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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아 Oct 09. 2024

우울의 시대

정신과 방문 전 알아야 할 것들

한 해동안 우울증으로 병원을 다녀간 인원이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정신과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아 하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까지 합치면 100만 명을 훨씬 넘었을 거라 생각한다. 

바야흐로 우울의 시대이다.


우울증은 누구나 흔히 느끼는 일시적인 우울감과는 크게 다른 질병이라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 또한 전문의의 도움을 받고자 정신의학과를 찾아보니 주변에 굉장히 많았다. 

이 많은 병원들이 다 정신의학과라고? 싶을 정도로 빼곡했다. 특히 직장이 많은 동네에 밀집되어 있었다. 

우리 집 근처에서도 어렵지 않게 정신의학과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음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어쩐지 내 마음도 저려왔다. 



1. 초진 환자는 당일 예약이 어려워요.

정신의학과 치료는 대부분 전문가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이루어진다. 주로 상담치료, 약물치료로 이루어지다 보니 선생님이 환자의 증상이나 발병 원인 등 자세하게 알고 있어야 진단과 처방이 가능하다.

초진 환자의 경우, 상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어떤 상태인지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예약이 어렵다.


2. 예약 시간보다 늦어져도 이해해 주세요.

자고로 병원이란 시간을 예약하고 가도 대부분 그 시간에 맞춰 땡 하고 입장하는 경우가 드물다. 내 앞의 진료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기에 학교 수업시간처럼 정해진 시간이 되었다고 바로 시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신의학과에서는 앞사람의 상담이 길어지는 경우, 내 시간도 그만큼 밀린다. 내가 늦게 끝나면 다음 사람도, 다음 사람의 다음 사람도 밀린다. 하지만 정신의학과에서는 그 누구도 밀려나는 시간에 대해 컴플레인을 걸지 않는다.


어느 날은 폭우를 뚫고 병원 시간에 맞춰가려고 옷이 다 젖을 만큼 뛰어간 적이 있다. 비바람에 옷은 젖고 머리고 축축하고 기분도 꿀꿀한 그런 날이었다. 간신히 예약시간에 맞춰 갔는데 한 삼십 분을 기다려도 앞의 상담이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다음 사람을 위해서 내 상담이 짧아지거나 대충 봐주시면 어떡하지, 시간 압박에 초조해져서 궁금했던 것들을 다 물어보지 못하면 어떡하지 등 하지 않아도 될 걱정까지 끄집어내며 날 괴롭히고 있었다. 


그때 상담실 문을 열고 나오던 젊은 여자의 실루엣을 잊지 못한다. 기껏해야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밖에 부는 비바람 한 번에도 쓰러질 것 같아 보였다. 언뜻 그림자가 두 개 인 것처럼 보였다.

내 20대 초반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그녀의 나이였을 때 세상 걱정 없이 웃고 떠들며 신나는 대학생활을 보냈었는데 어떤 사연이 있길래 저리 나약해 보이는지. 비숑 머리 만한 눈물 젖은 휴지를 들고 나온 그녀를 본 순간, 씩씩거리며 기다렸던 삼십 분의 나를 숨기고 싶었다. 


3. 뚫어져라 쳐다보지 말아 주세요.

아픈 사람이 이상한 사람은 아니랍니다. 

처음 정신의학과에 가던 날 사람들이 날 미친 여자처럼 보면 어떡하나 걱정한 적도 있었다. 정신의학과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린 뒤 재빠르게 문을 열고 입장했었다. 그때 나의 속도는 웬만한 첩보 요원 뺨칠 정도랄까.


내가 다니는 정신의학과는 내부가 보이지 않게 불투명한 유리로 되어있다. 외부에서 내부를 보지 않게 하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도록 한 것 같다. 만약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다면 문을 재빨리 열고 들어온 보람이 없어졌을 텐데 다행이다.


정신의학과에서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릴 때 주변을 둘러보거나 힐끔거리지 않는다.

아무도 정하지 않은 규칙이지만 모두가 지키는 룰이다. 그래서인지 정신의학과 대기실은 요즘 내게 가장 안정감을 주는 곳이 되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 아프기 싫어서 온 사람들, 상대방이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모두 나와 같다. 

나를 위해선 내가 노력해야 한다. 



정신의학과에 가는 건 별 거 아니었다.

아무도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하지 않고, 나 또한 타인을 미친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정말 별 게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린 늘 별 거 아닌 일에 흔들린다. 별 거 아니라서 어디에 얘기도 못하고, 별 거 아닌 일이라는 생각에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어렵다.

아닌 일에는 크게 흔들리면서, 일을 아닌 걸로 칭하진 못한다. 

가끔 흔들려도 되고, 별 거 아니라고 넘겨도 되지 뭐.

그 대신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만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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