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지아 Oct 08. 2024

우울증은 감기 같은 거야

'필요시' 약을 처방받다

우울 장애(depressive disorder)는 의욕 저하와 우울감을 주요 증상으로 하여 다양한 인지 및 정신 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을 말한다. 기분이 우울하다고 해서 모두 우울증은 아니다. 


우울증의 분명한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생화학적 요인,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환경적 요인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환경적 요인은 삶에 있어서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것, 강한 스트레스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우울증은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다.

10명 중 1명은 걸린다고 보고될 정도로 매우 흔한 질병이라고 하지만 그 ‘누구나’가 내가 될 줄이야.

처음에는 컨디션 악화라고 생각했다. 쉬지 않고 일하다 보니 현대인의 질병인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체력도 정신도 무너진 상태라고 생각했다. 강하게 마음먹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병이라 믿고 싶었다.


그러나,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쯤 계절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우울이라는 감정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지속적인 우울감, 피로감, 불안감, 집중력 및 기억력 저하, 수면 장애 등 내 몸은 나에게 우울증이라는 신호를 던지고 있었다. 

진작 알아차렸지만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우울증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사람들이 미친 사람처럼 볼 것 같았다. 괜히 내 옆에 오기 싫고 말 섞기 싫어할 것 같았다. 몇 명은 뒤에서 수군거릴 것 같았다.

‘항상 밝은척하더니 어두운 면이 있었네 있었어’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외부에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한다. 특히 안 좋은 감정은 더더욱.

나 역시 우울하다는 신호를 외부에 드러내기 껄끄러웠다. 싫었다. 내 마음이 얻은 병이니까 나 스스로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내 믿음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더욱 악화되는 우울 증세에 극단적인 생각까지 찾아왔다.


죽기 전에 뭔들 못하겠나.

'우울증은 감기 같은 거 라면서요? 저는 감기라고 생각될 때 병원에서 진단받고 처방받은 감기약을 먹으면 금세 낫는 편이니까 내 우울증도 그렇게 극복할 겁니다.'

우울증을 인정하고 병원 가기까지가 어렵지, 막상 가면 괜찮아진다는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믿고 정신의학과에 가보기로 결심했다.


마음의 병은 마음먹기 달렸다고 생각했던 날들을 미치도록 후회한다.


정신의학과에 가면 미친 사람처럼 보이진 않을지 걱정도 되고, 실비는 되는지 엉뚱한 생각에 웃음도 나고 어렵게 예약한 곳이기에 기대감도 컸다. 여러 정신의학과에 문의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은 초진 환자는 예약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가고 싶다고 해서 당장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7~14일 정도 후에 방문할 수 있을 정도로 예약이 어렵다.


처음 가본 정신의학과는 너무나도 정상이었다.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 나오는 등장인물처럼 한눈에 봐도 남들과 다른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정상으로 보이는 걸 넘어서 꽤나 괜찮은 사람들인 것 같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인자한 표정의 선생님이 먼저 입을 뗐다. 

“안녕하세요, 여기 앉으세요.”

두근거렸다. 내 앞의 선생님이라면 챗gpt처럼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 같고, 게임 세상의 npc처럼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줄 것 같았다.

점을 본 적은 없지만 마치 무속인 앞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 속을 훤히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벌거벗겨진 느낌이랄까.


'선생님! 제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진 모르겠는데요,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어쩔 땐 식은땀도 막 나요. 땀이 식어가면 시원해서 웃음도 나고요. 울음도 나요. 거의 오열하듯 울 때도 있어요. 때로는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제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냐면요.'라며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시작하려던 찰나,

선생님은 내게 잠은 잘 자는지, 식사는 잘하는지 물어보셨다. 뻔하지만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상처가 나면 약을 바르거나 상처부위를 꿰매는 등 치료부터 하는데, 선생님은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잤는지부터 묻고는 내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듣기만 하셨다.

산만하다가 침착했다가, 울다가 웃다가, 주제마저 이리저리 바뀌는 내 이야기를 경청해 주셨다. 

별다른 코멘트는 없었다. 그런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고, 오늘 처음 봤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나아지길 바란다는 것, 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것,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믿기에 충분한 50분이었다. 


횡설수설하며 떠벌린 나의 이야기는 예전의 나 같지 않다고 느끼게 된 것에서부터였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시작하거나 반대로 심하게 무기력해지는 날이 많아지고, 잠을 못 자거나 너무 많이 자거나 하는 등 ADHD와 겹치는 증상들이 나타나서 혹시 내가 성인 ADHD는 아닐까 의심도 해봤다. 

하지만 선생님의 진단은 트라우마로 인한 과다 각성, 우울 장애였다.


우울증이 지속되니 정신 운동 속도 저하와 집중력 저하, 결정의 어려움 등의 증상을 겪게 되었다. 

나의 경우에는 유독 불안 증상이 많이 나타나서 정신의학과에서 처방받은 ‘필요시’ 약을 수시로 먹어야 했다. 이 약이 실제로 안정감을 주는지, 불안감을 줄여주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한 알이라도 더 많이 먹어야 될 것 같았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 주었기에 고마운 병이 아닐 수 없다.


정신의학과를 다닌 지 6개월 차, 선생님의 첫 질문은 여전하다.

잠은 잘 잤는지, 밥은 잘 먹었는지, 매월 매주 매회 나의 밥과 잠의 안녕을 묻는다.

이제는 나도 대답하는 요령이 생겼다.

“잠은 그럭저럭 잡니다.”라고 답하면 스무고개가 이어지기 때문에, “잠드는 데까지 시간은 30분 이하 소요되고 평균 수면 시간은 8시간 정도예요. 다만, 수면 시간 동안 하루 두 번 정도 깹니다.”라고 답한다.

이후 수면 시간 동안 깨는 이유, 악몽의 줄거리,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기분 등 수면에 관련된 질문들이 쏟아진다.

수 차례 선생님께 상담을 받으면서 내 답변도 레벨 업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스무고개는 피할 수 없었다. 


이제는 밥도, 잠도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 어딘가 쓰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