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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말고 오늘 살게요

정신의학과 대기실

by 윤지아

정신의학과에 꾸준히 다니다 보니 내 상태가 조금 나아졌다고 판단한 의사 선생님은 방문 간격을 1주 늘려보자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몸과 정신의 평화를 동시에 꿈꾸며, 조만간 예전 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은 해가 중천에 떠도 오밤중 억지로 일어난 것처럼 멍하고 괴로웠다.

위경련을 걱정하며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들이붓지 않아도 각성제가 있으니 정신을 차릴 수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 때면 항도파민제의 도움으로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극도의 불안함과 우울함이 몰려올 때면 항우울제 덕분에 더 깊은 좌절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다. 피곤함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도 잠을 잘 수 없다면 수면제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그렇게라도 살면 된다. 어쨌든 내일은 오니까.

오늘을 살고 내일도 오늘을 살고 그렇게 계속해서 오늘만 살아가면 되니까.


정신의학과 대기실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한때는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정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은 그들의 아픔이 조금은 나아지길 바란다.

정신의학과 대기실은 그런 곳이다. 나이, 성별, 직업 다 필요 없고 삶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앞사람이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아도, 예약시간보다 밀리게 되더라도, 누가 어떤 자세로 어떻게 기다리더라도 무관심한 태도로 내 차례를 기다릴 수 있는 곳. 특별한 이벤트 없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고, 피곤할 때에는 푹 자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정신의학과 대기실은 그런 곳이다.


ADHD, 불면증, 강박증, 수면 장애, 틱 장애, 거식증이나 폭식증, 우울증, 트라우마.

병이 아니라 단지 나타나는 증상일 뿐이다. 마음의 병으로부터 생긴 증상일 뿐이다. 노력한다고 해서 빨리 낫는 것이 아니다. 부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치료에 임해서, 평범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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