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뜨개질, 나의 요가
나는 내가 외롭거나 우울하다는 것을 잘 알아차린다. 바로 살이 찌기 때문이다.
정신의학과에 다니는 게 익숙해졌고 이제는 혼자여도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 데에도 지난 몇 달간은 먹어도 먹어도 배고팠고 자도 자도 피곤했다.
이유 모를 허한마음을 밥으로도, 잠으로도 채울 수 없었는데
요가를 다시 시작하고나서부터 나의 과식도, 과다수면도 서서히 잠재울 수 있게 되었다.
우울증에 걸린 후로 10킬로 가까이 체중이 늘게 된 나는 요가복을 입기도 싫고, 예전처럼 잘 되지 않는 요가 동작을 탓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이유를 만들어가며 요가 수련을 설렁설렁하고 있던 때였다.
입시 시절을 같이 보냈던 도쿄에 살고 있는 친구가 한국에 잠시 들어오게 되어 만났다.
친구는 뜨개질이라는 취미가 생겼다고 했다.
뜨개질을 하다 보니 타지에서 홀로 지내는 외로움이 나아졌다고 했다. 그 후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건, 20대까지 한국에서 지내다가 30대부터 도쿄에서 살게 된 친구의 마음도 쉽진 않았겠구나라는 것이다.
친구는 내게 완벽 강박에서 벗어날 취미를 하나 가져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무언가를 만드는 일, 배우는 일, 움직이는 일 상관없이 해보고 싶었던 것이나 해봤는데 재미있었던 것 중에서.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면 완벽해야 된다는, 완벽해질 때까지 만족하지 못하는 강박을 가지고 있어서 무언가를 시작하기가 두렵고 걱정된다고 말했다.
친구는 아직도 그 강박에서 벗어나질 못했냐며 다음 말을 덧붙였다.
"나는 한 코 잘못 뜨더라도 그냥 해. 다음에 뜰 때는 조금 더 잘할 수 있거든.
그냥 해봐. 완벽해야 할 필요 없잖아."
뜨개를 안 해본 나는 한 코 잘못 뜨면 실패한 거라고 생각했다.
머지않아 똑같은 뜨개 키트를 여섯 번이나 뜬 사진을 보고 친구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한코 잘못 뜨더라도 그냥 하는 마음, 그 자세가 대단해 보였다.
어느 뜨개 사진을 봐도, 뜨개에 미친 사람 이야기를 들어도 반응하지 않던 내 마음은 한코 잘못 뜨더라도 그냥 한다는 말에 요동쳤다.
나보다 키가 십 센티가 큰 친구는 키만 큰 게 아니라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살찐 모습으로 요가복 입기 창피해서, 예전에 잘하던 동작이 안 되는 게 속상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수련에 소홀했던 게 부끄러워서, 피하고 숨었던 나와는 너무 달랐다.
그 후 한 동작 한 동작을 이어가며 아침 루틴으로 자리 잡은 요가 수련이 나의 과식도 과다수면도 잠재울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