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핑계삼아 해본 5가지

(첨부)우울증 계기 및 양상

by 윤지아

1. 오락실에 돈 쓰기

가족들과 놀러갔던 리조트 지하에 있는 오락실에서 인형뽑기도 하고 사격도 했다. 기존의 나라면 이 돈으로 커피 한 잔 더 사먹고 말지 라고 생각했겠지만 우울증이 걸린 후로 원래 안쓰던 곳에 투자하는 게 되었다.

사격게임에서는 군대 다녀온 오빠를 이겼다. 심지어 옆에서 훈수두던 아빠의 점수까지 가뿐히 넘었다.

뜻밖의 재능을 발견한다는 게 이런 건가?

그동안 안해봐서 그렇지 막상 해보면 잘하는것들이 더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워서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것들을 해봐야겠다. 그렇게 인생 노잼 시기를 극복해봐야겠다고 다짐한 날이었다.

사격에서 한바탕 흥이 오른 나는 인형뽑기를 연속으로 3번 시도했지만 기부엔딩을 맞았다. 요새는 동전으로 바꾸지 않고 카드로도 결제되기 때문에 더 여러번 시도하게 되는 것 같다.

몇번만 더 하면 될 것 같거든. 근데 안되더라고.


2. 평소라면 지나쳤을 것에 관심 가져보기

아파트 도장을 새로 한단다. 시안이 정해진 후 도장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조금씩 칠해져가는 모습만 봐왔지 실제로 하는 건 처음 보는데, 저 아슬아슬한 높이에서 밧줄에만 의존한채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위태로워보이면서도 안정적이여보였다.

저 상황에서는 몸이 위태롭기 때문에 머릿속으로는 잡생각이 안나겠지. 나도 잡생각 좀 그만하고 싶은데.

그렇게 오래 아파트에 살면서 도장하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본 건 처음이었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것에 관심을 갖게 되면 세상이 조금은 재밌어진다.


3. 판타지 드라마 보기

지인의 추천으로 tvN에서 방영했던 <환혼>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3일동안 시즌2까지 정주행했다.

몸은 그대로 놔둔채 영혼이 바뀌는 환혼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드라마인데, 백살먹은 노인도 더 살고 싶어서 젊은 사람 몸으로 환혼술을 한다.

나에겐 앞으로 70년이나 남았는데 아니 못해도 60년은 더 남았을텐데 벌써부터 오래 살고 싶은 의지가 없는 나로써는 금지된 환혼술을 행하면서까지도 더 살고 싶은 마음이란 어떤 마음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메모장에 더 살고 싶진 않다고 인생 노잼 시기에 대한 글을 쓰다가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덜컹하며 멈췄다. 순간 굉장한 공포심을 느꼈다. 아직 난 나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 같다.


우울증 계기 및 양상

- 트라우마로 인한 과다각성, 우울 장애

- 믿었던 사람에게 큰 배신을 당하는 일을 겪음

- 아침에 일어나면 마음이 고통스러움

- 브레인포그, 스트레스로 인한 인지 저하, 부정적인 사고, 강박증, 집중력 저하


4. 실내자전거 구매

수많은 우울증 관련 서적을 읽어보니 운동은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는 30분 이하의 산책일지라도 종종 하곤 했는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니 집밖을 나갈 수 없었다.

집안에 운동기구를 들여놓는건 빨래건조대를 하나 더 만드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직접 실내자전거를 구매하는 날이 오다니.

하지만 지금은 그날의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그날 이후로 매일 한시간씩 페달을 밟았더니 아침에 일어나는게 점점 쉬워지고 있다.


5. 글 쓰기

우울증 환자들은 생각이 너무 많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이라 우울한 감정을 더 악화시킨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때문에 수면 장애도 심해져서 해결방안을 찾고 싶었다.

내가 찾은 잡생각을 줄이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은 ‘글쓰기’였다.

명상, 취미활동, 운동 등 주변에서 추천하는 건 다 해봤지만, 가장 효과적이었던 건 글쓰기였다.

처음에는 글을 쓰는 것이 우울증 완화에 도움되는 느낌을 받지 못해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꾸준히 쓰다보니 글이 쌓여가며 어느 순간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과거의 글을 보면 지금 이만큼이나 극복을 한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이런 좋은 상태라곤 장담할 순 없다. 그래도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글로 적어둔 나의 치료 과정들을 해나가면 또다시 괜찮아질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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