에 건강을 뒤로하고 컵밥을 즐겨먹었다.
그것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여 떡볶이 집 밖에 모르던 내게는 나름의 신세계였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좁다란 길의 1/3 정도를 차지한 포장마차 공간에서 오므라이스, 김치볶음밥, 케밥, 닭 볶음밥 등이 일반적인 그릇이 아니라 널찍한 1회용 그릇에 담겨나왔고, 좌식이 아니라 일어서서 식사해야 했다.
그렇지만 가난한 수험생에게는 감사하게도 2천 원으로 끼니를 해결할 유일한 공간이었기에 나는 컵밥집에 끼니를 의지해야 했다.
컵밥을 십여 분 만에 뚝딱하고 나면 제법 배가 부르므로 식곤증이 찾아오기 때문에 나는 주변에 롯데리아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들고 삼십 분쯤 거리를 산보한다.
산보하면서 고시생 수험생들의 표정도 구경하고 노량진 골목 구석구석을 눈으로 훑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혼자만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게 즐거웠다.
아침부터 공부만 하고 문제는 마음만큼 안 풀리는 답답한 와중에 나는 이 밥 먹는 시간의 여유만을 기다렸고 즐기게 됐다.
다만 식사할 때 마음이 어려웠던 것은 다름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는데, 안쓰러움과 동정의 시선을 받는 기분은 아무래도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안 좋은 것은 그것뿐이었다. 나는 왜인지 노량진에서 생활하는 동안 전보다 정서적으로 여유로워졌고 평안해졌으며 낙천적이게 됐다. 이유는 잘 모른다. 오므라이스에 특별한 재료를 섞어 넣은 것일까.
그렇게 나는 약 4개월간 매일, 적어도 한 번은 컵밥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아마 오므라이스 집은 쿠폰이 있었다면 5번은 더 공짜로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격이 가격인지라 MSG 맛이 심해 9월 즈음돼서는 질려서 더는 이 음식은 못 먹겠다고 선언했고 그즈음에 나는 도시락을 찾았다. 이후로는 한동안 발길을 끊었었다.
컵밥집에서 끼니를 때우는 것은 일종의 자발적인 가난함의 체험이었다. 그것이 공부에는 득이었는지 해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괜찮았고 나에겐 나름의 추억이요 이야깃거리였다.
노량진 컵밥 길목은 내게 아련한 향수의 골목터였다.
재수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한 후 우연찮게 지난가을에 다시 노량진을 들릴일이 있었다. 나는 잊지 않고 오므라이스 컵밥집을 들렸고 그때는 시키지 못했던 소시지까지 의기양양하게 추가하여 주문했다.
그렇지만 왜인지 그때와 사뭇 다른 맛이었다.
배가 불러서도 아니고
대학생 입맛으로 길들여져서도 아니고
괜한 소시지 때문도 아니고
그냥, 그때와는 달리 부족한 맛=)
재회에 대한 감동이 있을 줄 알았는데 스치는 건 싸늘한 가을바람뿐이었다.
이후로 한동안 노량진 컵밥집을 추억하지 않게 된 것 같다.
2013년 1월 24일.
컵밥집이 검색어에 올랐고 5개의 포장마차가 강제철거를 당했다는 뉴스를 클릭하게 됐다.
40여 년 전부터 철거는 이 나라에서 익숙한 단어였지만, 오늘의 철거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매일매일 미래에 대한 염려와 불안감을 안고 노량진에서 공부하면서도 가난함, 배고픔, 의지, 즐거움, 잠깐의 여유의 시간이자 공간을 선사해줬던 하나하나의 포장마차, 컵밥집들은 고마운 존재였고 마음에 아련한 기억이었는데.
나의 이 모든 추억도 함께 철거당했다.
나를 길들인 존재, 추억의 공간에 대한 상실은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비가 그치고 나니 달이 밝다. 어제와 같은 달을 보는데 오늘은 마음 한편이 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