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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아 Oct 11. 2024

미라클 없는 모닝

수면장애 환자의 아침

우울증은 친구가 참 많다.

매일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 식욕 감소 또는 증가, 불면 또는 과다 수면, 강박 장애, 섭식 장애 등 하나만 오는 법이 없다. 파워 외향형이라 손을 잡고 이 친구 저 친구 모두 모여 다 함께 오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 집에 왜 왔니 노래를 부르며 내쫓고 싶지만 불청객은 좋은 말로 할 때 나가는 법이 없다.


우울증이 데려온 친구들 중, 내게 가장 크게 자리 잡은 것은 수면 장애였다.

잠을 너무 못 자거나 지나치게 많이 자거나 잠드는 데까지 1시간 이상 걸리다가도 어떤 날은 30초도 걸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초기부터 수면 장애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증상들이 나타났다.


실제로 우울증 환자의 4/5 정도가 수면 장애를 호소한다. 

특히 아침까지 충분히 잠을 못 이루고 일찍 깨거나 밤 사이 자주 깨는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이 와중에 우울증 환자의 4/5면 다수가 나와 같은 증상이라는 건데, 내가 이상한 게 아니구나 라며 안심하기도 했다.


처음 수면 장애 증상들이 나타났을 때에는 평균 수면 시간을 지키고자 하루 8시간에 맞추어 알람을 설정해두기도 했다. 내가 정해둔 시간에 잠들기 위해 하루 종일 몸을 바쁘게 움직인다거나 정해둔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 일단 침대 밖으로 나와 소파에서 앉아있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있다가 다시 잠에 들거나 오후에 낮잠에 빠지기 일쑤였다. 

오히려 더 잠들지 못한 적도 종종 있었다.


학교나 회사를 다닐 때에는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잘 시간이 되면 잠이 오고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되면 일어났는데 지금은 내가 너무 게을러서 그런가 생각했다. 우울증이 데려온 친구가 아니라 그저 나의 나태함이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하고.

어떤 날에는 새벽 네 시까지 잠에 들지 못하고 또 어떤 날은 새벽 네 시면 눈이 떠졌다. 

같은 시간, 다른 수면 상태의 날들이 길어지고 있었다. 푹 자려고 노력 한 날에는 의도치 않게 눈이 일찍 떠지고,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 한 날에는 해가 뜰 때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창 과다 수면을 할 때에는 10시간 동안 4-5번은 깼다.

한번 잠에서 깨면 30분 이내에 잠들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이만하면 잘 잤다는 생각을 하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지나치게 오래 누워 있어서 허리가 망가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잠이 많이 오는 시기가 지나고 잠이 오지 않는 시기가 찾아왔다. 

잠이 오지 않는다기보다는 일찍 눈이 떠진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조금밖에 안 자냐는 질문도 받아봤지만 더 자고 싶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기에는 몇 시에 잠을 자던 새벽 6시면 눈이 떠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적게 자면 깨어있는 시간이 길다.

우울증 초기에는 최대한 많이 자려고 노력했다. 정신의학과 선생님에게 잠이 잘 오는 약을 추가로 처방해 달라고, 제발 잠 좀 잘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때는 깨어있는 시간이 적어야 우울해하는 시간도 적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생각과는 반대로 과다 수면은 고통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집중력 저하, 의욕 상실로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데 과다 수면까지 하니 하루종일 잠만 자는 사람 같은 무엇이었다. 

또 나의 경우에는 악몽을 꾸는 날이 많아서 잠을 많이 자게 되면 다음날 악몽으로 인해 받은 불안, 두려움, 초조함이 배가 되곤 했다. 어떻게 해야 과다 수면을 멈출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무색 해질 때쯤 일찍 눈이 떠지는 시기가 찾아왔다.


흔한 알람 없이 새벽 여섯 시만 되면 눈이 떠졌다. 

전날 밤 10시에 자던 12시에 자던 결과는 같았다. 눈을 뜨면 6시 정각이었다.

가족들은 무슨 자기 개발서를 읽고 각성했냐고 묻기도 했다. 미라클 모닝은 눈만 뜨는 게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눈은 떠지는데 눈 뜨고 하는 게 없었다.

밀린 웹툰을 읽거나, 천장을 보며 멍 때리거나, 누워있는 채로 스트레칭처럼 보이는 동작을 하는 등 딱히 미라클이랄 게 없는 모닝이었다.



미라클 없는 모닝의 장점

1. 새벽 6시에 일어나니 하루가 길다.

2. 하루 세끼를 먹게 된다.

3. 사람이 많은 낮 시간을 피해 활동할 수 있다.

4. 한참을 움직여도 해가 떠 있기 때문에 알차게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비록 누워서 웹툰만 6시간 읽은 날일지라도.


단점

1. 하루가 너무 길다.

2. 눈 뜨자마자 배고프다. 배달음식도 주변 카페도 문을 열지 않았다.

3. 낮잠을 자게 된다.

4. 일찍 일어난 만큼 시간을 무의미하게 써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잠에서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하는 시간이 올 때면 거실 창문 앞에 자리를 잡는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것들을 바라본다. 좁은 골목길의 가로등, 한 두대 씩 지나가는 차에서 비추는 헤드라이트, 건너는 사람 없이도 재깍재깍 바뀌는 신호등, 아직 꺼지지 않은 간판, 건물 밖으로 새어 나오는 형광등 등.


어두울수록 더 빛나고 고요할수록 깨어나는 것들이 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면 장애로 고통받는 나에게 새벽의 잠 못 드는 시간은 진짜 내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다. 창 밖에서 조금씩 새어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가 날 위로해 준다.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

어둠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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