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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아 Oct 21. 2024

수면장애 환자의 꿈

A dream or a nightmare

내가 꾸는 꿈의 종류는 세 가지로 나뉜다.


1. 기억하고 싶은 과거

행복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과거가 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라 유난히 밝게 빛났던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지나간 인연과의 추억이라던지, 마냥 즐거웠던 학창 시절이라던지, 어렴풋이 기억나는 젊은 시절 엄마와의 시간이라던지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는 행복한 순간들.

나는 그때 꿈을 꾸면 행복해하면서도 쏟아지는 그리움에 꿈에서 깨고 만다. 실제로 겪었기에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 꿈에서 깨어나면 공허함이 몰려온다. 공허함은 파도처럼 서서히 시작되어 크게 일어났다가 이내 부서지고 만다. 

나쁜 꿈을 꾼 날보다 여운이 길게 남아, 다른 날보다 하루를 시작하는데 더 힘이 든다.


2.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내게 우울증을 안겨준 사건이 있다. 사건은 내게 트라우마가 되어 나를 정신과 VIP손님으로 만들어주었다.

지내다가도 그날일 생각날 때마다 매번 지옥문을 두들기곤 하는데, 일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꾸는 꿈이 있다.

예를 들면 사건이 발생하던 날에 있었던 사소한 일이라던지, 사건 발생 전의 내 모습이 보이는 꿈이다. 아주 나쁜 꿈이지만 꿈에서 깨고 나면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

놀란 마음에 심장은 빨리 뛰고 식은땀에 베개도 흠뻑 젖었지만 꿈이라서 다행이라는,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에 온몸에 긴장을 쓸어내린다.

다시 그 일이 반복되면 꿈에서 깨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잠에서 깨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3. 악몽

나는 주로 가위에 눌릴 때 귀신이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이 보인다.

최근에는 고모가 내 이불을 빼앗아가는 꿈을 꾸었다. 귀여운 악몽 같아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끔찍할 만큼 답답했다. 뺏어가지 말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지르는데 소리가 나지 않아 괴로웠다. 그러다 결국 빈약하게 뚫고 나온 소리로 정적을 깼다.


고등학생 때에는 미대 실기시험에 붓을 챙겨가지 않은 꿈, 대학생 때에는 강의실에 갔는데 공휴일이었던 꿈, 취업한 후에는 알고 보니 다단계 회사였던 꿈 등 나 또는 내가 있는 시기와 관련 있는 꿈을 꾸었다면, 지금은 밑도 끝도 없는 꿈을 꾼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 등 검색해 보니 키 크는 꿈이라는데 서른 인 나에게도 아직 성장판의 기회는 열려있는 것일까?

아무튼 나는 이런 밑도 끝도 없는 꿈을 악몽으로 여긴다.


잔인한 이야기를 들어서, 공포영화를 봐서, 찝찝한 결말의 추리소설을 읽어서가 아니다.

일어나면 왠지 기분이 나쁘고 식은땀이 나는 기운이 쭉 빠지는 그런 꿈. 

그런 꿈보다 더한 악몽은 현실뿐인데도 꿈에서 깨어 이곳으로 도망쳐오고 만다.

도망쳐올 수 있는 곳이 이곳뿐이라, 잠들지 못하던 날에도 긴 꿈을 꾸었던 날에도 고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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