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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아 Oct 10. 2024

정신과 선생님의 처방전

우울증 극복 방법

1. 아침, 저녁 약을 잘 챙겨 드세요.

어릴 적부터 의사 선생님 말을 맹신해 왔기에 약을 제때 챙겨 먹는 것이 가장 쉬웠다.

가벼운 감기에도 "찬 음료 마시지 마세요, 일주일간 금주하세요"라고 하는 말들도 아주 칼같이 지켰다.

'7일째라 마셔도 되려나, 처방받은 날부터 새어야 하는 걸까 아님 감기 걸린 날로부터 1일인 걸까,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볼걸'이라고 생각하며 의사 선생님 말이라면 곧이곧대로 하고 싶었다. 여기서 하나라도 어기게 되면 아픈 이유가 모두 내 탓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항상 병원에 다녀오면 아픈 곳은 금방 나았다.

나을 때가 되어 낫게 된 것인지, 내가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서 그런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선생님 말을 잘 들었고 결국 나았으니 해피엔딩인 거다.


정신의학과 선생님이 아침, 저녁 약을 잘 챙겨 먹으라고 내준 숙제도 하루도 안 밀리고 잘 지킬 것이다.

내 병을 치료하기 위한 TF팀의 팀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팀원은 나 한 명뿐이지만.


2. 힘들 때는 '필요시' 약을 드세요.

'힘들 때'의 기준을 내리는 것이 어려웠다. 두통이 심할 때,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 몸이 지치거나 피곤할 때, 잠이 안 올 때 등 조금만 힘들어도 "힘들어 죽겠네"라는 말을 달고 사는 나여서 처방받은 '필요시' 약을 과다복용할 게 뻔했다. 그래서 나만의 기준을 정했다. 

하루에 3번을 넘지 않을 것. 몸보다 마음이 견디기 힘들 때만 먹을 것.


3. 양질의 수면을 취해보세요.

마음의 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밥을 잘 먹는 것과, 잠을 잘 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적정 수면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양질의 수면이다. 하루 적정 수면 시간은 7~8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그 정도는 잠을 자야 피로가 해소되고 일상을 제대로 영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루 적정 수면시간만큼 잔 날도, 그 이상 자는 날도 많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양질의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내게는 양질의 수면을 방해하는 방해꾼이 있다.

방해꾼의 닉네임은 '꿈', 본명은 '악몽'이다.

트라우마가 생긴 후로 매일같이 악몽을 꾼다. 악몽을 꾸게 되면 자는 와중에 깨는 것은 물론, 꿈 내용도 부정적이라 잠에서 깨더라도 내 머릿속에선 계속 리플레이된다.

잠자는 시간에 꾸는 게 꿈이 아닌가. 그런데 언제부터 잠에서 깨어도 꿈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워졌다. 아니 일상생활이 어려워 꿈을 꾸게 된 건지도. 이제는 뭐가 먼저인지 모르겠다.


악몽을 꾸지 않기 위해 낮 시간 동안 최대한 몸을 움직여서 저녁만 되면 쓰러지듯 잠들기도 해 보고, 차라리 기분 좋은 꿈을 꾸기 위해 귀여운 영상을 보다가 잠들기도 해 봤다. 하지만 모두 소용없었다.

주 5회 이상 악몽을 꾼다는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은 취침 전에 먹는 약을 업그레이드시켰다. 정신과 약을 증량한다는 건 내 상태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어쩌면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이 최선일지도.


꿈을 꾸지 않는 것은 내 노력으로 해낼 수 없는 것인데 무언가 선생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숙제는 열심히 했는데 다 틀린 느낌이었다. 

극단적인 악몽 속의 나는 지금 꾸고 있는 게 꿈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지금은 꿈 속이고 자는 동안만 괴로운 것이라는 걸 되뇐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끝이다. 눈만 뜨면 현실에 도착했고 악몽은 커튼콜도 무시한 채 막을 내린다. 하지만 곧 깨닫게 된다. 

눈을 뜬 현실도 꿈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이쯤 되면 현실이 악몽인지 꿈이 악몽인지, 밤에 잠드는 것이 무서운지 아침이 오는 것이 무서운 건지 혼란스럽다. 공통점은 꿈이나 현실이나 괴롭다는 것이다. 

언제쯤 잘 잤다고 말할 있을까. 


오늘도 내 수면을 방해하는 악몽을 쫓으러 비장하게 누워본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피할 수 없다면 싸우자


4. 규칙적인 식사를 하세요.

집에 혼자 있다 보면 귀찮음 이슈로 식사를 거르는 것은 물론, 끼니를 챙기더라도 시간 마법사가 되어 아침/점심/저녁의 구분이 사라진다. 


회사를 다닐 때 규칙적인 식사는 당연한 것이었다. 점심시간과 퇴근시간만 바라보며 사는 직장인에게 점심과 저녁은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고된 하루를 마무리한 날에는 맛있는 음식으로 나에게 보상해주곤 했다. 어쩌면 회사생활의 유일한 낙이 점심메뉴를 고르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메뉴 고민은커녕 밥을 먹을지 말지도 고민하고 있다. 

마음의 병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조용하게 다가와 가장 일상적인 것부터 무너뜨린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 위해 간단하게라도 제시간에 끼니를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양질의 수면은 어려워도 규칙적인 식사는 노력으로 가능한 거니까.


5. 좋았던 순간을 자주 떠올려 보세요.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 속에서 자주 꺼내 보세요. 힘든 기억, 슬픈 기억만 있지 않으니까요. 행복했던 기억을 자주 꺼내봐야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행복했다고 생각했던 순간을 부정당해봤을까? 갑자기 들이닥친 트라우마는 살면서 좋았던 순간들을 증발시켜 버렸다. 이미 망해버린 건 아닐까 좌절하던 어느 날, 아래 문장을 보고 작은 희망이 생겼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은 우리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다.  - 빅토리 위고


6. 취미를 찾아보세요.

취미를 찾기 위한 여정은 다음 편에 적어보겠다.

나에겐 산티아고만큼이나 단단히 준비가 필요한 것이니 말이다.


7. 잘해야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지아 님은 뭐든지 잘 해내야 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상태예요. 완벽을 내려놓으면 여유가 생길 거예요. "

질투 버리기, 욕심 버리기, 미워하는 마음 버리기 등 부정적인 것들을 버려라, 내려놔라 라는 이야기만 들어봤지. 잘하고 싶은 마음, 완벽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내가 잘 못해낼 것 같은 것, 망칠까 봐 두려워 시작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해 봤다. 

완벽하게 해낼 자신이 없으니 실패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이 내용은 취미 편에 이어진다. 투비컨티뉴 -


8. 일단 밖으로 나가보세요.

"몽골 속담 중 이런 말이 있어요. '두려우면 하지 말고, 하게 되면 두려워하지 마라.' 대부분의 일은 일단 하면 두려움이 사라질 거예요. 자전거를 처음 탈 때, 중요한 시험의 첫 문제를 풀 때, 뭐든 처음이 가장 두렵죠. 그리고 처음을 시작하기 전이 더 두려울 겁니다. 일단 밖으로 나가보세요. "


'밖으로 나가는 게 뭐 어렵다고, 이렇게 병원도 째깍째깍 오는데.'라고 생각했다. 

병원 외에는 바깥을 나가지 않던 나는 처방받은 지 일주일이 흐른 뒤에나 바깥공기를 쐴 수 있었다.

덥다는 핑계로, 귀찮다는 핑계로, 지금은 사람이 많을 것 같다는 핑계로 이런저런 핑계들로 나가는 것을 미루다가 나간 날 느꼈다. 이제야 제대로 숨이 쉬어지고 있다는 걸.

내쉬고 들이키는 사이로 여름과 가을사이, 계절의 변화, 시간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상담치료든 약물치료든 어떤 처방보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처방을 꼽자면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뻔하지만 밖으로 나가 이 계절의 설렘을 고스란히 느껴보기를 바란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충분히 느끼길 바란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영원을 약속했던 내 마음도 네 마음도 변한다.

일단 한번 나가봐라. 백 미터 안이어도 상관없다.

나가보면 내가 말한 '숨'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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